이 나라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법은 간단하다. 문제가 있는 곳을 아예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해경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아예 해체시켜버리는 나라다. 제때 일을 수습하지 못한 해경의 잘못이야 크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유발한 단체를 없애버리니 부작용이 속출한다. 이제는 중국 어선들이 당당하게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 마치 우리 앞마당에 멀티를 한 꼴이다. 문제를 개선해 더 합리적인 조직을 만드는 게 먼저일 텐데 문제가 생겼다고 해 그 조직을 없애버리는 게 우리의 해결 방법이다. 참 쉽다.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130억 원이 세금? 말은 똑바로 하자
경남FC 구단주인 홍준표 도지사도 똑같은 방법을 쓰려고 하는 중이다. 경남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이 확정되자 홍준표 도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는 과정이 필요 없다. 결과만이 중요하다. 결과가 나쁘면 모든 것이 나쁜 것이다. 감사 결과 경남FC가 존속해야 할 것으로 결정되면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아니면 전격 해체할 것인지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 그러면서 그는 곧바로 경남FC 사장과 임원, 감독, 코치 등 무려 26명에게 일괄 사표를 내도록 지시했다. 또한 지난 9일 열린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선수를 지명하지 않았다.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 정말 구단 해체까지도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새다. 경남은 도지사의 결정으로 인해 사상 초유의 구단 해체라는 최악의 경우에도 이를 수 있다.
나는 홍준표 도지사의 분개를 이해한다. 구단주로 있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경남과 격돌한 광주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발휘한 것과 달리 경남은 이렇다 할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당연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홍준표 도지사가 구단 관계자 26명에게 사표를 내라고 지시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말대로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하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면 될 것을 해체 운운하며 너무 나갔다. 재난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경을 해체하는 것과 다를 게 별로 없다. 문제가 있으니 없애자? 그랬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을 게 무엇인가.
일단 바로 잡아야 할 게 있다. 홍준표 도지사는 “넥센 히어로즈 운영에 넥센이 40억 원을 낸다고 한다. 우리는 경남 운영에 130억원의 예산을 쓰고도 넥센의 10분의 1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고도 프로축구 구단이라고 할 수 있나”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언론 플레이’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 경남이 130억 원의 예산을 쓰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면서 이런 곳에 130억 원이나 세금을 들이 붓는 게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참 그럴싸하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이중 10억 원 남짓이 도에서 지원받는 예산이고 나머지는 기업 후원금 등으로 이뤄졌다. 10억 원도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는 성남FC와 광주FC 등이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금액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도지사의 역량으로 기업 후원금 역시 구해올 수 있었지만 경남이 1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지자체 투자 비용만으로 운영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도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수준의 투자를 받고 있다. 경남FC가 마치 전부 다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도지사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진짜 ‘동네 축구’가 돼버린 ‘홍준표의 경남’
홍준표 도지사는 2012년 12월 도지사로 취임한 뒤 이렇게 말했다. “현재 경남은 동네 축구 수준이다. 축구 전문가로 프런트를 구성해 제대로 된 운영을 맡기겠다.” 그리고 그가 데려온 이가 바로 안종복 대표이사다. 안종복 대표이사는 인천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전문 경영인 출신이지만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홍준표 지사의 선거캠프에 참여한 인물로 대표이사 취임 당시에도 보은 인사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뭐 이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홍준표 도지사 말대로 ‘동네 축구’ 수준이던 경남FC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축구 전문가를 데리고 왔다고 기대해 볼만했다. 하지만 이후 경남의 행보야 말로 진짜 ‘동네 축구’ 수준이 됐다.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내리며 역할을 축소 시켰고 세르비아에서 데려온 기술고문이 실질적인 수석코치 임무를 맡기도 했다. 여기에 수 차례 감독이 바뀌더니 이 기술고문이 리그 막판에는 아예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코치진 인선이 그야말로 ‘동네 축구’ 수준이었다.
진짜 감독이 있고 그를 보좌하는 수석코치가 있었지만 경남은 이 수석코치를 내쳤다. 여기에 외국인 기술고문이라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감독 행세를 하더니 급기야 감독대행 자리까지 차지했다. 정상적인 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구단 고위층과 이흥실 수석코치가 선수 기용 문제로 여러 차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흥실 수석코치가 재활 선수를 관리하는 역할로 강등된 건 ‘괘씸죄’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코치진 인선에 구단주인 홍준표 도지사 잘못은 없을까. 왜 자기만 피해자인 것처럼 빠져 나가려 하는가. 자신도 경남FC 운영을 맡은 가족이고 그중에서도 수장이면서 “밑에 애들이 못해 해체까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피해자 입장에 서려 하는지 묻고 싶다. 만약 경남이 좋은 성적을 거뒀더라면 구단주로서 여기 저기 업적을 알리고 다니지 않았을까.
참고로 경남은 2009년에는 리그 7위, 2010년에는 리그 6위, 2011년에는 리그 8위를 차지했었다. 리그 참가 팀 수가 15~16개에 이르던 시절 이룬 훌륭한 성적이었다. 팬들은 그런 경남을 ‘도민구단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팀에 새로운 구단주가 등장해 지금까지 경남은 ‘동네 축구’ 수준이라고 했을 때 엄청난 기대를 했다. 앞으로 경남이 홍준표 시대를 맞이한 뒤 우승이라도 차지할 줄 알았다. 하지만 리그 6위에 오르고도 ‘동네 축구’ 소리를 듣던 경남은 홍준표 도지사 부임 이후 2013년에는 14개 팀 중 11위에 머물렀고 2014년에는 12개 팀 중 11위에 그친 뒤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결국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동네 축구’ 시절이 참 그립지 않나. 부임 후 ‘동네 축구’ 운운하며 앞으로 대단한 성공이라도 거둘 것처럼 과거를 무시하던 구단주 또한 이번 강등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
홍준표 구단주의 축구에 대한 몰이해
더군다나 홍준표 도지사는 축구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했다. 홍준표 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K리그가 야구에도 없는 승강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야구에 없는 걸 축구에서 먼저 하면 안 된다는 말일까. 전세계 상당수, 아니 대다수 축구리그에서 이뤄지는 게 바로 승강제다. 그런데 단순히 야구에서 이뤄지지도 않는 걸 축구에서 시행할 이유가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조금이라도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치인인 그가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려한다. “아니, 일본에도 없는 대통령제를 우리가 시행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여기에 홍준표 도지사는 “야구는 일주일 동안 6경기를 하는데 반해 일주일에 한 경기만 하는 K리그가 어떻게 인기가 있기를 바라겠느냐”고도 했다. 우리 구단주님 말대로 축구도 일주일에 6경기씩 하자. 그러면 인기가 야구 못지 않게 올라갈 테니까. 홍준표 구단주는 축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내가 더 황당하게 생각한 발언은 이게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홈팀 이점이라는 것은 응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 판정에 있음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이를 개선할 조치는 취하지 않고 야구에서 시행하는 비디오 판정을 축구에 도입해야 함에도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는 게 놀랍다. 홈팀 이점이 심판 판정에 있다? 큰일 날 소리를 너무도 당당하게 한다. 홈팀 이점이라는 건 익숙한 경기장에서 더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는 것뿐이지 홈팀이라고 해 심판 판정을 유리하게 해주는 게 절대 아니다. 이건 동네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도 안다. 홈팀이라고 해 줘서는 안 될 페널티킥을 주고 원정팀이라고 해 주어져야 할 페널티킥을 묵살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이런 이가 바로 ‘경남도민 프로축구단 구단주’다. 세상에 어떤 구단주도 이렇게 축구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질 수는 없다. 같이 판정에 문제를 삼았다고 매번 경기장을 찾아다니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그를 동급으로 놓고 비교하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 섭할 거다.
축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니 K리그 챌린지 강등으로 해체까지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축구에서 승격과 강등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말이다. 강등 당했다고 해체 운운하는 모습을 보니 대전시장, 광주시장은 참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해체 직전에 놓인 팀을 살려 놓은 성남시장은 뭐 거의 신이다. 문제가 있다고 해체해 버리려는 모습이 참 비겁하다. 또한 여기에 방만한 운영을 묵살한 건 1차적으로 구단의 책임자인 구단주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뇌부가 다 사표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홍준표 구단주 스스로도 어느 정도 여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피해자인 척, 나는 경남이 이렇게 강등 당한데 아무 잘못도 없는 척 빠져 나가서는 곤란하다. 내 새끼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못가고 변변치 않은 지방대학교 갔다고 해 내 자식도 아닌가. 홍준표 도지사의 언행 자체가 한국 축구의 뿌리인 K리그 챌린지에 대한 모독이다.
경남FC는 홍준표 도지사 개인 소유가 아니다
또한 경남FC는 도지사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경남FC 창단을 준비 중이던 2005년 도민주 청약 첫날에만 1억4천만 원을 모았고 한 달 만에 목표액을 훨씬 초과하는 77억 원을 모을 정도로 경남 프로팀을 원하는 이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한 서예가는 구단에 직접 제작한 병풍 20벌을 선물하기도 했고 경남지방경찰청은 전국경찰축구대회 우승 상금 100만 원을 발전기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단순히 구단주라고 해 혼자서 이 팀을 공중분해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도 경남FC 지분의 41.08%는 3만9376명의 도민들이 갖고 있다. 도민주주들은 평균 10만원의 쌈짓돈을 낸 셈이다. 그런데 구단주가 이 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체를 지시하는 것이야말로 독재 아닐까. 경남FC는 도지사 혼자만의 것이 절대 아니다. 도민들이 한두 푼 모아 만든 팀이기 때문이다.
특별 감사? 당연히 해야 한다. 누가 경남 축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밝혀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감사가 해체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문제가 있다고 아예 조직 자체를 없애는 이 사회의 풍토가 과연 합당할까. 팀이 2부 리그로 가면 해체한다? 아들이 지방대 가면 호적에서 파 버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홍준표 도지사는 지금 한참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남FC는 홍준표 도지사 개인 소유가 아니다. 운명이 걸린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리던 지난 6일, 강등되면 해체까지도 불사하겠다던 홍준표 구단주는 경기장이 아니라 부산 해운대에서 부산시장과 웃으며 등산을 하고 있었다. 경남의 강등을 막기 위해 과연 구단주로서 최선을 다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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