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올 시즌 K리그를 정리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축구계에 핵폭탄급 이슈가 등장했다. 바로 성남FC 구단주인 이재명 시장의 글과 말 때문이다. 지난 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심판의 잘못된 경기 운영 때문에 성남이 강등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한 그는 이후 연맹에서 자신의 징계에 대해 논의하자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재명 구단주는 어제(2일) 기자회견을 열고 “심판 비판 절대 금지와 같은 절대 금지 성역은 없어져야 한다. 구단주의 징계 회부는 한국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면서 “연맹과 전면전을 선언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재명 구단주와 연맹, 언론의 피 튀기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프로 정치인 이재명 시장?

누군가는 이게 이재명 구단주의 정치적인 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일정 부분은 이에 동의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정말 프로 정치인다웠다. 나는 지난해 이맘 때쯤 성남이 해체되느냐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느냐의 기로에 놓였을 당시 성남 팬들의 이재명 시장 면담에 동석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때 이재명 시장의 언행은 부정적으로 남아있다. 어린 성남 팬들이 “제발 우리 팀을 살려 달라”고 해도 그는 “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인데 설득력이 부족하다”면서 한껏 부정적으로 말했다. 어린 친구들을 ‘말빨’로 가지고 노는(?) 그가 야속했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건데 일단은 최선을 다할 테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어디 덧나나. 애들 앞에서 참 말 한 번 야속하게 하네.’ 이렇게 면담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얼마 뒤 이재명 시장은 그간의 부정적인 입장을 완전히 뒤바꿔 시민구단 전환이라는 대반전을 펼쳤고 성남 팬들은 그를 ‘갓재명’이라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구단주 머리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도 이런 상황까지 다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정치인이라는 게 보통 머리로 되는 게 아니고 이재명 구단주는 그 중에서도 정말 프로 정치인이라는 걸 느꼈다. 그는 극적인 반전 효과를 잘 알고 있었고 결국 다 죽어가던 성남 축구를 살려냈다. 처음부터 “시민구단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보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온갖 엄살을 부리다가 대반전을 이뤄내는 모습은 포커페이스 후 ‘삼팔 광땡’을 내려 놓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프로 정치인이 어린 축구팬 몇 명 가지고 노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이재명 구단주는 이런 과정을 통해 큰 결단을 내렸다.

이재명 구단주의 이번 발언도 분명히 정치적인 목적이 단 1%라도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프로 정치인 이재명 시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핵심은 이게 정치적인 목적을 얼마나 띄고 있냐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정치적인 목적이고 뭐고를 떠나 연맹이 ‘까일거리’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된다. 그러면 아무리 이재명 구단주가 정치적으로 축구를 이용하고 연맹을 발판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연맹은 이미 이재명 구단주에게 ‘까일거리’를 제공했다. 이재명 구단주가 언급한 오심 세 경기 중 한 경기는 이미 연맹 심판위원회에서도 잘못된 판정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다른 한 경기는 내부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오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논란의 판정을 제공했으니 여기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더라도 ‘까일거리’를 준 건 연맹의 잘못이다. 속내는 다 무시하고 정치인이 이런 발언을 해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건 아니냐고 의심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는 아니다.

이재명 구단주의 논리를 깨지 못하는 이들

이재명 구단주는 변호사 출신이다. 어제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타당한 논리를 준비해 왔다. 판넬까지 만들어 자신의 주장이 왜 옳은지 설명했다. 이재명 구단주는 ‘심판 판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언급이나 표현을 할 수 없다’는 연맹 규정 제 3장 36조 5항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스위스전 당시 “판정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는데도 골 판정이 난 것에 대해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는 정몽준 당시 협회장의 발언을 언급했고 지난달 18일 이란전 패배 후 “주심과 부심 모두 큰 오심을 범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부당한 골을 허용한 것”이라는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의 발언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심판 판정에 대해 부당함을 표하는 이들은 징계를 받지 않았는데 연맹은 심판 판정 불만 금지라는 성역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다. 여기에 어떤 논리적인 오류가 있는가. 당연히 귀 기울여야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언론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재명 구단주가 기자회견에서 말을 돌리고 끊고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만 했다면서 그를 비판한다. 해를 가리는 손가락을 향해 “손톱이 길다”고 하고 있다. 이재명 구단주를 비판하려면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을 깨야하는 데 말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이재명 구단주가 “기자들이 연맹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한 말에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구단주가 주장한 논리는 깨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연맹은 연맹 나름대로 규정을 만들었고 이는 정몽준 회장이나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과는 별개로 연맹의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구단주의 논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저 본질은 심판 판정 불만 금지 조항이 아니라 프로축구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걸로 몰고 가고 있다. 이재명 구단주의 논리를 깨려면 그보다 더 논리적인 주장을 들고 나오면 되는데 말이다. 정치인의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리와는 어긋난 주장도 나온다.

연맹도 스스로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그동안 ‘심판 판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언급이나 표현을 할 수 없다’는 연맹 규정 제 3장 36조 5항에 대해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감독들도 기자회견장에서 이 규정에 묶여 불만을 나타내지 못하고 돌려 규정을 비판하는가 하면 아예 대놓고 벌금을 물을 각오로 불만을 표한 경우도 많다. 그래도 연맹은 지금까지 이 규정 개정에 대해 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슈퍼갑’ 행세를 했다. 하지만 이재명 구단주가 강하게 나가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연맹에서는 이재명 구단주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이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수정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이재명 구단주가 전면전까지 선언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발을 뺐다. 그러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동안 그들의 입을 막던 연맹은 어디 다른 나라 축구연맹이었나. 규정을 수정한다고 해 지금까지 이 규정에 걸려 냈던 벌금을 돌려주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이재명 구단주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그동안 ‘슈퍼갑’이었던 연맹은 스스로 지금까지의 논리를 뒤집는 꼴이 됐다.

이재명 구단주의 너무 나간 ‘승부조작 언급’

물론 이재명 구단주도 잘못한 부분은 명백하다. 축구계에서는 가장 민감한 승부조작을 언급했고 여기에 부산전 오심을 이야기하며 “정몽규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언론에서는 이 의혹의 ‘팩트’를 가져오라고 하고 연맹은 이게 K리그의 명예를 실추시켜 징계 사유가 된다고 했다. 이건 당연히 이재명 구단주의 명백한 잘못이다. 오심이야 이미 연맹에서 인정한 부분도 있으니 이재명 구단주의 논리를 뒷받침하기에는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재명 구단주는 확인되지도 않은 가장 민감한 승부조작과 편파판정까지 언급했다. 너무 나갔다. 이재명 구단주와 연맹, 그리고 언론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 구단주는 “너희들이 판정 잘못해놓고 왜 불만도 말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하고 연맹과 언론에서는 “그건 됐고 승부조작 증거 있어?”라고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 갈등이 봉합될 리 없다. 나는 심판 판정이 개선되어야 하고 연맹 규정 제 3장 36조 5항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지만 이재명 구단주의 승부조작 언급은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건 이재명 구단주가 승부조작과 편파판정을 언급했다고 해 중징계를 당하고 다시는 그 누구도 승부조작의 의혹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이다. 실제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끝난 뒤 차범근 감독은 “프로축구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뒤 중징계를 당했었다. 진상 조사조차 없이 그저 차범근 감독을 내쳤고 모든 축구인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후 2011년 K리그에서 승부조작이 터질 때까지 그 누구도 다시는 승부조작이라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됐다. 만약 이번 발언으로 이재명 구단주가 징계를 당한다면 다시 승부조작이라는 단어는 축구계에서 영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이제는 축구계에서 승부조작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연맹은 이재명 구단주의 발언 이후 단 한 차례라도 승부조작이나 편파판정에 대해 진지하게 이를 조사할 자세를 취한 적이 있나. 승부조작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저 일개 팬이 한 말이 아니라 한 구단의 구단주가 이런 말을 했다면 사실 확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징계는 그 이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그저 이 단어 하나에 발끈해 그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게 1998년과 다를 게 뭔가.

나는 이재명 구단주의 섣부른 승부조작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그를 지지한다. 심판을 ‘슈퍼갑’으로 만들어 버린 연맹 규정 제 3장 36조 5항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용기 있게 나선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싶다. 나는 이 조항이 철폐되고 언젠가는 이재명 구단주의 용기에 대해 재조명할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재명 구단주가 할 일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정말 이게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의 ‘쇼’가 아닌지 입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내년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된 성남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끝까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올 시즌 막판 인천 원정 경기까지 따라가 성남을 응원하던 그 모습이 시즌 내내 이어진다면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부실한 숙소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전용구장 건설 등도 부딪히고 깨지며 달성해내는 게 그가 이 진정성을 인정받는 일이다.

연맹, ‘성역’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연맹도 징계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되돌아 봤으면 한다. 나는 며칠 전 칼럼에서도 “단순히 심판의 자질 문제일 뿐 스폰서를 밀어주기 위한 편파 판정 같은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승부조작이라는 끔찍한 일이 K리그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팀의 구단주가 왜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서슴 없이 꺼내고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또한 이재명 구단주의 말을 무시하고 징계만 내릴 게 아니라 정말 K리그에는 ‘성역’이 없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최악의 사태는 징계로 누군가의 입을 막아 다시는 이런 문제를 공론화 할 수 없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재명 구단주가 정치적인 목적을 띄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연맹이 심판 판정의 부정적 언급을 막는 것 자체가 더 정치적인 일이다. 이 조항으로 축구인의 언행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권력의 상하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다? 아니다. 악법은 싸워서 바꿔나가야 한다. 경남FC 구단주인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어제 이재명 구단주를 지지했다. K리그가 여·야의 대통합을 이뤘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