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년 전 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WK리그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부산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군대에 가야한다는 내용을 공개한 칼럼이었다. 구단, 아니 군대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은 부산관 계급장을 달기 위해 정신교육과 사격훈련, 화생방 등 일반 부사관이 받는 훈련을 똑같이 무려 16주간이나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뜩이나 구단 수가 부족한 WK리그에서 부산상무의 존재가 참으로 고맙고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었다. 여기에 부산상무에 입단하면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직업 군인으로 지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같은 취업난을 감안하면 이 팀의 선택을 받는 걸 반기는 여자 선수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선수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축구와 전혀 상관 없는 군사 훈련을 16주간이나 받고 군인이 되어야 이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건 대부분의 여자 선수들에게는 반기고 싶은 일이 아니다. 실제로 부산상무의 지명을 받고 심각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한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쉽게 드래프트를 거부할 수가 없다. 드래프트를 거부할 경우 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2년이 흐른 뒤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해 또 다시 부산상무의 지명을 피할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부산상무의 선택을 받았는데 이를 거절한다는 건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처음 이 문제를 거론한 뒤 이 문제는 시한폭탄과도 같았지만 그 누구도 다시 이 문제를 공론화 한 적은 없다.

<지난 칼럼 다시보기 : [김현회] 축구를 위해 무조건 군대 가야하는 여자축구의 현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0930n04114

W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한 두 소녀

그런데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4년 전 칼럼을 통해 지적했지만 바뀌지 않던 이 제도 때문에 결국 엄청난 피해자가 나오고 말았다. 올 시즌 부산상무의 지명을 받은 네 명 중 두 명이 고민 끝에 부산상무의 선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이 두 선수는 프로 선수로의 꿈을 품은 채 지난 4일 열린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응했지만 결국 부산상무에 지명된 뒤 이를 거부해 사실상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축구선수의 꿈을 꾸며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만 매달렸던 이 두 선수는 이제 그 어떤 구제도 받을 수가 없다. 축구선수로서의 희망을 이어가는 방법은 16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고 군인이 돼 부산상무에서 뛰거나 아니면 2년 동안 소속팀 없이 시간을 보내다 다시 드래프트에 응시하는 방법 뿐이다. 이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결국 내년 시즌 그토록 원하던 WK리그 무대를 밟을 수 없게 됐다.

드래프트를 거부한 이 둘뿐 아니라 이번에 부산상무의 지명을 받은 다른 선수 한 명도 결국 강제로 군대에 가야하는 현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전국체전 참가로 현장에서 드래프트를 지켜보지 못한 한 선수는 부산상무가 자신을 지명했다는 소식을 동료들로부터 접한 뒤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선수는 고민 끝에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나가기 위해 군 입대를 받아들였다. 이번에 상무의 지명을 받은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만이 “고등학생 때부터 상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부산상무에 입단함으로써 군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이 생기는 것이니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한 명은 눈물을 흘리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두 명은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말았다. 드래프트라는 제비뽑기 한 번으로 선수 생명이 사실상 끝나고 만 것이다.

그녀들이 축구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이 선수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축구만을 바라보고 WK리그를 목표로 삼으며 열심히 운동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사라졌다. 둘 중에 하나다. 군대를 받아들이고 축구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아예 축구를 포기하는 것뿐이다. 이건 WK리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나온 여자 연예인들처럼 그저 방송 촬영을 위해 며칠 군대 체험을 한 뒤 이걸 마치 정말 군대에 다녀온 것처럼 자랑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들은 진짜 군인이 돼 16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이후에도 부사관으로 복무해야 한다. 애들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이들은 이 훈련 기간 동안 진짜 군인이 받는 모든 훈련을 다 받아야 한다. 유격과 화생방 훈련, 사격 훈련, 행군, 정신교육 등을 통해 축구선수 이전에 진짜 군인이 되어야 한다. 그저 자기가 지금껏 해온 축구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정말 순수한 의도로 군인 신분의 축구선수가 되길 바라는 이들만이 상무에 속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부산상무에 지명된 선수 중 18명이 결국 의무복무 기간이 끝난 뒤 군대를 떠났다. 전체 지명 선수 중 무려 75%에 달하는 수치다. 결국 대부분의 선수들은 드래프트에서 상무의 지명을 받은 뒤 이를 거부하면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게 두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군에 입대하고 기간만 채우면 팀을 떠난다는 의미다. 2012년에는 한 선수가 훈련에 소극적이고 팀워크에 저해되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상무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상무에서 뛰다 퇴출되면 축구를 포기한 채 병과를 바꿔 부사관으로 장기복무하거나 강제 전역하는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녀들은 늘 이렇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은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팀 수가 부족한 WK리그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 부산상무의 존립이 위태로워 질까봐 쉬쉬하고 있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부산상무가 존재한다는 건 WK리그와 한국 축구를 위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팀 수가 적은 상황에서 이 한 팀으로 인해 뛸 기회를 잡은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너무 강제적이라는 거다. 부산상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6개 WK리그 팀들이 신인 드래프트를 진행한 뒤 여기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들 중에 지원자를 받아 부산상무를 꾸리는 게 훨씬 나은 방법 아닐까. 그러면 적어도 본인 의사에 따라 군 입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운명의 제비뽑기 한 번으로 축구를 계속하려면 무조건 군대에 가야하는 여자들이 생겨나는 지금의 시스템은 ‘강제 징용’에 가깝다. 이 문제를 축구계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인권 문제로 더 커질 소지가 충분하다. 괜히 축구계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되고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축구계의 인권 유린이 빠른 시일 안에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두 소녀, 축구계로 돌아올 순 없을까

두 소녀가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할 각오로 군 입대를 거부한지도 20여일이나 흘렀다. 남자축구 A매치와 해외에서 뛰는 스타들의 활약, K리그 막판 순위 싸움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열광하는 그 동안 이 두 소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결국 WK리그 입성을 포기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두 소녀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언론에는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이 두 소녀가 축구를 그만둬도 축구계는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한 한국 축구는 발전할 수 없다. 이번에 상무의 지명을 거부한 두 명 중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그녀가 답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더 할 말도 없어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많이 다쳤고 희망까지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축구가 세계를 제패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축구를 하기 위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는 여자선수들이 있는 나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들 과연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이 두 소녀에게 다시 축구선수로서의 기회를 주는 게 진정한 여자축구 강국이 되는 첫걸음 아닐까. 그녀들에게는 축구를 사랑하고 축구로서로서의 꿈을 키운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군대가 아니면 은퇴를 선택해야 하는 이 잔인한 드래프트가 사라져야 한다. 다시 이 두 소녀가 축구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소연, 황연정 선수가 다시 축구계에 돌아올 수 있길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