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축구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히(?) 개봉했다. 스타 선수의 일대기를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한 팀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국내 최초 지역아동센터 유소년 축구단 희망FC를 주제로 한 이 영화를 본 이들은 호평 일색이다. 가난해도 축구를 통해 행복을 찾는 아이들을 다룬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지난 6일 개봉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를 주제로 한 영화 <비상> 이후 무려 7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임유철 감독을 직접 만나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유철 감독을 직접 만나 새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반갑다. 요새 어떻게 지내나.

영화를 홍보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방의 관객수를 보니 처참한 수준이라 이 추세로라면 영화를 금방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알릴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나도 어제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하는 극장 찾기도 쉽지 않았다.

<비상> 때는 9개관에서 상영을 했고 그 중 한 관은 아예 <비상>만 틀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관에서 여러 영화를 트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상영 시간대도 아침 일찍이나 밤 늦게다. 아이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는데 참 보기에 불편한 시간대다. 극장에서는 돈과 직결되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아쉽기는 하다. 개봉 초반에 더 흥행에 탄력을 받았으면 좋을 텐데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사정에서도 축구를 하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감동받았다. 무려 5년 동안 준비한 작품다웠다.

2009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당시 경남 지역에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박철우 감독을 알게 됐는데 이 분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원래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사회복지사가 된 그 분은 보육원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직접 경험했다더라.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나가 독립해야 하는 아이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아 중학교 시절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는데 축구를 하면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 출신도 아니고 농사 지으면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그 분이 직접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따 팀을 운영하는 거였다. 이 팀을 꼭 영화로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여러 문제가 생겨 보육원 축구팀을 유지하지 못했고 박철우 감독과 함께 가난한 아이들이 모인 지역아동센터 축구팀인 희망FC를 새로 창단하게 됐다. 그게 바로 우리 영화의 내용이다.

어떤 면에 중점을 둔 영화인지 소개해 달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자와 투자자를 이어주는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작가협회장이 내가 만들고 있던 이 영화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더라. “임감독, 이거 감독 중심 말고 아이들 중심으로 가는 게 맞지 않아?” 나도 마침 그렇게 느끼고 있던 때였다. 가난해도 축구 하나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 원래 제목이었던 <축구감독 박철우>를 <누구에게나 찬란한>으로 바꾸고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찍은 영화다. 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희망FC라는 팀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이전에 가난한 아이들을 내세워 돈을 벌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영화가 개봉했으니 믿어주시겠지만 촬영 당시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마치 앵벌이처럼 돈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넌 누구냐, 뭐하는 애냐’ 이런 시선이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카메라 앵글 같은 건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이 팀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느냐는 걱정이 훨씬 더 컸다. 인터넷 모금을 통해 후원 받은 돈 6백만 원도 결국 두 달 만에 다 떨어졌었다.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나.

집안 사정이 괜찮은 아이들이면 그저 축구만 가르치면 된다. 그런데 희망FC 아이들은 다들 형편이 좋지 못하다. 그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다 해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았다. 우리 영화 프로듀서는 영화를 프로듀싱하는 게 아니라 축구팀 뒷바라지 하는데 더 고생했다. 내가 투자 받은 돈이 있었는데 이걸 영화 만드는데 쓰지 않고 구단 운영에 쓰면 배임이 되는 거라 그러지도 못했다. 영화 제작을 명목으로 투자 받은 돈은 제작에만 써야한다. 그나마 자유로운 게 프로듀서에 책정된 인건비 2천만 원이었는데 결국 프로듀서가 이 돈을 포기하고 모두 아이들을 위해 내놓았다. 드라마 제작자라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데 자기 돈까지 쓰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단순히 영화만 찍는 게 아니라 구단까지도 운영해야 해 힘들었다.

배우 유승호도 이 아이들을 도왔다고 들었다.

앞서 말한 프로듀서가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거기 주인공이 유승호였다. (유)승호가 원래 좋은 일도 많이 하는데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더라. 지금 당장 돕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들만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망FC 아이들은 가난한 거지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지 않나. 정중히 도움을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축구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이후 우리 영화 예고편을 보여주니 마음이 바뀌었고 결국 2천만 원을 지원해줬다. 그래서 팀이 겨우 유지될 수 있었다. (유)승호는 우리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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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철 감독의 새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지난 6일 개봉했다.

5년 동안 준비한 영화를 90분 짜리로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촬영 원본 분량도 엄청날 것 같다.

<비상> 때는 촬영 테이프가 6백개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더 많았다. 촬영 원본 분량만 18테라바이트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 촬영본을 틀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다 보는데만 6개월이 걸리는 분량이다.

내 컴퓨터에 야동이 1테라바이트인데 내 야동의 18배라면 정말 엄청난 분량이다.

1테라바이트는 애교 수준이다.

그러면 아쉽지만 편집을 해야 했던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영화 초반에 나왔다가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지만 결국 술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반대로 이 아이들이 희망FC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아이들 사연이 많았지만 결국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막판에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데 앞 부분에서 이 아이들을 부각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박철우 감독 후임으로 팀을 이끈 김태근 감독의 재미있는 훈련 방식도 많이 편집됐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뛰어다니며 다른 아이를 잡는 술래잡기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공간과 압박을 가르치는 등 재미있는 훈련이 많았다. 김태근 감독은 그 많은 시간을 촬영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겹치는 훈련 방식이 아닌 새롭고 흥미로운 훈련을 했다. 그런데 시간상 훈련 장면을 너무 많이 보여줄 수 없어 아쉽지만 편집해야 했다.

그러면 아이들과 함께 촬영하고 생활하면서 가장 마음 따뜻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를 할 때 아이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워낙 돈이 많이 들어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아이들인데 그 와중에도 동료를 걱정하고 김태근 감독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이 팀을 허투루 운영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이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보니 결국 희망FC는 지금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개가 나온다. 다시 희망FC가 살아날 방법은 없나.

모금을 하고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건 다시 살리려 고민 중이다. 졸업생들도 다 우리 아이들이니까 지원을 할 생각이고 김태근축구교실 쪽도 지원을 하고 싶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축구계 내부에서 이 팀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다행히 대한축구협회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이 팀이 경남 지역에 있다고 해서 경남만의 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FC는 경남FC 유소년 팀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이 아이들과 김태근 감독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김태근 감독은 원래 공장에서 일하며 주말에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던 분이었는데 지금도 3교대로 일을 하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건 관객분들이 김태근 감독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한테도 “이 아이들의 10년 뒤 모습도 찍을 것이냐”고 묻는다는 거다. 그건 소비하는 방식 아닌가. 희망FC에 관심이 생겨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다른 아이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 나온 아이들은 그 자체로도 혜택을 받은 건데 이 아이들만 주목할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새로운 아이들이 계속 이 팀에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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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감독은 영화에서 인자한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가르친다.

축구인들도 이 영화를 돕기 위해 나선 걸로 알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굉장히 많이 도와줬다. 원래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신태용 감독을 만나 내가 희망FC 이야기를 꺼내니 듣자마자 “그래. 이런 건 도와야지”라고 하시면서 곧바로 홍명보 감독에게 전화를 하는 거다. “명보야. 너 인터뷰 좀 해야겠다”하면서 바로 홍명보 감독을 연결해줬다. 홍명보 장학재단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이 팀을 만들려고 5년 동안 별짓을 다했다. 박철우 감독이 시골 농부라 PPT 같은 건 꿈도 못꾼다. 그래서 우리가 다 자료를 모아서 협회나 기업 등을 오가며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축구 기자들도 많이 도와줬다. 반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경남FC 쪽에서는 밑에 직원들은 다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고 경상남도 공무원들도 하려고 하는데 위에서 움직이지를 않는 거다. 결제를 안 해주니 뭘 할 수가 없었다. 경남FC 안종복 사장은 <비상> 촬영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제 내 전화도 받질 않는다.

고생해서 만든 영화인데 흥행은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나.

흥행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은 오로지 이 축구팀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는 잘 되는데 희망FC에 여전히 사람들 관심이 없으면 이건 거의 사기치는 영화가 되는 거다.

그래도 흥행이 돼야 희망FC에 대한 관심도 따라오지 않을까.

관객 한 명 한 명을 돈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자기 목소리를 내주면 그게 여론이 되는 거다. 우리가 원하는 게 그거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이건 의미가 있다’고 받아 들여 주시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을 보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면 주변에 티켓을 선물해서 분위기가 모였으면 한다. 그런데 아마 이런 식으로 흥행이 되지 않으면 극장이 반으로 줄고 거의 참패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 경남 한 극장에서는 두 명이서 영화를 봤단다.

내가 본 극장에는 나를 포함해 관객이 딱 세 명뿐이었다.

그러면 극장에서는 버틸 수가 없다.

이번 영화를 통해 유소년 축구가 어떤 식으로 발전되길 바라나.

프로듀서가 인건비를 포기하고 (유)승호가 기부를 하면서 희망FC가 근근이 운영됐는데 사실 이런 방식으로 팀이 운영되면 안 된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K리그 산하에 이런 의미 있는 유소년 팀을 하나씩 보유했으면 한다. 성적이나 유능한 선수를 원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축구를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펼쳐줬으면 좋겠다. K리그 팀은 단순히 그 지역에서 경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사회 축구의 정점이다. 최고의 축구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고 축구의 모든 네트워크가 핵심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바로 K리그다. 지도력이나 노하우도 최고 수준이다.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팀 이름도 빌려주고 교육적인 노하우를 지원해줬으면 한다. 구단에서 이런 식으로 지원하면 복지부나 교육부에서도 지원할 예산이 있다. 공무원들을 만나봤더니 안정적인 배경만 있다면 이런 아이들을 위한 축구팀에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라.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가난하지만 축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소개하고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이렇게 세 군데가 합작하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조금 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수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통해 가난이라는 껍질을 뚫고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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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에게 축구는 어려운 사정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나도 이런 좋은 취지의 일에 도울 게 있다면 돕겠다. 그렇다면 이제 <비상> 이야기를 해보자. <비상>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에 남을 명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당신의 선택은 인천유나이티드였나.

처음에는 FC서울을 취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사실 첫 경기가 진짜 인천의 첫 경기가 아니었다. 인천과 서울의 경기였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다들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할 때 인천 선수들이 아니라 서울 선수들이 잡힌다. 원래는 서울을 위한 영화로 처음에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시기 박주영이 뜨면서 내가 찍고 있는 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연예 정보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나는 조광래의 아이들을 찍고 싶었는데 모든 언론이 박주영한테 다 몰렸다. 또한 당시 이장수 감독이 성적 스트레스도 있고 너무 힘들어하더라. 이렇게 계속 괴롭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서울 선수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워낙 언론에서 박주영만 찾으니까 선수들이 우리 카메라도 ‘박주영을 찍는데 우리가 곁다리로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라커룸을 개방해 주지 않았다. 기존 기자들이 보는 것과 똑같이 보는 걸로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가 없었다.

<비상>은 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스포츠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 돈도 꽤 벌었을 것 같다. 당신 옷 비싸 보인다.

내가 그때 영화사에 소속된 직원이었는데 원래 그 회사에서 이장수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60억 원짜리 극영화 <충칭의 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마케팅비 명목으로 1억 원을 줄 테니 나보고 축구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라고 한 거였다. 그런데 찍어보니까 욕심이 나고 괜찮은 축구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서울을 주목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제대로 된 스토리는 인천에 있으니 인천을 찍겠다고 회사에 말했지만 회사에서는 반대했다. “그러면 제작비 1억 원을 줄 수 없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 결국 내 개인 돈 1억 5천만 원을 들여 <비상>을 촬영했는데 후반 제작비 1억 원이 더 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돈이 더 없어 다른 영화사에 개봉 전에 내가 쓴 제작비 1억 5천만 원을 돌려받기로 하고 권리를 다 넘겼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해 그 영화사는 돈을 꽤 벌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돌려받기로 한 1억 5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 빚을 갚느라고 지금까지 고생하다가 7년 만인 이번에야 다음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저런. 원래 이번 영화가 더 빨리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고생이 많았다. 그렇다면 당시 인천의 돌풍을 예상했었나. 영화를 찍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본격적으로 찍을 때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전기리그가 끝날 때쯤 빅클럽들이 울산을 빼면 상황이 다 좋지 않았다. 수원과 서울, 성남이 부진했고 부산이 잘 나가고 있었다. 이러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선수들도 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비상> 촬영 당시 가장 협조적이었던 선수는 누구인가.

(임)중용이가 처음에는 카메라가 있으면 찍지 말라고 하고 굉장히 까칠하게 대하다가 내가 성균관대학교 선배인 걸 알고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형님. 뭐든지 하세요.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말이 별로 없는 (최)효진이나 (김)치우도 되게 협조적이었고 다들 착했다. 라돈치치는 영화에 내보낼 만한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았는데 꼭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알몸으로 나오는 바람에 많이 편집됐다. 자꾸 덜렁덜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데 이걸 영화에 어떻게 쓰나. 그때 (이)요한이가 막내였는데 요한이 올 누드도 있다. 진짜 선수들이 너무 순수해서 다큐멘터리 찍는 맛이 났다. 까칠했던 건 (방)승환이 정도다.

'감독도_놀란_라돈치치의_존슨.avi' 파일은 따로 좀 보내달라. 그런데 <비상>은 아무리 리얼해 보여도 영화 아닌가. 설정이나 연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연출은 없고 자리를 만든 적은 있다. (김)치우와 (최)효진이가 경기에서 지고 대화를 하다 다투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내가 “오늘 경기 졌는데 무슨 대화 같은 것도 없어? 이야기 좀 해봐”라면서 자리를 마련했다. 연출하거나 대사를 주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얘네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진짜로 싸우는 거다. (임)중용이가 눈이 보이질 않아 병원에 찾아가는 장면도 있는데 우리가 이걸 나중에 알았다. 병원 갔다 왔다고 해서 “갈 때 얘기를 했어야지”라고 했더니 “괜찮아요. 별 거 아니에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중에 병원에 다시 갈 때 따라가서 찍었다. 나중에 찍어서 시간상 앞으로 옮겨 편집할 수는 있지만 원래 현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연출은 없다. 이번 <누구에게나 찬란한>에서도 연출한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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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찬란한>은 꼭 축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환경을 딛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감동을 느낄만한 훌륭한 영화다.

축구 관련 영화를 벌써 두 편이나 찍었다. 찍으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영화라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 아닌가. 경기 장면을 어떻게 담아낼지 지금은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지만 그래도 이게 여전히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야구는 정말 미디어에 친화된 스포츠다. 중간 중간 광고도 그렇고 경기 도중에도 일대일 대결 구도가 가능하다. 투수와 포수, 투수와 타자처럼 말이다. 일대 다수도 가능하다. 선수와 선수의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키기에 효율적이다. 그런데 축구는 경기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일대일로 구도를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하다못해 꼬마 애들이 하는 축구도 클로즈업으로 한 명만 따라가는 게 너무 어렵다. 영화 앞 부분에서 이 선수가 누군지 제대로 관객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하면 경기 장면에서는 쟤가 누군지를 잘 모른다. 영화 전반부에서 최대한 인물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놓아야 한다.

원래도 축구팬이었나.

부산 사람이라 어릴 때 대우로얄즈 회원이기는 했다. 김주성과 이태호가 뛰던 당시였다. 그런데 좀 지나고 나서는 열정적인 축구팬까지는 아니었다. K리그보다는 대표팀 경기를 주로 챙겨보는 일반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 전문가 이상 아닌가. 벌써 이 분야에서만 10년째다.

전문가까지는 아니고 스토리를 뽑아내는 건 잘 할 수 있다. K리그에 부탁하고 싶은 게 이런 거다. 그 안에는 분명히 엄청난 스토리가 많은데 그걸 제대로 포장하거나 뽑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프리미어리그보다 K리그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다 못해 꼬마 아이들 축구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재미있다. 결국 문제는 K리그가 이런 스토리를 얼마나 더 발굴하고 소개하느냐의 문제다. 10년 전에 경기장에서 응원하던 그 분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응원하고 있다. 이제 그 옆에 새로운 얼굴이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하는 건 K리그에 안겨진 숙제다.

앞으로도 축구 영화에 또 도전할 생각인가.

국가대표 축구팀을 주제로 영화를 한 번 찍어보고 싶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이 됐을 때 욕심이 났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을 너무 서둘러 맡으면서 ‘아, 이건 결과가 분명히 좋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거절하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태극마크를 달고 축구하는 사람 이야기를 한 번 영화로 다뤄보고 싶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누구에게나 찬란한>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축구는 위대한 스포츠다. 다른 분야에서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초등학생에게 책임과 권한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게 바로 축구말고 또 있을까. 미드필드에서 한 아이가 공을 소유하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의 주인이 공을 마음대로 관리하거나 대충 패스하고 대충 드리블해서 빼앗긴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팀 전체에 엄청난 위기가 온다. 공격을 위해 올라갔던 아이들이 다 전력질주를 해 수비로 내려와야 한다. 아이들 축구는 체력이 굉장히 중요한 데 이렇게 몇 번 하다보면 결국은 체력이 떨어져 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초등학교 지도자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봐라. 한 명이 주인 의식이 없어서 다 이렇게 숨을 헐떡이잖아. 네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권한이 있으면 그만큼 책임도 있는 거야.” 이런 훌륭한 교훈을 어디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나. 축구는 엄청난 인생 교재다. 이 축구라는 훌륭한 교재를 통해 가난한 아이들이 더 즐겁게 인생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결과가 좋게 나오고 관객 평도 좋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FC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제는 희망이랍시고 내가 영화를 찍지 못할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꼭 도와주셨으면 한다. 영화를 보시고 이 아이들의 진심을 주변에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