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결국 박주영을 선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어제(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슈틸리케호 2기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1월 열리는 2015년 호주아시안컵을 대비한 요르단, 이란과의 두 차례 원정 평가전을 위한 대표팀에 논란 많은 박주영을 과감히 발탁했다. 일부에서는 사우디에서 이제 막 경기에 나서고 있는 박주영을 발탁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홍명보 감독 시절 ‘엔트으리’ 논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도 깔려있다. 사실 그게 대다수 네티즌의 반응이니 이 분위기에 편승하는 게 축구 칼럼을 쓰는 편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욕 먹을 각오하고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히고 싶다. 슈틸리케 감독은 현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이동국과 김신욱 부상, 그렇다면 대안은?

얼마 전 나는 이동국을 비판하려면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었다. 반대로 대입해 보면 박주영의 발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김신욱과 이동국은 나란히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근호나 조영철, 손흥민 등의 공격수가 건재하지만 이들은 사실 정통 포워드 자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표팀이란 게 하나의 전술로만 운용될 수도 없고 정통 포워드 자원은 한 명 정도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한때 유행이던 제로톱 전술이 주춤하면서 다시 정통 포워드를 앞세운 팀들이 더욱 두각을 나타내소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주영은 당연히 김신욱과 이동국이 없는 현 상황의 대안이 될 수 있다. K리그에 김동섭이나 양동현, 임상협 등 최근 컨디션이 꾸준한 선수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미 수 차례 K리그 경기장에 가 이들의 플레이를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존중한다.

누군가는 이를 놓고 또 다시 ‘엔트으리’ 논란을 들고 나온다. 홍명보 감독 시절 총애를 받았던 박주영이 축구의 변방(?)인 중동에서 뛰면서도 대표팀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협회의 입김이나 압력이 있었던 건 아니냐고 의심한다. 박주영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으니 여기에 편승하는 이들도 꽤 있다. 하지만 지금은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상황과는 다르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 바로 박주영을 뽑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실제로 그리스와의 평가전 단 한 차례 기회에서 박주영이 골을 넣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중용했다. 잘 나가던 이동국과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김신욱이라는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도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만을 고집스럽게 기용해 결국 큰 실패를 맛봤다.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상황이다. 지금은 대안도 별로 없고 아시안컵까지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평가전이다. 월드컵 본선처럼 한 경기에 모든 운명이 바뀌는 중요한 일전이 아니라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박주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직접 본 적도 없는 박주영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무성하니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이번 두 차례 평가전에서 그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계속 쓰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여러 공격 옵션에서 박주영을 배제하면 그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검증된 카드를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실패한 카드는 하나씩 지워 가면 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편견 없는 외국인 감독을 원한 이유 아닐까.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은 ‘엔트으리’ 논란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백지 상태에서 모든 선수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다.

박주영도 당연한 점검 대상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박주영을 총애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박주영의 소집 여부보다는 이동국, 김신욱의 부상이 걱정거리다. 전형적인 원톱 타깃맨들을 부상으로 잃었다”면서 “박주영을 비롯한 다른 공격 옵션들로는 이 두 선수와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는 선수가 없다”고 했다. 돌려 말했지만 이동국과 김신욱의 부상 회복을 가장 중점으로 두고 있다는 의미로 ‘제3 옵션’인 박주영은 실력으로 이 둘을 넘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이게 박주영을 자극하기 위한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국가대표 경력이 풍부한 선수를 직접 한 번은 불러서 평가해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이 대표팀 발탁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이번 소집을 통해 확인하겠다.” 궁금하면 직접 불러서 보면 된다. 그게 바로 이번 두 차례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바이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선택이다. 불러서 써보고 아니면 이제 안 부르면 된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흥미롭고 수긍이 간다. 아마 박주영을 이번에 외면했더라면 두고 두고 한국 축구는 박주영만을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이 시끄러운 논란의 주인공을 호출해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자체로도 큰 수확이고 만약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제 ‘박주영 논란’은 수그러들 것이다. 그러면 한국 축구의 큰 혼란은 깔끔히 정리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적절한 시기에 아주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박주영이 무적 신세였다거나 새로운 소속팀에서도 벤치만 지키고 있었더라면 이런 선택도 설득력을 잃겠지만 그는 현재 이적 후 세 경기 연속 출장하며 이런 논리를 충분히 뒷받침 해줄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제 박주영이 이 부름에 실력으로 화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만 남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언젠가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할 선수에게 기회를 준 것뿐이다. 정통 포워드가 다 부상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박주영도 충분히 기회를 받을 만한 선수 아닐까.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는 이제 ‘의리’가 됐다. 홍명보 감독 시절 박주영과 정성룡, 윤석영 등은 ‘엔트으리’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당연히 후임 대표팀 감독이 그 누구라도 이 선수들을 다시 대표팀에 발탁하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박주영과 함께 이번 대표팀에 함께 승선한 정성룡에게까지도 비난을 보내면서 슈틸리케 감독을 홍명보 감독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홍명보 감독 시절의 선수 선발과는 다른 문제다. 단순히 홍명보 감독이 중용했던 선수를 뽑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가 새로운 대표팀의 후보군조차 될 수 없다는 논리는 홍명보 감독이 선입견에 의해서 인맥 축구를 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슈틸리케 감독 입장에서는 비록 몇 달 전일이지만 이미 과거가 된 월드컵에서 실패한 박주영도 새로운 팀을 찾아 경기에 나서고 있으니 당연히 점검 대상이어야 한다. 박주영의 발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박주영 발탁, 슈틸리케 감독 선택 존중한다

정성룡의 발탁 역시 마찬가지다.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클래식은 물론 K리그 챌린지까지 직접 살펴보며 국내 대다수 선수를 관찰했다. K리그 챌린지 경기를 보러 가서는 슈틸리케 감독 옆에서 축구협회 직원이 경기에 나선 선수를 소개하자 “나에게 아무 얘기도 해주지 말라. 선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으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서 직원의 말을 끊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 스스로가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선수들을 공평한 눈으로 바라보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성룡이 최근 성남전에서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월드컵 이후 극도의 자신감 상실로 흔들리던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이전 기량을 회복했다. 성남전 실수 외에 울산전, 서울전 등에서는 MOM급의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이런 정성룡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그의 이전 실망스러운 플레이 대신 현재의 기량을 좋게 평가한 것이다.

그저 정성룡과 박주영이 싫은 이들에게는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지만 객관적으로 정성룡은 최근 경기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게 사실이다. 이미 김승규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고 김진현도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는 등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엄연히 정성룡은 도전자 입장이 됐지만 그가 대표팀 세 번째 골키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조차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정성룡이 이번 소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다시 경쟁 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가 생기면 정성룡이 대표팀 예비 골키퍼인 신화용과 자리를 바꾸면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슈틸리케 감독이 지금까지 관찰한 선수를 직접 불러 평가하는 평가전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신화용이나 권순태 등이 대표팀에서 한 번쯤은 제대로 된 도전을 하고 평가 받기를 원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정성룡의 발탁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부에서는 나를 ‘박주영 안티’로 바라본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한 선수의 안티는 아니다. 나는 월드컵 당시 박주영은 경기 감각도 부족했고 그 대체 자원도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이 모든 걸 무시한 채 박주영에게 총애를 보내며 밀어붙인 홍명보 감독에 대해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새로운 감독이 원점에서 모든 선수를 평가한다면 주전 공격수가 둘이나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당연히 박주영도 그 평가를 받을 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박주영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슈틸리케 감독의 박주영 발탁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내놓을 수도 없다는 거다. 모든 윤곽은 평가전 이후 드러날 것이다. 기량 미달의 선수를 그저 ‘의리’로 계속 기용한다면 내가 가장 먼저 나서서 비판할 준비가 돼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든 걸 백지 상태에서 평가하려는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설령 그게 박주영이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만이 좋게 평가해 대표팀에 발탁한 내셔널리그 무명 공격수여도 말이다.

궁금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다. 만약 친구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여성을 발견했다고 치자. 사진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소개를 부탁했는데 동시에 그녀와 잘 알고 있는 두 명이 다른 평가를 내렸다. 한 명은 “걔가 심한 사진빨”이라면서 “실물은 별로”라고 하는데 또 다른 한 명은 “걔가 원래 실물이 더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 답은 간단하다. 직접 그녀를 만나서 확인해 보면 된다. 내 기준에 정말 마음에 드는 이성인지 아닌지 주변의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는 한 번 얼굴을 보는 게 더 확실한 방법 아닐까.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박주영을 만나 확인해 본다고 하는데 이걸 말릴 이유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직접 봐서 마음에 들면 정식으로 대시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겼다”면서 그저 차 한 잔 마신 셈 치면 될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