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4 인천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은 극적인 금메달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별한 스타도 없었지만 선배들이 28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감격을 누리던 장면은 아마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특히나 한국과 북한의 운명적인 결승전은 한국 축구사에 명승부로 기록될 것이다. 임창우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지던 순간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팀이 기적적으로 우승하는데 그 중심에 섰던 북한전 결승골의 주역 임창우를 직접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주체할 수 없이 기뻐하던 이 청년은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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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우를 대전시티즌 클럽하우스에서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칼럼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

고맙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아시안게임에서 닷새 동안 세 경기나 치르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회복하려는 생각이 더 컸다. 경기가 끝나면 침대에 누워 무작정 마사지를 받고 쉬면서 버텼다. 정말 전쟁 같은 경기를 치렀는데 막상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돌아오니 대회에 나가기 전하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훈련하며 생활하는 중이다. 잠깐 쉬면서 체력도 충전해 며칠 전에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기도 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금메달을 딴 뒤 가장 달라진 건 뭔가.

주변에서 종종 알아봐 주실 때 ‘아, 내가 정말 금메달을 땄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고 선배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금메달리스트님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선배들이 장난치기도 한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이제는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싶다.

금메달은 잘 보관하고 있나.

숙소 방 책상 서랍에서 뒹굴고 있다. 집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는데 구단에서도 금메달과 관련한 인터뷰나 행사가 여러 개 있어 숙소에서 보관 중이다. 아마 누가 훔쳐가도 모를 거다. 매일 서랍에서 꺼내 한 번씩 만져보고 집어 넣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금메달을 따긴 딴 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오늘 그 금메달이 없어지면 내가 가져간 줄 알라.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표팀 발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나.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부산의 (박)준강이도 잘했고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대표팀 명단에 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뒤에서 이 팀을 위해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경기에까지 나서고 골까지 넣게 됐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대회를 치르기에 앞서 주변에서는 이번 대표팀이 최약체라고 평가했다. 이 소리를 당신이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나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과거 아시안게임에 나섰던 선배들과 비교해 보면 이번 대표팀이 조금 초라했던 구성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 팀에 특출난 선수도 없고 튀는 선수도 없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선수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또 모를 것이다. 뛰지 못하는 선수들도 내색하지 않고 다들 열심히 준비해 경기에 나서면서도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튀는 선수는 없지만 다들 이런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

그런 이야기도 다 잘 됐으니까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다. 잘 안 됐으면 “(손)흥민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것이다.그런데 (손)흥민이가 합류하지 못한 건 정말 아쉽지만 정말로 우리 팀은 다 친화력이 좋아 하나로 금방 뭉쳤다. 끼리끼리 노는 무리도 없었다. 조직적인 플레이에도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동료들이 (문)상윤이 형한테 다들 못생겼다고 놀렸는데 형이 그것도 다 기분 좋게 받아줘서 분위기가 좋았다. 상윤이 형이 얼굴로 팀을 위해 많이 헌신했다. ‘못생긴 포메이션’을 꼽는다면 상윤이 형이 부동의 원톱이라고 모두들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문상윤 뒤를 받칠 ‘못생김 쉐도우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

(안)용우와 (장)현수가 아마도 그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그러면 서경석, 아니 안일권, 아니 방시혁, 아니 임창우 당신은 그 ‘못생김 포메이션’에서 어느 정도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나.

무슨 소리인가. 나는 벤치다.

웃기지 말라.

농담이다. (김)영욱이 정도 빼고 나머지 선수들은 다 외모가 고만고만하다. 또한 우리가 선배인 (김)신욱이 형과 (박)주호 형, (김)승규 형도 평가할 수 없어 빼야 한다.

아깝다. 김승규도 분명히 당신들이 순위를 매겼다면 골문을 박차고 나와 문상윤과 최전방 원톱 경쟁을 펼쳤을 수도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칼럼에 분명히 써 달라.

알겠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에는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부터 당신처럼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까지 다양한 무대를 경험한 이들이 함께 했다.

(김)진수가 나한테 그러더라. “나 곧 있으면 바이에른 뮌헨하고 경기하는데 리베리하고 로벤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텔레비전에서 보고 게임에서나 접하던 선수인데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 유럽에서 생활하는 선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빅리그까지는 아니지만 훗날 기회가 된다면 네덜란드나 스위스 등에는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남들은 빅리그도 아닌 유럽 중소리그를 목표로 잡아서 꿈이 크지 않은 것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주제를 잘 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주제 파악을 하고 싶다.

무슨 소리 하는 건가. 당신도 충분히 도전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맙다.

대회를 앞두고 밖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대한 것보다 병역 혜택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 솔직히 당신도 병역 혜택에 대해 기대하고 있지 않았나.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 병역 혜택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병역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16세 때부터 청소년 대표팀에서 나를 지도했던 이광종 감독님도 그랬고 와일드카드로 뽑힌 (박)주호형, (김)신욱이 형도 이번 대표팀에 모여 이렇게 말했다. “병역 문제는 우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다. 너무 의식하지도 말고 언론과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는 꺼내지 말라. 오로지 너희 마음 속에만 가지고 있어라.” 우리는 공식적인 선수단 미팅 자리뿐 아니라 선수들끼리 사석에서 만나 가벼운 이야기를 할 때도 아예 병역 혜택에 대해서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경기와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

부담스러웠던 조별예선 첫 경기 말레이시아전에서 당신은 대표팀의 첫 골을 기록했다. 우리로서는 아시안게임을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골이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경기력이 별로 좋지 않을 때 골을 넣는다. 그 말레이시아전에서도 경기력이 원하는 수준이 아니어서 상당히 불만이었다. 그런데 골이 들어가더라. 북한과의 결승전에서도 긴장해서 경기력이 별로였고 속으로 ‘이러다가 또 골 넣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 뒤 실제로 또 골을 넣었다.

신기하다. 그렇다고 억지로 경기력을 떨어트리지는 말라.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당신이 북한 주장 장송혁과 말다툼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이 거의 밖으로 나가는 상황인데 끝까지 살리려고 하다가 북한 주장과 엉켰다. 그런데 그때 내가 발을 상대의 밟은 모양인데 나한테 그 선수가 북한 억양으로 “이 아 X끼가”하면서 달려들더라. 나도 순간 욱해서 맞대응했는데 생긴 것도 워낙 무섭고 삼촌뻘처럼 보여서 쫄았다. 이미 말다툼은 시작됐는데 물러설 수도 없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말려줘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북한의 리용직이 말려줘서 참 고마웠다. 얼굴로 봐서는 나이가 의심스러운 선수들이 꽤 있더라. 다 또래여야 하는데 말 놓기도 어려웠다.

누가 봐도 120분 동안 골이 터지지 않아 승부차기로 이어질 것 같은 경기였다. 연장 후반 정도 됐을 때 승부차기에 대한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담감은 없었나.

예정된 대로라면 승부차기에서 (김)진수가 1번 키커였고 내가 2번 키커였다. 그런데 경기 이틀 전에 페널티킥 훈련을 하는데 내가 넣지 못했다. 감독님이 “못 넣은 애들만 한 번 다시 차보라”고 했는데 두 번째 페널티킥도 실패했다. 당연히 북한전 경기 내내 승부차기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페널티킥을 워낙 잘 막아내는 (김)승규 형이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못 넣더라도 (김)승규 형이 막아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대로 살 떨리는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아 천만다행이긴 하다.

김신욱은 대회 내내 우리를 속였다. 뛸 수 없는 몸 상태였음에도 배우 뺨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당신들도 다 김신욱 주연 작품의 조연들 아니었나.

무슨 소린가. 우리도 다 속았다. (윤)일록이는 부상이 심한 건 다 알고 있었는데 (김)신욱이 형은 그냥 단순한 타박상인줄 알았다. 그 형이 우리한테 부상 상황을 다 이야기 해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그저 언론을 통해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는데 충분히 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8강과 4강에 나오지 않은 것도 다 결승전을 위한 대비라고 생각했다. 사실 북한과의 경기 도중 상대 공격이 우리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수비가 불안할 때 좀 위험하긴 했다. 그때 속으로 (김)신욱이 형이 빨리 들어와서 길게 때려 넣고 더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왜 안 들여보내는지 살짝 불만이면서 의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북한전에서 연장 후반 투입된 (김)신욱이 형은 뼈에 금이 간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어떻게 15분을 소화했는지 참 대단하다. 우리도 모두 속았다.

당신은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의 주인공이 됐다.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면.

내가 원래 코너킥 상황에서는 잘라먹는 헤딩을 하는 게 임무였다. 말레이시아전에서도 잘라먹는 헤딩으로 골을 넣지 않았나. 그런데 북한과의 결승전 상황에서는 잘라먹는 헤딩보다는 뒤로 돌아 들어가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공이 뒤로 흐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코너킥 상황에서 (김)신욱이 형이 경합하고 (이)용재가 밀어 넣은 공을 북한 선수가 걷어내자 그 공이 딱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다시 봤을 때는 골대와 북한 수비수 사이의 공간이 정말 좁아 보였다. 딱 거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공간이 무척 커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때렸다.

당시 이미 이용재가 밀어 넣은 공이 북한 골문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는데 이용재는 뭐라고 하던가. 역사의 주인공이 당신에서 이용재로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용재였으면 당신과 멱살잡이를 했을 수도 있다. 내 골인데.

용재는 자신의 골로 알고 있었고 나도 내 골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내 골로 인정되면서 용재한테는 참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미 (이)용재가 밀어 넣는 순간 골이 골라인을 넘었지만 심판이 다시 그 공이 나한테 오니 내 플레이까지 다 지켜보고 골 판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슈팅이 골로 연결되니 그냥 어드벤티지를 준 모양이다. 그래서 “네 골인데 내가 주목받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이)용재가 웃으면서 “누구 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금메달을 딴 게 중요하다”면서 넘어가더라. (이)용재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내심 아시안게임 내내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이용재가 한 골 넣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나도 그 심정과 비슷해서 (이)용재의 골로 인정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당신이 세리머니를 너무 과도하게 해서 당신 골로 인정된 걸 수도 있다. 세리머니만 보면 누가 봐도 당신의 골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내가 넣은 줄 알고 세리머니를 하려고 벤치를 봤는데 벤치에서는 이미 다 뛰어나와 있더라. 내가 골 넣고 딱 돌아서는 순간 ‘어? 이렇게 다들 빨리 뛰어나올 수가 없는데?’ 싶었다. 알고 봤더니 (이)용재가 밀어 넣을 때부터 이미 골로 생각하고 다 뛰쳐 나왔고 심지어 골키퍼 (김)승규 형까지 이미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슈팅하려고 집중하고 있던 것이었다.

당신도 참 금메달 획득이 기뻤겠지만 그중 가장 기뻐한 선수는 누구인가.

그 누구보다도 군대 문제가 급했던 (박)주호 형 아니었을까. 사실 이 형이 성인 대표팀에서는 형들과 막내들 사이에 있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들었다. 막내들도 (박)주호 형을 장난 삼아 많이 괴롭힌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형이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는 무게를 많이 잡는 거다. 대회가 다 끝나고 이야기해 보니 와일드카드가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선수들하고 까불거리고 장난치면 중심을 잡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과묵하게 생활했다고 했다. (박)주호 형이 금메달 딴 뒤 “휴가 때 독일에 비행기 표만 끊어오면 먹고 자고 경기 보는 건 다 형이 알아서 해주겠다”고 했는데 설마 우리가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 같다. 그렇게 동생들을 챙기는 마음 만이라도 고맙지만 가는지 못 가는지는 직접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병역 혜택을 받으면 바로 적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이에 따른 병역 혜택 확인증 같은 문서도 받는 건가.

문서는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협회 주무님을 비롯해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선 선수들이 다 모인 ‘단톡방’이 있는데 주무님께서 “병역 혜택 때문에 서류가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나중에 필요할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금메달은 땄지만 병역 혜택을 위해서는 내야할 서류가 많은 모양이다. 혹시라도 혜택이 취소될까봐 그런 ‘단톡방 카톡’은 가장 먼저 확인하는 편이다. 다른 친구들도 금방 금방 확인해 노란색 숫자 1이 금방 사라진다. 다들 똑같은 마음인 것 같다.

당신은 이번 아시안게임 폐막식에도 기수단으로 등장했다. 그것도 ‘우리의 손연재’와 함께 말이다. 부럽다.

팀에 복귀해 고양 원정경기를 위해 경기도 일산에 가 있는데 나를 폐막식 기수단으로 선정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지리적으로 멀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니 나를 포함해 이번에 아시안게임에 나섰던 선수 8명이 기수단으로 뽑혔다고 하더라. 나를 포함해 육상의 여호수아, 볼링 4관왕 이나영, 태권도의 이대훈, 양궁의 이특영, 사이클 조호성, 사격 김민지 그리고 체조의 손연재가 그 8명이었다.

지금 그게 궁금한 게 아니다. 손연재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지가 궁금한 거다.

정말 예쁘긴 예쁘더라.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아 8명이서 ‘단톡방’도 만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마음보다는 서로 8명이서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고 해두자.

아마 다들 손연재 연락처를 얻고 싶은데 그녀에게만 물어보면 민망할 거 같아 다른 이들은 의무적으로 물어본 거 아닐까.

그런 의도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당신이 차두리와 이용이 버티는 성인 대표팀 오른쪽 측면에 새롭게 도전하길 기대한다. 이제는 성인 대표팀에 욕심을 한 번 내봐야 할 텐데 자신 있나.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게임 선수 중 4~5명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셨다. 물론 성인 대표팀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하던 자리에서 꾸준히 하다보면 기회는 언젠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려 슈틸리케 감독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이제 (손)흥민이나 (김)진수, (김)승대 등 우리 또래도 대표팀에 들어가고 있는데 다른 건 다 몰라도 훈련 때 아이스박스나 공은 내가 전담해서 챙기겠다. 어리니까 궂은 일은 내가 다 도맡아 하겠다. 운동할 때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파이팅도 잘 할 수 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잘 받을 생각이다.

그럼 이제 당신의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이야 이렇게 큰 대회에서의 극적인 골로 주목받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신은 벤치가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 어린 시절 당신은 어떤 선수였나.

초등학교 때는 키가 170cm였다. 그때는 워낙 커서 다른 선수들이 다 내 가슴 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윙으로 뛰기도 했고 최전방 공격수도 했는데 그때는 워낙 내가 크고 빨라 기술 없이 치고 달리면 다른 선수들이 잡지 못했다. 그러다 상대팀에 위협적인 공격수가 있으면 수비도 봤다. 소화하지 않은 포지션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지금 내 키였다니 부럽다.

그런데 이후 성장이 그리 쭉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183cm다. 아마 여기에서 더 컸으면 내 플레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이 키가 딱 좋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로 중앙 수비나 오른쪽 측면을 맡으면서 수비에 집중하게 됐다.

하지만 학창시절 훌륭한 신체조건으로 잘 나가던 당신은 정작 프로 무대에 입성해서는 줄곧 벤치만 지켜야 했다.

울산 입단을 확정짓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나선 마지막 챌린지리그에서 진주고와 맞붙었다. 당시 진주고의 (윤)일록이를 쫓다가 돌아서는 동작에서 다쳐 피로골절이 왔다. 그래서 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도 나가지 못했고 결국 부상을 안은 채 울산에 입단해야 했다. 그런데 부상에서 복귀할 쯤 다시 다쳐서 1년 동안 재활만 했다. 이후 2년차 때는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울산에서 이렇다 할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고 3년차 때는 선배들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느라 내가 리그에서 6경기에 어부지리로 출전할 수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나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함께 우승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고 그냥 우승하는 경기를 내 눈으로 봤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4년차였던 지난해에는 아예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울산에서 4년 동안 6경기에 나선 게 전부다.

그렇게 벤치를 지키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다 힘들었다. 그저 버티고 또 버틸 뿐이었다. 한 동안은 너무 경기에 나서고 싶어 개인 운동을 죽어라 하다가도 또 한 동안은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체념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버티면서 지내왔다. 내 포지션에는 송종국 선배님과 오범석 선배님이 버티고 있었고 심지어 (이)용이 형은 내 입단 동기였다. 내가 이 틈에서 경쟁이라는 걸 하기보다는 그저 하늘 같은 선배님들한테 배운다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이)용이 형을 보면서는 ‘내가 경쟁할 수 없는 형이구나.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 낙담도 많이 했다. (이)용이 형이 부상을 당하더라도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른 자리에 있는 형들이 경기에 투입됐다. 나는 그냥 전력외 3군 정도였고 어쩌다 엔트리에 한 번씩 들어가 몸을 푸는 게 전부였다. 경기에 당장 나서겠다는 생각보다는 실력을 우선 키우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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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벤치 신세였던 임창우는 대전 임대이적 후 주전으로 도약해 활약하고 있다. (사진=대전시티즌)

그런 당신에게 대전 임대는 ‘신의 한수’였다.

울산에서 4년 동안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 하다가 결국 아버지와 군 입대에 대해 상의했다.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먼저 군대에 다녀오는 게 더 낫겠다”고 했고 아버지도 고민 끝에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경찰청 입대를 위해 병원에 가 신체검사까지 다 받고 검사 서류 발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청에 먼저 간 친구한테도 실기 시험과 면접 시험에 대해 알아봤다. 정말 모든 걸 놓고 입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체검사 서류 발급 바로 전날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전에서 나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빨리 군대에 다녀오는 게 나을지, 아니면 그래도 대전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나을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대전을 선택하게 됐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미련 없이 군대에 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거 정말 극적인 임대 스토리다.

울산에서도 내가 전력외 선수이다보니 흔쾌히 나를 대전으로 보내줬다. 그게 불과 약 10개월 전 이야기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믿을 수 없던 시절이다.

아마 당신이 그때 대전 대신 경찰청을 선택했다면 미래는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

머리 빡빡 밀고 경찰청 벤치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오)범석이 형이 내 자리에서 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지 않았을까.

대전에 와서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가 돼 활약하고 있다. 그 활약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지금껏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싶은 열망이 강했는데 그게 실제로 이뤄지면서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 협상을 통해 결국 대전으로 임대를 오며 연봉도 깎였지만 나는 그런 거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돈을 떠나 뛸 수 있는 무대가 생겼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리고 당신이 선택한 대전은 올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 믿을 수 없는 연승 행진을 펼치는 등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대전이 잘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즌 전에는 목표가 4강이었는데 개막전에서 수원FC에 1-4로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속으로도 ‘이거 올 시즌 되게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조진호 감독님이 분위기를 바꿔 주셨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더 독하게 훈련하고 스트레스도 받을 법한데 외박을 주시면서 “이제 시작인데 첫 경기는 잊자”고 하시더라. 그런데 이때부터 8연승 행진이 이어졌다. 팀이 워낙 젊다보니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우릴 잡을 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로 위기가 오면 중심을 잡을 선수들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시즌 초반에 모 아니면 도인 상황에서 한 번 탄력을 받은 게 우리의 1위 원동력 아닐까.

아드리아누의 미칠 듯한 활약도 한 몫하지 않았나.

물론이다. 그런데 사실 처음엔 아드리아누한테 다들 불신이 조금 있었다. 동계훈련 때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몸도 약해 보였다. 그래서 아무리 K리그 챌린지 무대지만 아드리아누가 통할까에 대해서는 다들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아드리아누가 올 시즌 벌써 26골이나 넣으니 이번에도 형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드리아누가 K리그 클래식에서도 통한다는 형들과 그래도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는 쉽지 않을 거라는 형들도 나뉜다.

수비수인 당신이 봤을 때는 어떤가.

K리그 클래식이 압박도 K리그 챌린지보다 훨씬 더 강한데 아드리아누가 공을 질질 끄는 스타일이라 K리그 클래식의 좋은 수비수들을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또한 얘가 화도 잘 내는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K리그 챌린지의 압박이 느슨해 그가 날아다니는 면도 없지 않아 있을 테지만 일단 기본적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인 거 같다. 하지만 대전은 시즌 초반에는 서명원, 그리고 중반 이후에는 아드리아누만이 조명 받고 있다. 수비수로서 이런 게 좀 서운하지는 않나.

서운할 틈도 없이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내가 원래 스포트라이트를 좋아하는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아드리아누의 골 행진에 비해 우리 수비의 최소 실점이 부각되지 못한다는 점아 아쉽다. 나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서운한 게 아니라 우리 수비진이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수비진들은 하나로 묶어 주목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수비수로서 골을 먹지 않는다는 건 골을 넣었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다.

중앙 수비와 오른쪽 측면 수비를 오가는데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학창시절에는 중앙 수비로 헤딩 경합에 자신이 있었는데 성인 무대에 서게 되니 큰 형들이 너무 많아서 경합이 쉽지 않다. 나만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했고 내 진짜 포지션이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이도저도 아닌 땜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두 포지션을 다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중앙 수비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좋지만 딱히 재미는 없다. 움직이는 범위도 좁기 때문이다. 반면 오른쪽 측면 수비는 공격에 대한 쾌감이 있지만 워낙 내가 투박해 밀집된 걸 풀어나가는 능력이 좀 약한 편이다. 중앙 수비로서는 기복 없이 플레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선호하는 건 오른쪽 측면 수비다.

슈틸리케 감독이 오른쪽 측면이 아니라 중앙 수비를 위해 당신을 대표팀에 뽑겠다고 한다면 어쩔 건가.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어디 있나. 부르면 무조건 간다. 아이스박스 담당이라도 상관없다. 시키면 뭐든 다 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걸고 대전에 복귀하니 동료들 반응은 어떤가.

역시 운동선수이다보니 다들 병역 혜택에 대해 많이 부러워하는 게 사실이다. 이번에 군대에 가는 (장)원석이 형은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 사실 나는 아직 금메달과 병역 혜택이 실감나지 않고 이미 한 번 군대에 가려고 마음까지 먹어서 잘 모르겠는데 형들은 나이를 먹으면 병역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이 날 거라고 하더라. 다들 장난으로 배 아프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장)원석이 형 앞에서 기뻐할 수 없다는 것 빼고는 다 괜찮다.

난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또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하다. 올 시즌 대전에서의 활약이 대단했고 주가가 올라 울산에서도 더 이상 당신을 임대 신분으로 두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울산과 대전 중 한 팀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떨까.

참 난감한 질문이다. 나는 대전에 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기회를 준 대전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내년에도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중간에서 애매한 입장이기는 하다. 협상권은 울산이 가지고 있고 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두 팀의 합의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나의 고향 울산이나, 재기를 도운 대전이나 내가 주어진 위치에서라면 어디에서건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화려하게 빛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도 받지 않는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 한 순간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내 자리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한국 선수들을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