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면서 안타까운 일이 있다. 이동국이 잘하면 박주영이 욕을 먹고 박주영이 잘하면 이동국이 욕을 먹는다. 물론 나도 박주영이 잘할 경우 욕 먹는 지분이 상당하다. 사람들은 당사자들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라이벌을 만들어 비교하고 깎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박주영과 이동국이 멱살을 잡고 싸운 적도 없고 나 역시 과거 박주영의 병역 논란에 대해 지적했을 뿐 그의 실력을 비판하지 않았는데도 일부에서는 모든 걸 흑백 논리로 바라본다. 박주영이 잘하면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집에서 잠 자고 있는 이동국이 비난의 메인 요리가 되기 일쑤다. 이동국이 K리그에서 연일 새 역사를 쓰면 사람들은 엄한 박주영을 들먹이며 조롱한다. 이들의 활약 하나에 이렇게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여론을 보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6.25 전쟁의 고지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주영 팬카페가 문을 닫았다. 이들은 팬카페를 비공개로 전환했고 기존 회원 외에 신입 회원은 받지 않고 있다. 나도 여러 의견을 들으려 이 팬카페를 비롯해 여러 축구 커뮤니티와 선수들의 팬카페에 가입해 있지만 박주영 팬카페에서는 나를 ‘염탐꾼’이라며 강제 탈퇴하기도 했다. 이 팬카페가 비공개로 전환됐으니 이제는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주영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팬카페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신입 회원을 받지 않는 게 올바른 판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친 뒤 세상과 단절되는 걸 택했다. 박주영을 사랑하는 이들로서 그들이 응원하는 선수가 비판받는 게 속이 상하는 건 당연할 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숨어버리면 안 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박주영 팬카페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폐쇄성을 띄기로 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박주영이 펄펄 날고 잘 할 때만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게 팬카페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럴 때일 수록 박주영 팬들이 숨어서는 안 된다. 박주영을 건강하게 비판하건 지속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건 세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자신들끼리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박주영이 추락하는 이유를 언론탓, 감독탓, 안티팬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박주영에게 가장 합당한 비판과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건 박주영 팬카페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박주영이 부활하면 그때 팬카페 문을 다시 열고 활동을 시작하는 건 진정한 팬의 모습이 아니다. 남들이 다 욕해도 끝까지 세상과 맞서 그를 지켜주는 게 팬 아닐까. 또한 남들이 다 박주영에 대해 인신공격성 비난을 해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합당하고 따끔한 조언을 할 수 있는 게 진정한 팬 아닐까. 지금처럼 여론의 전세가 불리하다고 문을 닫아 버리고 숨어서는 진정한 팬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이동국과 최강희 감독, 그리고 나를 욕하는 게 박주영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박주영을 지키는 건 박주영에게 힘을 실어줘야 가능한 일이지 그와 연관된 스스로의 적을 깎아 내려서는 얻을 수 없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박주영 팬들 중 일부는 그 애정에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또 박주영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건 박주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의 팬 중 일부다. 아마도 대한민국 축구 선수 팬덤 중 가장 강력한 팬덤을 자랑하는 게 박주영의 팬들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앞서 언급한 국내 최대 규모의 박주영 팬카페 메인 화면에는 “겨례의 유일한 득점 루트 박주영”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박주영의 팬들은 그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중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라 믿고 있다. 이곳은 조직적으로 포털 사이트 댓글란을 점령하라는 지령이 떨어지면 실제로 활발히 그 작업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옹호하려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애정은 그 도를 넘어 과도해 질 때가 종종 있다. 박주영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폄하하고 깎아 내려야 박주영이 빛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부 박주영 팬들은 점점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박주영 빼고는 모두다 적’이라고 바라보는 듯하다. 이는 다른 팬들에게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유독 박주영의 일부 팬들의 행동이 더욱 과격한 게 사실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박주영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주를 이루자 결국 박주영 팬카페는 비공개 전환을 선택했다. 지금껏 보였던 일부 팬들의 과도한 팬덤이라면 누군가를 또 다시 깎아내리거나 아니면 “그래서 누가 박주영을 대체할 수 있느냐”면서 박주영을 옹호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둘 모두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껏 박주영 팬카페의 기능보다 박주영의 적들을 처단하는 역할에 더 치중했던 이들로서는 이 상황이 몹시 괴롭고 난처할 것이다. 하지만 이 팬카페가 박주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라면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 운동장 한 가운데 서 흠뻑 비를 맞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질타 받을 건 질타 받고 당당하게 박주영을 응원하는 모임이 됐으면 한다. 당당하게 “그럼에도 난 지금 박주영을 응원하고 있다”고 나서야 한다. 월드컵 이후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정성룡이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돌아오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지금도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는 팬들처럼 말이다. 박주영의 안티팬이 많아진 건 그의 모습 자체에 실망한 이들만큼이나 “박주영 빼고는 다 적”이라는 자세로 달려들고 폐쇄적인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한 몫하고 있다는 걸 떠올렸으면 한다.

박주영 팬카페는 숨을 이유가 전혀 없다. 선수가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가 다시 언젠가는 부진을 털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언론에서 호되게 그를 비판하더라도, 여론이 좋지 않더라도 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건 팬들뿐이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하는 박주영 팬카페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건 이미 겪어온 바가 있어 끔찍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칼럼을 쓰는 건 나의 주제 넘는 이야기가 박주영 팬카페에 전달돼 박주영에게 진짜 힘을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선수의 활약도와 컨디션에 따라 팬카페 문이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잘할 때 칭찬하고 좋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팬은 선수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절대적이고 무한한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다. 박주영의 진정한 팬이라면 바로 이때 당당히 앞에 나서 응원해야 한다. 박주영 팬카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숨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걷어 내고 세상 밖으로 나와 진심으로 박주영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