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가 K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서울로 트랙터를 타고 떠났다. 아마 지금쯤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해 휴게소에서 ‘사제’ 핫바를 사먹고 있을 것이다. 이근호는 오는 25일 열리는 이번 K리그 올스타전에서 '팀 K리그' 소속으로 '팀 박지성'과 격돌할 예정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올스타전은 박지성의 은퇴 경기로 치러져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벌써부터 예매 열기도 뜨겁고 선수들 역시 어제(17일)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팀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로 했고 박지성이 추천하는 5명의 선수들도 추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독특한 올스타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K리그 올스타전 아닌 박지성 은퇴경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쉽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건 굳이 박지성 은퇴 경기를 K리그 올스타전과 맞물려야 하느냐는 점이다. 박지성이 한국 축구 최고의 선수이고 그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해야 하는 선수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과연 그의 은퇴와 K리그가 얼마나 연관 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시즌 종료 후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대표팀 선수들 및 박지성과 과거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을 모아 성대하게 은퇴식 및 헌정경기를 치렀다면 그게 더 멋지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박지성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K리그 팬 입장이 아니라 박지성의 팬 입장에서도 그가 과연 K리그 올스타전에서 은퇴를 하는 게 맞느냐는 점은 의문이다.

더 아쉬운 건 K리그 입장이다. 최근 몇 년 동안 K리그 올스타전에서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K리그 올스타는 ‘들러리’에 가까웠다. 2010년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 팀을 초청해 올스타전을 치러 리오넬 메시 주연 영화에서 K리그 올스타는 조연 역할만 해야 했다. 2012년 K리그 올스타전은 2002 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 경기로 펼쳐졌는데 이번에도 2002년 영웅들이 포진한 ‘팀 2002’에 비해 ‘팀 2012’로 명명된 K리그 올스타에 주목하는 이들은 없었다. 지난해에는 K리그 클래식 선수들이 모인 ‘팀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선수들의 ‘팀 챌린지’가 경기를 펼쳤지만 K리그 챌린지와는 연관이 없는 ‘해외파’ 기성용과 구자철, 윤석영 등이 ‘팀 챌린지’ 소속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K리그 올스타전인데 2010년에는 메시가, 2013년에는 구자철이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아마 이번 경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지성의 은퇴 경기라는 이벤트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경이로웠던 박지성의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경기라는 점에서 이번 올스타전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번에도 ‘팀 박지성’에서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이 2002년 골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박지성이 추천하는 5명의 외국 선수들까지 등장하면 또 다시 K리그 올스타는 조연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K리그 올스타가 주목받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더군다나 K리그 챌린지 역시 분명히 K리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올스타전에 K리그 챌린지는 철저히 제외됐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챙겨야 할 건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이 아니라 K리그 챌린지 아닐까. 박지성은 누구나 챙길 수 있어도 K리그 챌린지는 연맹에서 안 챙기면 그 누구도 챙기지 않는다. 이번 경기에 나서는 K리그 챌린지 선수는 ‘팀 박지성’에 포함된 정조국과 오범석(이상 안산)이 유이하다.

올스타전, K리그 팬 위한 축제가 먼저

연맹은 아마도 K리그 올스타전이 대중에게 K리그를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에도 중계를 위해 주말도 아닌 금요일에 이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박지성과 이영표의 플레이, 히딩크 감독의 등장에 주목할 것이고 이 장면은 그대로 전파를 탈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박지성 은퇴 경기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리그 홍보 효과는 없다. 이미 지난해 6만여 명 수용 규모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올스타전에서 난 데 없이 해외파까지 불러 들이고도 11,148명의 관중밖에 들어차지 않은 걸 기억해야 한다. 정작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K리그 팬과 선수들이 외면 받고 있는 현실에서 해외파나 메시, 박지성 등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또한 정작 흥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는 그저 K리그 올스타가 아니라 그 상대를 위한 홍보일 뿐이다. 바르셀로나를 초청해 치른 2010년 올스타전을 보고 K리그 팬이 됐다는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연맹은 당연히 리그 홍보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올스타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했으면 한다.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팬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는 건 올스타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적어도 K리그 올스타전만큼은 1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찾는 K리그 팬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정작 리그 팬들을 위한 콘텐츠와 서비스는 한참 부족한 시점에서 올스타전만 되면 일반팬들을 위한 홍보에만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게 참 아쉽다. 남아 있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부족한데 누군가를 새로운 팬으로 유입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박지성은 한국 축구사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선수지만 K리그 올스타전만큼은 박지성이 아니라 K리그 선수들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리그 홍보는 다른 분야에서 하고 올스타전만큼은 K리그 팬들과 선수들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K리그 올스타간의 격돌은 지난 2007년 이후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부터 K리그 올스타전의 주인공은 더 이상 K리그가 아니었다.

그나마 K리그 팬으로서 이번 올스타전에서 기대되는 건 박지성 은퇴 경기가 아닌 주,부심을 맡은 K리그 감독들이다. 늘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던 감독들이 심판으로 나서 경기에 나선다는 건 참 참신한 아이디어다. 이건 과거 캐넌슈터 선발대회와 이어달리기 등과 견주어도 흥미로운 콘텐츠다. 이렇게 K리그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들로 넘쳐나는 올스타전을 원한다. 하지만 이번 올스타전에서 이 이벤트는 부수적일뿐 ‘메인 이벤트’는 역시나 박지성이다. 해외 빅클럽이나 몇몇 해외파에 의존해 치러진 지금까지의 올스타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수만 관중을 모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과거 경험상 이게 K리그 흥행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연맹이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해외 빅클럽이나 박지성의 힘으로 올스타전 경기장이 관중으로 꽉 들어차는 것보다도 1년 동안 K리그에 울고 웃는 팬들 수천명이 즐기는 올스타전이 진짜 올스타전 아닐까. 올스타전은 K리그 팬들에게 축제이자 ‘반 시즌 고생했고 앞으로 남은 반 시즌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상이 되어야 한다.

서울은 이미 올스타전 실패하는 시장

오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나는 K리그만을 위한 올스타전이 이제는 서울을 벗어나 전국 각지를 돌며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해외파를 데려와도 서울에서는 올스타전이 더 이상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라는 점이 판명 났다. 흥행을 고려하는 연맹 입장에서도 이건 대실패다. 흥행을 위해서도 전국 각지를 돌아야 하고 K리그 팬들을 위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중계 문제 때문에 평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지는 올스타전에서 과연 K리그 지방팀 팬들이 얼마나 이 축제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어차피 학교 ‘땡땡이’ 치고, 회사에 반차내고 서울까지 가 봐야 K리그 올스타는 조연에 머물 게 뻔한데 K리그 팬들이 애써 이 시간에 서울까지 갈 이유도 별로 없다. 오로지 박지성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또 모를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매년 지방을 돌며 지방 팬들에게 K리그 올스타전으로 서비스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시장이 크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중 수도권에는 단 4개 팀이 존재하고 비수도권 지역에는 무려 8개 팀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K리그는 서울을 위주로 돌아간다. 과거 올스타전은 부산과 광양, 수원, 대전 등 각지에서 펼쳐졌지만 2004년 이후에는 서울에서 주로 열렸고 딱 두 번 인천에서 열렸었다. K리그 서포터스 연합도 이렇게 지방 순회 개최가 사라지고 서울에서만 올스타전이 열린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이때부터 올스타전 응원을 보이콧하고 있다. 갓 K리그에 입문한 팬들에게는 올스타전이라는 게 그저 누군가의 조직적인 응원 없이 산만하게 경기를 펼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중부와 남부로 나뉘어 팬들 또한 골대 뒤에 모두 자신이 응원하는 유니폼을 입고 모여 함께 응원을 했었다. 서로 맥주를 나눠 마시고 이날 만큼은 상대팀의 응원가도 함께 부를 수 있는 축제였다.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나눴다.

물론 시간이 흘러 각 팀 서포터스간의 간극이 더 커진 상황에서 함께 서로의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게 지금 와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K리그 올스타전이 다시 지방 순회로 돌아가 이들이 골대 뒤에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K리그 팬들을 위한 진정한 올스타전이기 때문이다. 그저 서울에서만 매년 올스타전을 열게 아니라 K리그 올스타전이 지방으로 돌아갈 방법을 잘 생각해 보자. K리그의 별들이 가득한 광양전용구장이나 부산아시아드의 열기도 한 번쯤 상상해 보자. 지금처럼 세련된 올스타전이 아니라 동네 운동회 같은 분위기의 올스타전이 지방에서 열린다고 해 K리그의 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올스타전이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지만 상주나 창원 등에서는 올스타전만으로도 지역이 들썩이는 축제가 될 수 있다. 울산이나 전주 등에서 열리는 A매치도 서울에서 열리는 A매치 이상의 흥행을 보장하고 있다. 지방이라고 해서 서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지방 팬들도 K리그 올스타전 즐길 자격 있다

연맹이 특별한 원칙을 정해 지방 순회 방식을 세워도 좋고 아니면 지난 시즌 우승팀이나 지난 시즌 승격팀 연고지에서 올스타전을 열어도 좋다. 아니면 새로 창단하는 팀이 있을 경우 그 전년도에 그 연고지에서 올스타전을 개최해 K리그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방식이건 서울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 올스타전은 서울시민을 위한, 해외 빅클럽 팬이나 박지성 팬들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정작 K리그를 먹여 살리는 여러 K리그 구단 팬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방 팬들에게도 이런 자격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평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은 포항 팬이나 울산 팬은 아예 보러 오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과거 대전과 경남 등은 자신의 연고지에서 올스타전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연맹과의 조율 실패로 물거품이 된 적도 있다. 올스타전을 지방 순회 개최로 변경한다면 충분히 이 매력적인 이벤트를 유치하고 싶어하는 도시는 여전히 많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동네 운동회 같은 푸근한 분위기에 경기장을 꽉 채우는 게 텅텅 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K리그를 할 때는 다 같이 하는데 왜 그 별들이 모인 올스타전에서는 지방 구단이 철저히 소외되어야 할까. 접근성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철저히 수도권 팬들에게만 허용되는 말이다. 지방 팬들 입장에서는 서울 개최가 최악의 접근성이다. 또한 연맹에서는 나날이 관심이 떨어지는 올스타전 흥행을 위해 바르셀로나나 해외파, 박지성 등 일반적이지 않은 카드를 꺼내들고 있지만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면 간단한 문제다. 바르셀로나나 해외파, 박지성이 아니어도 관심 가질 수 있는 소외된 지방의 K리그 팬들에게 올스타전을 돌려주면 된다. 연맹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지금 부족한 건 올스타전에 어떤 상대를 초청해야 흥행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왜 올스타전이 팬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이미 서울이라는 시장에서는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다 잃은 상품을 아무리 잘 포장해도 팔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 서울은 이미 A매치에서도 흥행에 실패할 만큼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올스타전을 지방에서 개최하고 이렇게 외쳐보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서울에서는 이 올스타전이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가.

지금쯤 이근호는 트랙터를 타고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해 휴게소에서 ‘사제’ 핫바를 다 먹은 뒤 개인 정비를 하고 다시 서울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많은 선수들이 먼 거리를 고생해 온 이근호에게 답하기 위해 상주에서 올스타전을 여는 게 어떨까. 이근호도 내년에는 예비군복을 입고 피자를 사들고 후임들을 독려하기 위해 상주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참석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큰 시장이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그것도 텔레비전 중계를 위해 평일에, 흥행을 위해 K리그와 관련 없는 상대를 초청해 치르는 올스타전은 모든 게 최악이다. 이보다는 K리그 연고 지방 도시에서 주말 저녁 K리그 올스타들만으로 채워지는 이벤트가 더 K리그를 위한 게 아닐까. 어차피 B급 리그인데 올스타전을 지방에서 개최해 C급 리그가 되면 또 어떤가. 그래도 올스타전이 지방에 있는 K리그 팬들을 위한 축제가 된다면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지방 팬들도 K리그 올스타전을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