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월드컵 참사로 떠들썩한 이때 나는 한 작은 전시회에 다녀왔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역사에 관한 전시회였다. 현재의 월드컵 참사를 논하고 미래의 한국 축구를 걱정하는 시점에서 돌아본 우리의 역사는 참 깊은 울림을 줬다. 오늘은 독자들에게 이 전시회를 소개하려 한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는 <잘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전시회다. 얼마 전까지도 동대문에 가면 늘 우리를 반겨주던 이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역사 박물관에 그 일부만이 남아 있다.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은 한국 축구가 살아온 발자취를 조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축구를 비롯해 한국 스포츠의 역사와 함께한 뒤 이제는 철거된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는 전시회를 소개하려 한다.

기사 이미지

<잘가, 동대문운동장> 전시회에는 한국 축구를 추억하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5월 30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 축구의 꿈이 영글었던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는 전시회다. 늘 지금은 철거된 동대문운동장 부지를 지날 때마다 세련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지켜보면서 한켠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던 나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순종 황제의 장례식부터 친탁·반탁 집회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경평전을 비롯해 수 많은 A매치는 물론 차범근과 펠레, 에우제비오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직접 누볐던 바로 그 경기장에 대한 추억이 전시회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1924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해 이후 서울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뀐 이곳은 우리네 슬픈 정치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은 곳이면서도 한국 스포츠의 출발점이기도 한 곳이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추억이 하나둘 스쳤다.

이곳에는 여러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시대별로 동대문운동장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부터 1930년대 경기장 운영 관련 서류들까지 즐비하다. 동대문운동장과 관련된 문학 작품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고 동대문운동장에서 주인을 가린 각종 우승 트로피도 전시돼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된 당시 입장권부터 경기장을 밝혀주던 조명, 주인을 잃어버린 관중석 의자까지도 마련돼 있다. 차범근의 아버지가 아들의 경기 중계를 듣던 라디오, 그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차범근이 따낸 상패, 그리고 그의 아들 차두리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아마추어 시절 얻어낸 트로피가 나란히 전시돼 있는 곳에서는 한국 축구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일일이 하나씩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전시회 곳곳에는 동대문운동장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있다. 30대 이상 축구팬이라면 다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동대문운동장의 추억은 이 전시회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중이다.

기사 이미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동대문운동장을 어떻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단순히 축구뿐 아니라 이곳에는 한국 스포츠를 이끈 이들에 대한 추억도 선명하게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시절 활약한 손기정(마라톤), 서정권(복싱)을 비롯해 서울운동장 시절 고교야구를 뜨겁게 달군 박노준, 고(故) 최동원의 땀이 스민 유니폼 등이 준비돼 있어 꼭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과거 한국 스포츠를 곱씹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가봐야 할 장소다. 전시회장 한켠의 텔레비전에서는 1970년대 차범근의 활약상이 흘러 나오고 철거를 아쉬워하던 이들의 안타까움 가득한 인터뷰도 이어진다. 누군가에게는 꿈을 키웠던 곳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수단이었고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을 선사했던 동대문운동장은 이렇게 작은 박물관에서나마 다시 태어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 전시관에서는 <안녕! 고가도로>라는 전시도 열리고 있다. 이 두 전시회 모두 무료다.

하나 아쉬운 건 이곳을 찾는 이들 중 대다수가 동대문운동장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이라는 점이다. 전시회에서 만난 이영복(67세)씨는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거기에서 차범근이가 뛰는 모습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렇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는데 참 아쉬워.”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이 전시회에는 꼬마 아이들도 종종 견학을 온다. 하지만 의외로 인터넷을 통해 지금의 한국 축구를 활발히 소비하는 젊은 친구들은 적었다. 인터넷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축구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곱씹어 보는 이들이 적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진지한 자세가 아니라도 우리의 과거를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라도 돌아볼 필요는 있을 텐데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사 이미지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한국 축구 역사를 고스란히 물려줄 의무가 있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이제 동대문운동장은 아예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쉽다. 언젠가는 동대문운동장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후손들은 “그런 게 있었어?”라고 할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그 자리에 화려한 모양의 디자인플라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당연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 축구의 참 많은 기쁨과 슬픔을 담고 있는 곳인데 이대로 잊혀지기에는 너무 아깝다. 스페인의 캄프 누나 잉글랜드의 웸블리는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경기장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최첨단 건물을 세웠다.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잠실올림픽경기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이렇게 쓸쓸히 퇴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가 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흉측했던 건물 하나가 철거됐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동대문운동장을 잊는 순간 우리의 찬란했던 축구 역사도 그만큼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미 철거돼 자취를 감춘 동대문운동장과 마지막 작별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전시회가 오는 13일 막을 내리면 동대문운동장 머릿돌과 관중석, 이와 관련된 우승 트로피를 비롯한 귀한 자료들, 그리고 우리의 소중했던 추억은 아마 한동안 깊은 창고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언제 다시 이 창고에서 꺼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매일 매일 과거에 감사하며 추억을 되새기자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한 번쯤은 발품을 팔아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는 전시회에 가보는 건 어떨까.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한국 축구의 역사에 대해 물을 때 당당하게 동대문운동장에 대해 몇 마디라도 해줘야 하는 게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의무라면 의무 아닐까. 특히나 인터넷을 통해 한국 축구를 활발히 소비하는 20대~40대의 젊은이들이라면 직접 한국 축구의 과거를 보고 느끼는 기회를 한 번쯤 가졌으면 한다. 더군다나 한국 축구가 월드컵 참패로 흔들리던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은 더더욱 필요하다.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을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축구가 혼란스러운 이때 한국 축구의 과거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잘가, 동대문운동장' 전시회 정보]

전시일정 : 5월30일~7월13일

관람시간 : 평일 09:00 ~ 20:00

토/일/휴일 09: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 무료

교통안내 :

<지하철>5호선 광화문역(7번출구),서대문역(4번출구)

<버스>

간선버스(파랑) 101,160,260,270,271,273,370,471,601,602,702A,702B,704,705,720,721

지선버스(초록) 7019

광역버스(빨강) 9701,9709,9710

공항버스 6002,6005

서울시티투어버스 광화문(동화면세점)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55(심문로2가)

전화번호 : 02-724-0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