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그나마 얻은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바로 골키퍼 김승규일 것이다. 벨기에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대표팀 골문을 지킨 김승규는 이후 일약 스타가 됐다. 너도나도 ‘김승규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김승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가 아니라 자국리그에서 오랜 시간 동안 키워낸 선수라는 점은 주목하지 않는다. 오늘도 무너져 가는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갑자기 우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김승규를 찬양하고 이런 선수들이 더 나오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고 전혀 현실적이기 않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 김승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승규는 2008년 이미 발견됐다

2008년 11월 22일이었다.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2008 K리그 플레이오프는 치열한 승부가 이어지며 연장 후반 막판까지 0-0 무승부로 팽팽하게 맞섰다. 양 팀 모두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울산 김정남 감독은 상상할 수 없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심이 연장 후반 종료 휘슬을 불기 직전 국가대표까지 지낸 주전 골키퍼 김영광을 빼버리고 한 무명 골키퍼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K리그 1군 무대를 밟은 적이 없던 18세 소년 김승규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반사신경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영광을 빼자 모두가 술렁였다. 그런데 김영광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된 이 어린 선수는 불과 몇 분 뒤 대형사고(?)를 쳤다. 승부차기에서 상대를 교란하는 이상한 손동작을 하며 포항 노병준과 김광석의 페널티킥을 연이어 막아내고 팀의 극적인 승부차기 승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티도 벗지 못한 선수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제야 주목하는 김승규는 이미 8년 전인 2006년부터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울산 유소년 팀인 현대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승규는 이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뽐냈다. 울산의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에 따라 현대중을 졸업하면 현대고로 진학해 실력을 키우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울산 측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승규와 같은 또래였던 또 한 명의 유망주 골키퍼 이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선수를 모두 현대고에 진학시켜 출전 기회를 나누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많은 고민 끝에 울산은 2006년 김승규와 프로 계약을 맺고 성인 팀에 등록시킨 뒤 이희성은 현대고로 보냈다. 지금은 규정이 바뀌면서 18세 미만 선수는 프로구단과 계약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그런 규정이 없어 가능했다. 그러면서 울산은 김승규를 프로 입단 시킨 뒤에도 그가 추후 학력 문제로 발목이 잡힐까봐 현대고에 다니도록 했다. 현대고 재학 중이지만 고교 선수로는 뛸 수 없고 프로 계약을 맺은 독특한 신분이었다. 그가 ‘특별관리’를 받을 만큼 기대 받는 유망주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통의 명가’ 울산에서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고등학생 선수의 일상은 특이했다. 오전 운동이 끝나면 책가방을 메고 선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비록 어리고 경험이 적은 그가 K리그 1군 무대에 당장 출전하는 건 어렵지만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많은 걸 배우라는 구단의 뜻이었다. 김승규도 전문 골키퍼 코치가 없는 고등학교 축구팀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프로 무대에 온 걸 반겼다.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김승규였지만 만 16세의 나이에 프로 무대에서 격돌한 선배들의 플레이는 차원이 달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부상 한 번 당해본 적이 없지만 프로 선수들의 강력한 슈팅을 막다가 처음으로 손가락 부상을 입는 등 성인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김승규는 한참 선배인 서동명을 비롯해 김영광과 김지혁 등을 통해 또래들에게서는 배울 수 없는 경험을 전수 받았다.

김승규, 철저한 시스템에 의해 육성된 유망주

김승규는 프로 무대에서 착실히 골키퍼 수업을 받으며 2007년 U-17 청소년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윤석영과 주성환(이상 광양제철고), 배천석과 이용재(포철공고) 등 프로 산하 유소년 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고 오재석(신갈고)과 한국영(강릉문성고), 김민우(언남고) 등이 포진한 대표팀의 유일한 프로 선수가 바로 김승규였다. 비록 K리그 1군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2군 경기에서는 18경기에 나서 13실점만을 내주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승규는 철저히 울산 유소년 팀에서 성장했고 구단의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점점 완성돼 가고 있는 선수였다. 최인영과 김병지, 서동명, 김영광 등을 배출한 골키퍼 왕국 울산의 다음 후계자로 큰 기대를 받은 게 바로 김승규였다. 울산 김정남 감독은 틈이 날 때마다 김풍주 골키퍼 코치를 통해 김승규의 성장에 대해 보고 받았고 언제든 준비만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그라운드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김승규는 혜성처럼 등장해 K리그 전체를 깜짝 놀라게 했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였다.

김승규와 함께 훈련하면서 그의 컨디션과 기량을 꾸준히 체크한 김풍주 골키퍼 코치는 포항전 전날 김정남 감독에게 말했다. “(김)승규가 컨디션이 좋습니다. 페널티킥에 강하니 내일 포항전에서 승부차기 상황이 되면 교체 투입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곧장 김정남 감독은 김승규를 불러 테스트를 했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김승규는 다음날 열릴 포항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상황이 되면 투입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포항 선수들의 승부차기 영상을 살펴보며 습관을 모두 간파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세기로 차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경기가 승부차기로 이어지자 김정남 감독은 김승규를 예정대로 투입해 대성공을 거뒀다. 김승규는 이번 월드컵을 위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선수가 아니라 2006년부터 키워졌고 2008년부터는 K리그의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만 18세에 불과하던 이 어린 선수는 포항전 승리 후 기자회견장에 나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김)영광이 형이 경기를 너무 잘했는데 저 때문에 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광이 형은 제 롤모델입니다. 실력과 훈련 자세 모두 본받을 만해요.”

이후 김승규는 2009년에는 U-20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됐고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발탁되는 등 차근차근 연령대별 대표팀에 뽑혔다. 비록 울산에서는 김영광이라는 큰 산과의 경쟁이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1년 K리그 플레이오프 수원과의 승부차기에서 또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전,후반과 연장까지 1-1로 두 팀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자 울산 김호곤 감독은 3년 전 김정남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김영광을 빼고 연장 막판 김승규를 투입하며 승부차기를 준비했다. 김승규가 등장하자 수원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염기훈과 양상민의 슈팅은 골문을 빚나가고 말았다. 여기에 김승규는 수원 네 번째 키커 최성환의 슈팅까지 막아내며 귀중한 승리와 함께 울산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에 환호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승규는 이어 벌어진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전반에만 모따와 황진성의 페널티킥을 두 개나 막아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김승규는 유망주에서 김영광이라는 큰 산을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프로 8년차 주전 골키퍼를 ‘발견’이라 부르는 나라

김승규는 2013년 시즌 김영광이 부상을 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완벽한 활약을 펼치며 ‘골키퍼 왕국’ 울산의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다. 이후 김영광이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김영광이 도전자의 입장이 됐고 결국 김영광은 김승규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경남FC로 임대를 떠나게 됐다. 김승규는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됐고 올 3월 벌어진 AFC 챔피언스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도 완벽한 선방을 세 차례나 선보이며 울산의 2-0 승리에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페널티킥만 잘 막는 선수로 평가 받았지만 이제 그는 안정감까지 더한 골키퍼가 됐고 정성룡이 대표팀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벨기에와의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 투입돼 대표팀 수문장 자리까지도 탈환했다. 이처럼 김승규는 K리그 울산의 체계적인 관리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경험 많은 선배들과 함께 경쟁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김영광이라는 가장 훌륭한 라이벌이자 선배를 만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시작은 2006년부터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김승규를 이번 월드컵에 갑자기 등장한 신예로 바라본다. 갑자기 하늘에서 그가 뚝 떨어진 줄 안다. 프로 8년차 골키퍼를 이제 ‘발견’했다고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박주영과 동갑내기인 29세의 이근호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은 유망주 취급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이미 자국리그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최고 반열에 올라서 있는 프로 8년차 골키퍼를 이번 대회 최고 발견이라고 한다. 나는 이게 참 아쉽다. 이제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억지로 자국리그를 보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고 이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늘 우승 경쟁을 하는 K리그 수준을 논할 생각도 없다. 자국리그의 중요성을 아무리 역설해 봐야 이제는 손가락만 아프다. 그런데 이미 2006년부터 철저한 계획 하에 육성된 리그 8년차 골키퍼를 이제야 ‘발견’이라고 하는 나라가 축구 선진국이 아니라는 건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다. 프로 생활을 8년이나 했고 근 몇 년 동안은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를 자랑스럽게도 이제 발견했다고 호들갑 떠는 언론의 잘못은 없는 걸까. 김승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발견’이 아니라 ‘입증’했을 뿐이다.

그는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지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가 아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한국 축구를 구할 영웅처럼 등장하길 바라는 건 참으로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김승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자국리그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 나라에서 모든 과정은 생략하고 영웅을 ‘발견’하려고 하는 건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데 어찌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쩌다 한 명씩 누군가 혜성처럼 등장한다면 “이 선수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이냐”고 할 건가. 그 선수들은 이미 자국리그에서 탄탄히 실력을 쌓은 선수들인데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자국리그 8년차 선수를 ‘발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철저한 유소년 시스템에 의해 자국리그에서 강한 경쟁자들과 싸워 이겨낸 선수가 많다면 세계 무대에서의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우리는 지금 리그 8년차 골키퍼를 ‘발견’했다고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라 가장 단순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 같은 진리를 ‘발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