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알제리와의 승부가 이제 채 하루도 남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내일(23일)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 2014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예선 알제리와의 2차전을 치른다. 이 경기 승패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갈릴 수 있어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경기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이 소피앙 페굴리를 어떻게 막고 상대 수비를 어떻게 뚫어내느냐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팬들 역시 이 경기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밤새고 기다리며 보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알람을 맞춰놓고 자다 일어나서 보기에도 애매한 이 경기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오늘은 이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고민해 보고 새벽 4시 경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논의해 보자.

자고 일어나서 본다

☞ 장점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를 본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정신은 말똥말똥하지만 그래도 알람을 새벽 3시 50분에 맞춰놓고 침대에 누워 양을 센다. 머리 속으로 잠시 후 벌어질 한국과 알제리전의 선발 명단을 예상해 보면서 꼭 한국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어 꿀잠을 자던 새벽, 적막함을 가르는 알람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린다. 잠깐 누운 것 같은데 벌써 새벽 3시 50분이 된 것이다. 곧장 텔레비전을 켜니 애국가가 연주되고 있고 한국 선수들은 전의에 불타는 표정으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 충분히 잠을 자 개운한 마음으로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응원한다. 한국의 승리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뒤 다소 일찍 일어나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회사에 가니 밤을 새고 이 경기를 기다렸던 이들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보이지만 나만 가뿐하다.

☞ 단점

알람을 새벽 3시 50분에 맞춰놓고 침대에 누웠지만 평소 이렇게 일찍 자 본적이 없어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양을 326마리까지 세다 포기하고 잡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 나를 찼던 여자친구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어떤 놈이랑 축구를 보고 있을까?’, ‘김부장이 해놓으라던 업무 보고를 깜빡했는데 내일 된통 깨지겠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다 겨우 새벽 한 시쯤 잠이 들었고 울리는 알람 소리를 무의식 중에 꺼버린 뒤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런데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무렵 옆집과 윗집에서 갑자기 “와~”하는 함성을 내질러 깜짝 놀라 깨어보니 이미 한국이 한 골을 넣는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이미 후반 42분, 한국이 1-0으로 알제리를 앞서고 있다. 마지막 남은 경기 시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밤새 이 경기를 기다리며 지켜본 이들과는 달리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몇 분이 훌쩍 지나갔고 결국 경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월드컵 분위기도 느끼지 못한 채 말이다.

☞ 전문가의 조언

최근 중국에서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던 이가 무려 세 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전문의들은 “최근 브라질월드컵으로 사고 및 응급환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 패턴의 변화에 따른 호흡 또는 위장 문제”라고 전했다. 이들은 “밤새 격렬한 감정 상태로 축구를 보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여기에 술까지 마시며 축구를 보는 행동은 자칫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통합의학을 연구하는 구현웅 박사 또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는 이른바 수면의 ‘골든아워’다. 이 시간에 잠을 자야 좋은 수면을 취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깟 공놀이(?) 때문에 밤을 새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밤새고 기다린 뒤 본다

☞ 장점

친구들과 집에 모여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새벽 한 시부터 벨기에-러시아 전을 관람하면서 월드컵 분위기를 낸다. 친구들과 가볍게 만 원씩 걸고 승리 팀 적중 내기를 하지만 내심 모든 이들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원치 않아 벨기에의 승리를 응원한다. 한국-알제리전을 기다리면서 서로 “러시아전 이근호의 골은 ‘뽀록’이었다, 아니다”를 놓고 수다를 떨고 나름대로 다들 전문가가 돼 다음 상대인 벨기에의 전력을 분석하기도 한다. 새벽 세 시에 벨기에-러시아전이 끝날 때쯤 위닝 일레븐 내기를 한 판 해 떨어진 맥주를 더 사올 친구를 선정하고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새벽 네 시 드디어 기다리던 한국과 알제리 선수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 쯤이면 새벽 한 시부터 마신 맥주로 살짝 취기가 돌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이렇게 한국 경기를 기다리는 게 월드컵의 묘미라 생각하고 즐긴다.

☞ 단점

벨기에-러시아전을 보며 새벽 네 시를 기다리는 와중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벨기에-러시아전 후반 20분까지만 기억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세상은 나를 빼고 모두 이 축제를 즐긴 모양이다. 밀려오는 잠을 겨우 겨우 참았지만 거기에 맥주를 몇 잔 마시고 나니 억울하게도 잠이 들고 만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침 10시다. 한국-알제리전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순간 바보처럼 잠 하나도 이기지 못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 경기 결과는 모르니 경기를 다시 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 네이트 대문에는 이런 기사가 톱으로 걸려있다. <한국, 2-0으로 알제리 잡고 16강행 청신호> 젠장, 경기 결과까지도 알아 버렸다. 내가 잠든 새벽 동안 아마 전국에서는 환호성이 넘치고 몇몇 이들은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밤새 벌어진 축구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낄 수가 없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전문가의 조언

강남 가라오케 <시크릿> 사장 태풍(33세) 씨는 “월드컵이라는 전국민의 축제라면 하루 쯤은 밤을 새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그는 “월드컵 시즌이 된 뒤 술을 마시며 축구 경기를 즐기기 위한 손님들이 무척 많아졌다”면서 “뭐니뭐니해도 축구 경기를 보는 데 술이 빠질 수는 없다. 이런 전국민의 축제를 이제 막 잠에서 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보는 건 아까운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축제를 놓치면 또 4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 정도 피곤한 건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알제리전을 즐기길 권한다. 그나저나 김현회는 외상값 33만 2천원이나 빨리 갚아라.”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새벽 네 시에 벌어지는 이 축구 축제를 자고 일어난 상태에서 또렷한 정신으로 지켜볼지, 아니면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흥분된 마음으로 밤을 새고 지켜볼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달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지만 하나 분명한 건 새벽 단잠을 포기하고 이 경기를 지켜볼 많은 이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선수들이 멋진 경기를 선수들이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 만큼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