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홍명보 감독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 23명 선발에 대해 나는 상당히 실망스럽고 불쾌하다. 과연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사심 없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결정이었을까. 홍명보 감독은 본인 스스로 지금껏 해온 말을 행동으로 실천했을까. 내 답은 ‘아니오’다. 이럴 거면 그동안 수차례 평가전을 왜 치러 왔으며 언론을 통해 그렇게 원칙을 고수하는 듯한 발언을 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홍명보 감독의 선수 발탁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전한다. 이게 무슨 월드컵인가. 홍명보호의 아이들을 위한 그들만의 축제일 뿐이지.

박주호의 부상, 엔트리 탈락할 수준인가

박주호부터 살펴보자. 홍명보 감독은 박주호의 대표팀 탈락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처의 10% 가량이 아물지 않았고 실밥도 풀지 않았다. 코칭스태프와 의료진이 전체적인 기간을 놓고 볼 때 부상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시기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홍명보 감독이 ‘특별 관리 대상’으로 못 박고 황제 훈련까지 시켰던 박주영과 똑같은 부위에 똑같이 입은 부상, 즉 봉와직염이었다. 박주영이 봉와직염에 걸려 고름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완치까지 3주 정도 소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4월 초 염증 제거 수술을 받은 박주호도 완치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실제로 박주호의 소속팀 마인츠의 토마스 투헬 감독은 박주호가 시즌 마지막 경기인 5월 10일 경기에는 완전 회복돼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복 속도가 다소 더뎌지긴 했지만 월드컵 본선이 개막하기 전까지는 회복 시간도 충분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과연 박주호가 한 달 넘게 남은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충분히 회복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명단에서 내칠 만큼 대표팀의 운명이 위태로웠는지 여부다. 일부 언론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박주호의 부상 부위가 ‘10%도’ 아물지 않았다”고 전했지만 이는 ‘아직 10%가’ 아물지 않았다“는 표현을 잘못 전한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미 90%는 상처가 아문 상태였고 박주호는 홍명보 감독이 최종 엔트리를 선발하는 바로 어제(8일) 실밥을 풀었다. 10%만 더 회복하면 100%가 되는 선수를 과감히 쳐내야 할 만큼의 문제가 있었나. 홍명보 감독은 지난 3월 이미 소속팀에서 부상으로 11경기 연속 결장한 뒤 막 회복하고 있던 곽태휘를 그리스전 명단에 포함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90% 회복한 박주호는 한 달 뒤에 완벽한 회복이 예상되지만 엔트리에서 뺐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박주호가 엔트리에서 빠져야 할 만큼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생각보다 회복에 오랜 시간을 소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과를 지켜본 후 박주호 대신 예비 엔트리에서 추후 대체자를 뽑는 걸로도 충분했다. 규정상 대표팀은 오는 13일까지 예비 엔트리 7명을 포함한 30명의 명단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하고 내달 2일 이중 최종엔트리 23명을 추리면 된다. 또한 대회 개막 직후에도 부상자가 발생하면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 부상 관련 서류를 제출해 FIFA로부터 승인을 받아 예비 엔트리 포함 여부와 관계 없이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긴박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이 충분한 상황에서 박주호를 엔트리에 뽑은 뒤 내달 2일까지만 지켜보고 정 안될 경우 새로운 선수로 대체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이미 90%나 회복한 선수를 이렇게 내쳐야 했을까.

윤석영 발탁, 누구를 위한 원칙이었나

홍명보 감독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대표선수 선발 기준으로 멀티 능력이 얼마만큼 있느냐. 두 포지션 정도를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느냐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딱 부합하는 선수도 박주호였다. 소속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며 맹활약을 펼쳤던 박주호는 월드컵에 나서기 위해서는 왼쪽 측면에서 더욱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에 투헬 감독에게 직접 건의해 왼쪽 풀백으로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만약 박주호를 선발했더라면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대표팀에서 제외하고 이 카드를 공격 쪽에 쓸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아마 남태희가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잡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박주호는 올 시즌 중원과 측면에서 펄펄 날며 분데스리가 선정 베스트 11에 3차례나 선정되는 등 개인적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손흥민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멀티 플레이어를 대표 선발의 기준으로 두겠다던 홍명보 감독은 이 원칙을 깨고야 말았다.

정리해 보자. 똑같은 부상을 당한 박주영은 황제 훈련 논란까지 일으키며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박주호는 그러지 못했다. 가장 필요한 게 멀티 플레이어 능력이라고 했지만 정작 수비형 미드필드와 왼쪽 풀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을 스스로 포기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분데스리가 27경기 중 26경기에 나서 24경기나 풀타임 출장한 선수를 쳐냈다. 감독이 직접 부상에서 90%나 회복했다고 밝힌 선수를 한 달 뒤 열리는 대회에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 홍명보 감독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기성용은 현재 러닝조차 힘든 상태로 알려져 있다. 부상으로 인한 선수 가용 여부는 박주호보다도 오히려 기성용이 더 위태로운 상태다. 아직 러닝도 불가능한 선수를 뽑아놓고 10%만 더 회복하면 되는 선수는 부상을 이유로 뽑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홍명보 감독의 원칙은 누구를 위한 원칙이었나.

여기에 박주호의 대체자로 뽑은 윤석영을 살펴보자. 윤석영 역시 한국 축구를 이끌 훌륭한 자원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윤석영은 홍명보 감독이 세운 원칙에 정확히 반대되는 선수다. 늘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대표팀 선발 기준”이라고 했던 홍명보 감독은 올 시즌 소속팀 퀸즈파크 레인저스에서 줄곧 벤치를 지키다 이제 막 몇 경기에 나선 게 전부인 윤석영을 과감히 발탁했다. 더군다나 윤석영은 왼쪽 공격으로도 뛸 수 있는 선수지만 주로 왼쪽 풀백으로 나서는 선수다. 멀티 플레이어 능력 역시 박주호가 한 수 위다. 윤석영은 지금껏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강조하는 홍명보 감독의 원칙에 의해 대표팀에서도 제대로 부름을 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차라리 홍명보 감독이 “내 스타일대로 선수를 뽑고 결과로 답할 테니 다들 믿어달라”고 했으면 이런 불쾌한 감정도 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껏 온갖 멋진 말로 원칙주의자 이미지를 쌓아 놓고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말을 바꿔 버리면 그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 선수들은 뭐가 되나.

박종우, 하대성, 이명주 중 누가 원칙에 부합하나?

나는 이명주도 당연히 이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속팀에서의 활약 여부에서 이명주만큼 확실한 ‘팩트’를 제시한 선수도 없다. K리그 클래식에서 무려 9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활약을 선보인 이명주가 대표팀에서 빠졌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이명주가 대표팀에 발탁되려면 K리그 전경기 연속 멀티 공격 포인트쯤은 기록했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명주는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11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4골 7도움으로 도움 부문 단독 선두에 올라 있지만 홍명보 감독은 “현재 대표팀 미드필더 중에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한국영 뿐이다. 만약을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명주에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요구했는데 결국 이 자리에 박종우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나는 홍명보 감독의 이같은 발언에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가장 먼저 나는 이명주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박종우에게 밀린다고 보지 않는다. 이명주는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에서 기성용과 함께 중원을 책임지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대표팀 데뷔전에서 합격점을 이미 받았다. 박종우 역시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기성용의 후방을 보좌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그는 지난 시즌까지 K리그에서도 최정상 미드필더까지는 아니었다. 올림픽 이후에는 부진한 활약으로 부산에서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이명주가 포항에서 팀 스타일상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도 그는 이미 대표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선수임에 분명하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포항에서 너무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죄 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한국영의 백업 요원으로 박종우와 이명주를 놓고 저울질하다 박종우를 선택했지만 나는 정작 이명주는 기성용 백업 요원으로 발탁된 하대성과 경쟁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영이 부상을 당하거나 징계를 당할 경우에는 박종우, 기성용이 이런 상황을 맞을 경우에는 이명주가 맞다. 이명주의 경쟁 상대는 박종우가 아니라 하대성이 됐어야 한다. 이미 소속팀에서 공격적인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를 꼭 수비형 미드필더 비교 대상으로 올릴 필요가 있을까. 하대성이 중국 슈퍼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한 선수를 이들보다 낮게 본다는 건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홍명보 감독은 이명주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이는 곧 이미 공격적인 성향의 미드필더 자원은 일찌감치 포화 상태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나. 이번 대표팀에서 이 자리가 유력한 김보경과 지동원 등은 홍명보 감독이 이미 내세운 원칙인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미비한 선수였다. 이 선수들이 일찌감치 낙점됐으니 이명주가 정 대표팀에 오고 싶거든 지금 포지션을 포기하라는 의미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

홍명보 감독은 이명주를 대표팀에 뽑지 않으면서 그의 애매한 포지션을 지적했다. 공격수로 기용하기에도, 그렇다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기에도 애매하다고 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정말 포지션이 애매한 선수는 바로 김보경이다. 카디프의 김보경은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고 측면 공격수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명주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지적대로라면 가장 먼저 최종 엔트리가 위태로운 선수는 김보경이어야 했다. 김보경도 충분히 능력이 있는 선수이니 그를 엔트리에서 빼라는 게 아니다. 그만큼 홍명보 감독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유를 들고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그냥 “전부터 함께 한 선수들과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면 나았을 뻔했다. 괜히 수비 능력이 어떻고 포지션이 애매하고 어쩌고 하는 핑계 때문에 해당 선수는 상처만 받는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이명주가 경험이 부족해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했는데 김창수(8경기), 한국영(8경기), 김승규(5경기), 황석호(3경기), 윤석영(2경기), 이범영(출장 없음)보다도 이명주(9경기)가 경험이 더 많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늘 말해왔지만 감독은 결과에 책임만 지면 된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공식적으로 선수 선발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최우선적으로 보겠다”는 말은 그가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모든 친분을 떠나 객관적으로 선수를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발언 뒤에는 “원칙이란 게 상황마다 바뀌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를 더 주목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홍명보 감독이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그는 소속팀에서 뛰지도 못했던 박주영을 선발하며 이 원칙을 스스로 깼고 방송에 나와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내가 원칙을 깬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박주영은 팀을 옮기면서까지 내 원칙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박주영을 감쌌다. 이게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결국 홍명보 감독은 원칙 따위 없이 자기가 뽑고 싶은 선수들만 뽑았다. 그러면서 부상을 탓하고 포지션을 탓하면서 뽑히지 못한 선수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자기 스스로 세운 원칙을 스스로 깼으니 어떠한 변호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런던 올림픽 당시 ‘홍명보의 아이들’을 대거 뽑을 거면서 참 많은 핑계를 대며 돌고 돌았다. 아마 한 달 뒤 대한민국은 또 다시 월드컵 열풍이 불 테고 오랜 시간 발을 맞춰온 홍명보호도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일 것이다. 위기에 강한 박주영은 한 방을 터트리고 그를 믿음으로 지켜준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높게 평가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나 역시 대표팀을 응원한다. 하지만 그건 월드컵의 선전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지 이번 대표팀에 대한 애착은 아닐 것이다. 앞과 뒤가 다르고 과정이 어떻건 결과만 좋으면 다 넘어가는 게 이 세상의 순리 아닌가. 홍명보 감독은 스스로 만든 ‘원 팀(One Team), 원 스피릿(One Spirit), 원 골(One Goal)’이라는 슬로건을 깨고 또 다른 의미의 ‘원 팀(One Team)’을 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