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승부였다. FC서울이 어제(7일)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원정 1차전에서 짜릿한 3-2 역전승을 거뒀다. 더군다나 올 시즌 K리그에서 단 한 번도 역전승을 거둬본 기억이 없는 서울의 역전승이었으니 감동이 더하다. 또한 이건 단순한 한 경기 승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부담스러운 원정 1차전에서 세 골이나 넣은 서울은 이제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다가올 홈 2차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어젯밤 대한민국 축구 대표 방송인 ‘스타 스포츠’를 통해 중계된 서울과 가와사키의 경기에 대한 감상평을 담아 보려고 한다.

1. 승부처는 오히려 전반전

이 경기를 지켜보던 나에게는 고비가 있었다. 경기 시작 10분 전부터 목욕재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시청을 준비했지만 경기 내용이 무척 지루해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겨우 이 고통을 견뎌낸 보람은 후반 들어 나타났다. 후반에만 다섯 골이 터진 경기였으니 당연히 모든 재미는 후반전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경기의 승부처가 전반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최용수 감독은 전반 스리톱을 포함해 전체를 수비에 가담시키며 수비 위주의 전략을 썼다. 전반전을 실점 없이 잘 버텨준다면 후반전에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최용수 감독 스스로 “어부가 그물을 치고 고기를 기다린다는 심정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했을 정도다.

만약 서울이 전반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후반전 명승부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서울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전반 초반 실점 후 남은 시간 동안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은 이 위기를 무사히 잘 넘겼고 의도한 대로 후반 60분 이후 승부를 보는 전략을 쓸 수 있었다. 흔히 복싱에서 맞는 선수보다 때리는 선수가 더 빨리 지친다고 하는데 이 경기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전반 주도권을 잡고도 득점에 실패한 가와사키가 후반 들어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경기의 재미는 후반전에서 찾을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승부처는 전반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부’ 최용수 감독은 오랜 기다림 끝에 ‘월척’을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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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차두리는 헤나토와의 정당한 몸싸움 과정에서 다소 억울한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말았다. (사진=프로축구연맹)>

2. K리그보다 떨어지는 ACL 심판 수준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러 차례 오심이 나오고 있다. 조별예선 광저우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북 정인환의 결정적인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고 이는 결국 조별예선 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여기에 지난 6일 치러진 전북-포항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 역시 경기 흐름을 끊는 심판의 판정이 수 차례 나오면서 양 팀 모두 상당한 불만을 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아시아권 심판 중에서는 그나마 일본 심판이 논란에서 자유롭고 판정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K리그 팀들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전까지는 쭉 중동 심판과 마주해야 한다. 동아시아 팀간의 대결에서는 동아시아 심판을 배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심판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중동 심판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서울-가와사키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후반 1-1 상황에서 나온 가와사키의 페널티킥 장면은 서울로서 상당히 억울한 판정이었다. 서울 지역 페널티 박스 안에서 차두리와 헤나토의 정당한 몸싸움 과정으로 봐도 충분한 동작이었지만 UAE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차두리가 팔로 헤나토를 밀었다는 판정이었고 결국 레나토는 이를 차 넣으며 가와사키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만약 서울이 짜릿한 3-2 역전승을 거두지 못했더라면 이 장면은 두고 두고 회자됐을 것이다. 1-1 동점 이후 기세를 올리던 서울로서는 이 실점 이후 또 다시 상대를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K리그는 심판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지만 최근 챔피언스리그 심판 수준을 보면 K리그는 양반이다. 조심스럽게 고금복 심판과 최광보 심판의 ‘명심판론’을 제기해 본다.

3. 서울, 리그보다 ACL에 집중해야

K리그 11위 팀의 위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서울은 K리그에서 11경기를 치른 현재 딱 두 번 이기는 데 그치며 꼴찌에서 2등에 머물러 있다. 서울이 이 11경기에서 넣은 골이 고작 6골에 불과한데 가와사키전 한 경기에서 무려 세 골이나 넣었으니 참으로 놀랍다. K리그는 꼴찌에서 두 번째 있는 팀도 이 정도 한다.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보면서 서울이 16강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K리그보다는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더블은 물론 트레블까지 달성하면 더 좋겠지만 냉정히 따져 서울이 다관왕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선수 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K리그보다 챔피언스리그가 더 우선 되어야 한다.

서울은 지난 시즌에도 K리그에서 슬로우 스타터의 면모를 보였다. 시즌 초반 믿기지 않는 부진에 머물렀던 서울은 중반 이후 경기력을 회복해 후반기 막판까지 리그 선두권을 위협했다. 하지만 그때는 데얀도 있고 하대성도 있고 아디도 있었다. 이 세 선수가 빠져 나간 올해는 조금 다르다. 분명히 지금보다는 좋은 순위로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한 팀이지만 K리그 우승권 내지는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오르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 결과야 언제든 뒤집힐 수 있지만 다가올 가와사키와의 2차전에서 엄청난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서울은 이제 네 경기만 더 치르면 결승에 갈 수 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K리그에서는 강등권만 벗어나도 크게 남는 장사 아닐까. 서울로서는 현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4. J리그 팀의 한계

‘전통의 강호’ 울산이 이번 조별예선 원정경기에서 가와사키에 1-3으로 패하며 탈락할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울산의 선수 구성이라면 아시아 정상도 충분히 노려 볼 만했는데 이런 울산이 가와사키에 발목을 잡히며 16강 진출에도 실패했으니 아마 나처럼 충격을 받은 이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아시아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J리그 구단이 ‘K리그 최강’ 울산을 격파했다는 건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울산도 해내지 못한 가와사키 원정 승리를 따냈다. 단순히 이 한 경기로 모든 걸 평가할 수는 없지만 울산이 가와사키에 덜미를 잡힌 여파가 K리그 구단에 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하다. 16강 들어 J리그 팀들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세레소 오사카는 안방에서 광저우 헝다를 맞아 1-5 대패를 당했다. 광저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세레소 역시 가키타니 요이치로와 야마구치 호타루 등 일본 대표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고 디에고 포를란과 고이코 카차르 등 유럽 무대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까지 포진해 J리그에서는 ‘스타 군단’으로 통한다. 그런 세레소가 안방에서 굴욕을 겪은데 이어 이번에는 가와사키가 또 다시 서울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나마 히로시마 산프레체가 웨스턴시드니를 1차전에서 3-1로 제압하면서 8강행 희망을 이어가고 있지만 웨스턴시드니는 16강 진출 팀 중에 가장 약한 상대로 꼽히고 있다. 올 시즌 역시 J리그는 챔피언스리그 상위 순위를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서울전에서 툭하면 넘어지는 가와사키 선수들을 보면서 J리그 팀들이 아시아 무대에서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진 느낌이다.

5. 윤일록 활약의 밑바탕은 수비력

오늘 홍명보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 데려갈 23명의 선수를 발표할 텐데 아마도 윤일록은 그 명단에 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 예측이 빗나가면 망신이지만 적어도 지금 내 관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명단 발표를 조금만 늦췄더라면 윤일록의 대표팀 승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현재 윤일록이 보여주는 활약은 그 어떤 대표팀 공격수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경기에서도 ‘소년 가장’ 윤일록의 플레이는 단연 빛났다. 특히 후반 추가 시간에 단독 드리블에 이은 극적인 결승골 장면은 압권이었다. 상대 수비수의 공을 빼앗은 윤일록의 질주를 보는 순간 이번 월드컵 대표팀에 그의 이름이 올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단순히 윤일록의 득점 장면만을 놓고 그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이 장면 외에도 그리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는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특히 후반 에스쿠데로의 동점골 장면에서 보여준 윤일록의 수비력은 일품이었다. 그는 가와사키 수비수의 공을 차단한 뒤 측면을 돌파해 에스쿠데로의 골을 도왔다. 역전골 역시 윤일록의 돌파 이전에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려는 그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골이었다. 공격수는 공격만 하고 수비수는 수비만 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윤일록처럼 공격수임에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 역습 상황을 연출해 내는 것도 바로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의 역할이다. 나는 윤일록의 가와사키전 맹활약에는 그의 수비력이 밑바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오늘 아침까지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명단 발표를 앞두고 윤일록 때문에 하얗게 밤을 지새우지 않았을까.

6. 원정 팬들의 힘도 컸다

K리그 팀들이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를 치를 때면 선수들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리그 구단이 국내에 와서 경기를 할 때보다도 늘 적은 응원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원이 적다고 먼 원정을 떠난 이들의 열정과 노고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이들이 타국에서 외롭게 싸우는 K리그 선수들을 응원한다면 선수들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가와사키 원정에는 꽤 많은 서울 팬들이 현장에서 응원을 펼쳤다. 현지 교민까지 포함하면 약 100여 명은 돼 보였다. 여전히 적은 규모라고 할 수도 있지만 평일 일본으로 가 응원하는 이들의 수가 이 정도라는 건 K리그에서는 상당히 특별한 일이다. 또한 골을 넣은 뒤 원정 응원을 온 팬들 앞으로 달려가 함께 기뻐하는 서울 선수들을 보면서 원정 팬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승리는 선수들 못지 않게 팬들의 지분(?)도 상당했다.

7. 이제는 자만심과의 싸움

16강 1차전이 모두 끝난 현재 8강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팀은 누가 뭐래도 광저우다. 이미 원정 1차전에서 5-1 대승을 거둔 광저우가 2차전에서 크게 져 탈락할 확률은 갑자기 내일 NS윤지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확률보다도 낮다. 그리고 두 번째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은 팀이 바로 서울이다. 이미 적지에서 세 골을 넣고 승리를 거둔 서울은 안방에서 0-1이나 1-2로 져도 8강에 올라갈 수 있다. 더군다나 서울은 주말에 K리그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가와사키는 주말에 J리그 경기를 치른 뒤 서울 원정을 오게 돼 체력적인 부담도 더 크다. 서울이 떨어질 확률은 NS윤지가 SNS로 나에게 “칼럼마다 저를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라는 멘션을 보낼 확률보다도 낮다. 하지만 이런 일의 가능성이 아예 0%인 건 아니다. 이제 8부 능선을 넘었으니 자만심과의 싸움만이 남았다. 경고 받지 않고 슬기롭게 2차전에 임할 수 있도록 최용수 감독이 꾸준히 잔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