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만우절이다. 오늘 같은 날에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 여자친구 생겼어”라는 말에 친구들은 “만우절이라고 그런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라는 반응과 함께 당신의 후두부를 가격할지도 모른다. 어떤 말이건 다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오늘, 나는 거짓말 같은 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거짓말과도 같았던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정리해봤다. 만우절을 기념해 이틀에 걸쳐 한국이 거짓말처럼 졸전에 머물렀던 경기와 거짓말처럼 승리한 각각 7경기를 뽑아보려 한다. 지금이라도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 바로 그런 졸전들이 오늘의 주제다.

거짓말 같은 졸전 7위. 한국 0-1 태국
1998년 12월 14일 태국 방콕 라자만갈라경기장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나선 한국 선수들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첫 경기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2-3으로 패하는 등 졸전 끝에 가까스로 2차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허정무 감독은 2차리그에서 일본을 2-0으로 제압하고 이후 UAE와 쿠웨이트를 각각 2-1, 1-0으로 꺾고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8강 상대는 개최국 태국이었다. 아무리 태국이 홈 이점을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상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태국 국민 영웅이라는 공격수 나티퐁과 키아티 숙, 세나무앙, 수라차이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동남아시아 선수들이라는 생각이었다. 반면 한국은 김병지를 비롯해 유상철, 최용수, 윤정환, 최성용, 이동국, 김남일 등 초호화 멤버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국이 이겨도 본전인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6만여 태국 관중 앞에서 전반을 졸전 끝에 0-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 9분 태국 공격수 스리마카가 비신사적인 행위로 퇴장 당했지만 오히려 더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후반 36분 세나무앙에게 골을 내주고야 말았다. 태국은 이후에도 거친 플레이를 펼치다가 후반 41분 지라시리초테가 경고 누적으로 또 다시 퇴장을 당해 9명으로 경기를 이어나갔고 유상철이 프리킥 찬스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유상철은 동료들과 마치 벨기에전 동점골 상황처럼 기뻐했다. 상대가 아시아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태국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연장 전반 5분 한국은 태국 담농이 한국 진영 오른쪽에서 마음껏 때린 40m짜리 장거리슈팅을 얻어 맞고 결국 1-2로 태국에 패하고 말았다. 9명이 싸운 태국에 패한 건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정형돈에게도 지적 받을 만한 붉은 상의와 흰색 하의의 언밸런스한 유니폼 조화까지도 최악인 경기였다.

거짓말 같은 졸전 6위. 한국 1-2 레바논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2011년 11월 한국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로 원정을 떠났다.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조별리그 5차전 경기를 위해서였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그대로 아시아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레바논은 FIFA 랭킹 146위였고 역대 전적 1무 6패로 한국을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레바논은 한국에서 열린 1차전을 앞두고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과의 평가전에서도 0-4 대패를 당했었고 한국 대표팀에는 0-6으로 크게 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레바논 원정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했고 한국에 적대적인 홈 관중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날 경기 응원을 위해 레바논 정부는 학교와 직장에 오전 일과만을 권고할 정도였고 대통령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에게 선전을 기원했다.

한국은 전반 4분 만에 레바논에 첫 골을 허용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압바스 아트위가 낮게 깔아 찬 프리킥을 로다 안타르가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공이 흐르자 알리 알 사디가 다시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낸 것이다. 이후 전반 18분 이근호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구자철이 침착하게 성공시켜 1-1 동점에 성공했지만 전반 31분 또 다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동점골을 뽑아낸 구자철이 마흐무드 엘 알리와 충돌하며 페널티킥을 내준 것이었다. 결국 아트위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레바논은 또 다시 한 골을 달아났다. 이후 한국은 손흥민 대신 지동원을 투입하는 등 다양한 공격 루트를 통해 골을 노렸지만 더 이상의 골은 없었다. 1-2 패배였다. 레바논은 이 승리 이후 시내에서 상인들이 공짜 행사를 벌일 정도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나마 위안인 건 내전의 아픔을 겪던 레바논 국민들에게 우리가 한 줄기 희망을 선물했다는 점뿐이다. 조광래 감독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거짓말 같은 졸전 5위. 한국 0-1 우즈베키스탄
1994년 10월 13일 히로시마 리저널 파크경기장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전은 명승부였다. 한국은 8강전에서 개최국 일본을 상대로 짜릿한 3-2 역전승을 거두고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황선홍을 비롯해 김주성과 노정윤, 고정운, 홍명보, 유상철, 하석주, 신태용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금메달을 향해 순항하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준결승 상대는 이제 막 구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지금의 우즈벡은 아시아권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리는 팀이었지만 당시 우즈벡은 구소련에서 분리된 뒤 처음 국제대회에 나선 약체였다. 김태희가 밭을 갈고 한가인이 소를 모는 ‘장인 어른의 나라’라는 걸 알았다면 그전부터 관심을 가졌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를 정도로 우즈벡이 생소했다. 일본을 상대로 세 골이나 뽑아낸 한국이라면 여유 있게 승리를 거둘 만한 팀이었다. 한국은 은연 중에 결승전에 대한 생각을 머리 속에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때린 슈팅이 골문을 빗겨 나가거나 우즈벡 수비진에서 걸리기 일쑤였다. 한국이 전반에 날린 14개의 슈팅은 단 한 골로도 이어지지 못했고 0-0으로 마친 한국은 오히려 후반 19분 거짓말 같은 실점을 하게 됐다. 우즈벡의 압둘라이모프가 날린 평범한 슈팅을 골키퍼 차상광이 놓쳐 통한의 골을 내준 것이다. 워낙 일방적인 경기를 펼쳐 공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차상광이 당황하며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고 이때부터 한국은 더욱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줄기차게 우즈벡 골문을 노렸지만 더 이상의 득점은 없었다. 슈팅수 28대1이라는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결국 한국은 우즈벡에 0-1로 패해 금메달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다. 우즈벡이 날린 이날 한 개의 슈팅이 바로 골이었다. 우즈벡은 한국을 꺾은 뒤 결승전에서 중국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후 차상광을 한국 대표팀에서 다시 본 이는 없었다.

거짓말 같은 졸전 4위. 한국 0-3 중국
2010년 2월 10일 도쿄 아지노모토 경기장

한국은 공식 기록상 중국에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다. 27경기를 치르면서 16승 11무를 기록했을 정도로 중국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중국에서는 이를 ‘공한증’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공한증’은 지난 2010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깨지고 말았다. 이날 한국은 완전히 중국 축구에 농락당했다. 경기 시작 4분 만에 첫 골을 허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오른쪽 측면을 침투한 취보가 올린 크로스를 위하이가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첫 골을 뽑아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한국 팬들은 “설마”했다. 하지만 전반 27분 중국은 자오 쉬르의 패스를 받은 가오 린이 두 번째 골을 뽑아내며 달아났다. 0-2로 한국이 뒤지면서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공한증이 깨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추가골을 뽑아내 무승부 정도는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중국의 공세는 후반 들어서도 이어지더니 후반 15분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세 번째 골까지 뽑아냈다. 리오넬 메시, 아니 덩 주오샹은 한국 수비수 세 명을 제친 뒤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한국 골문 구석을 갈랐다. 이 세 번째 골이 터진 순간 ‘공한증’을 이어갈 것이라 장담했던 팬들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 어떤 핑계도 용납되지 않는 0-3 완패였다. 특히나 세 번째 골은 덩 주오샹의 개인기에 완벽히 농락당한 굴욕적인 실점이었다. 32년 동안 27경기를 통해 이어지던 ‘공한증’은 이렇게 깨지고야 말았다. 경기 전 “공한증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자신감을 보인 허정무 감독은 경기 후 이런 말을 남겼다. “선수기용을 잘못했다. 심판 판정도 문제였지만 중국이 경기를 잘했다.” 덩 주오샹이 메시로, 가오 린이 호날두로 보였던 날이었다. 한국 축구사에서 지우고 싶은 치욕적인 날이었다.

거짓말 같은 졸전 3위. 한국 0-1 베트남
2003년 10월 20일 오만 무스카트 술탄 카부스 스포츠 콤플렉스

2003년 10월 2004 아시안컵 2차예선을 치르고 있었다. 깔끔하게 3연승을 기록 중이던 한국은 베트남과 오만을 상대로 오만 현지에서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미 안방에서 이기형과 조재진, 김도훈, 김대의, 우성용의 소나기 골로 5-0 대승을 거뒀던 한국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FIFA 랭킹 98위인 베트남은 한국의 상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베트남은 일찌감치 2004 아시안컵 본선 진출이 힘들다고 판단해 내달 열리는 동남아시안게임을 대비, 23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와일드카드로 23세 이상 선수가 단 세 명 포함됐을 뿐이다. 반면 한국은 김도훈을 비롯해 이운재, 김태영, 조재진 등을 총동원했다. 1959년 2-3 패배 이후 한국은 베트남에 44년 동안 한 번도 진적이 없었다. 가수 이미자가 ‘열 아홉 순정’이라는 노래로 데뷔를 하던 1959년 이후 한국은 베트남에 져본 역사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베트남을 위협했지만 골이 터지지 않았다. 전반 박진섭을 비롯해 조성환과 현영민, 김정우, 정경호 등 젊은 선수들을 기용했던 한국은 공격이 의외로 잘 풀리지 않자 후반 들어 김대의와 김도훈, 이을용 등을 연이어 투입하며 경기에 진지하게 임했다. 하지만 이날 유일한 골은 베트남이 터트렸다. 후반 28분 베트남 공격수 팜 반 쿠옌이 이운재가 지키는 한국 골문을 뚫는 결승골을 뽑아낸 것이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슈팅수 16-4, 코너킥 9-1이라는 압도적인 경기 내용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승리를 헌납하고 말았다. 아직도 기억한다. 10월 20일 내 생일에 코엘류 감독은 선물은커녕 엄청난 충격을 나에게 안겨줬다. 살다 살다 한국이 베트남의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패하는 상황을 또 다시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건 충격패의 서막에 불과했다. 다가올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거짓말 같은 졸전 2위. 한국 1-3 오만
2003년 10월 22일 오만 무스카트 술탄 카부스 스포츠 콤플렉스

44년 만에 베트남에 충격패를 당한 한국의 다음 상대는 오만이었다. 오만은 베트남보다도 낮은 FIFA 랭킹 102위의 최약체였다. 코엘류 감독은 “오만을 상대로 승리해 베트남전 패배 치욕을 씻겠다”고 공언했다. 한 번은 약체에게 발목을 잡힐 수 있어도 사흘 동안 두 번이나 충격패가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코엘류 감독은 원톱에 김도훈을 내세웠고 2선에 김대의와 정경호, 최태욱 등 빠른 선수들을 포진했다. 1만 5천여 오만 홈 관중이 열띤 응원을 펼쳤지만 이미 베트남에 덜미를 잡혀 독이 바짝 오른 한국 선수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 2분 최진철의 헤딩 패스를 정경호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이전까지 다소 고전했지만 한 번 오만 골문이 열렸으니 대량득점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기 내내 웅크리고 있던 오만은 후반 14분 역습 찬스에서 동점골을 뽑아냈다. 김남일이 동료에게 건네는 패스를 가로채 공격수 알 누비가 골을 터트린 것이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5분 뒤 한국은 무하메드에게 역전골을 허용한 뒤 급하게 공격에 치중하다 후반 막판 오히려 한 골을 더 내주고 말았다. 1-3.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베트남에 깨지고 오만에 얻어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더 굴욕적인 건 베트남과 오만, 네팔 등 최약체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이 이들과 ‘경우의 수’까지 따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패배로 오만에 조1위 자리를 내준 뒤 베트남에 골득실에서 앞서 간신히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코엘류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꼭 승리해 예선을 통과하겠다.” 스페인 정도는 만날 것처럼 비장한 각오를 밝혔지만 마지막 상대는 네팔이었다.

거짓말 같은 졸전 1위. 한국 0-0 몰디브
2004년 3월 31일 몰디브 말레국립경기장

2004년 3월 한국 선수들은 우윳빛 커튼 나풀거리는 몰디브 해변가로 향했다.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7조 예선 2차전 경기를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은 2002년 월드컵 4강 영웅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골키퍼 이운재를 비롯해 설기현, 이을용, 김남일 등이 포진해 있었고 지금은 허약형 비만이지만 이때만 해도 완벽한 몸을 자랑하던 안정환과 송종국도 아빠 대표로, 아니 축구 국가대표로 팀에 합류했다. 충남 아산시와 엇비슷한 인구 30만의 작은 나라 몰디브는 FIFA 랭킹 142위의 최약체였다. 몰디브에서도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일이었다. 그 누구도 한국이 몰디브와의 경기에서 졸전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고 선수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풀었다. 그런데 휴양지에서 정신을 딴 데로 팔았기 때문일까.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거짓말 같은 최악의 졸전을 펼치고 말았다.

시종일관 몰디브를 몰아쳤지만 결국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0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무승부에 몰디브 선수들은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 마냥 부둥켜 안았고 몰디브 정부에서는 이날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결국 코엘류 감독은 이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더군다나 이 경기는 3월 31일 펼쳐졌고 다음 날은 만우절이었다. 경기를 보지 못한 이들은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이렇게 반응했다. “아무리 만우절이어도 좀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 한국이 어떻게 몰디브하고 비겨.” 로이터 통신은 이 결과에 대해 “월드컵 4강 진출국인 한국이 FIFA랭킹 142위인 몰디브와 비긴 것은 월드컵 예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경기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만우절을 하루 앞둔 날 벌어진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가장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축구공은 둥글다. 늘 이기는 팀만 이기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다시는 이런 졸전을 보고 싶지 않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그저 과거의 추억 쯤으로만 여겼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가 과거에는 이런 굴욕도 당했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런 졸전은 안 된다. 이런 거짓말 같은 졸전과 패배를 거울 삼아 다시는 한국 축구에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