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촬영하기로 확정됐다. ‘어벤져스1’을 재미있게 본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서 서울을 어떻게 담을지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나라 전체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고 있다. 또 경제 유발 효과를 비롯해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까지 언급되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촬영된다는 것 정도로 즐거워하면 그만인데 우리는 너무 앞서 나간다. 서울에서 영화 ‘어벤져스’ 한 번 더 찍었다가는 전국민 무상 급식도 가능할 기세다. 세계적인 대작의 국내 촬영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호들갑에 거부감이 든다. ‘국뽕’에 거나하게 취한 모습이다. 이제는 주모도 좀 쉬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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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저스’는 속편 중 일부분을 서울 등에서 촬영하기로 확정했다.

‘어벤져스2’ 효과가 2조 원이라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벤져스2’ 국내 촬영으로 약 251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부가 가치 유발 효과도 약 107억 원 정도로 추산했다. 여기에 약 300여 명이 고용 유발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 개봉 후 외국인 관광객수가 약 62만 명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른 소비 지출로 연간 약 876억 원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한국관광공사는 더 화끈한 자료를 내놓았다. “4,000억 원의 직접 홍보효과 및 2조 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가 기대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 무슨 아직 개봉은커녕 촬영도 시작되지 않은 영화가 훗날 어떻게 될 줄 알고 이런 장밋빛 희망만을 품고 있는 건가. 이런 부가 가치 효과나 국가 브랜드 상승 효과 따위의 수치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2010년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당시 한국무역센터는 G20 경제효과가 450조 원, 취업유발 효과가 242만 명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1년에 두 번씩 돌아가면서 열리는 회의가 무슨 우리의 국격을 높인다고 그렇게 뜬구름을 잡았나. ‘어벤져스2’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대작이 우리나라에서 촬영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면 될 뿐 마치 이 영화가 개봉되면 우리의 국격이 올라갈 것처럼 호들갑 떠는 모양새는 별로다. 영화에서 서울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지만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영화 ‘트랜스포머2’ 초반에 중국의 한 시가지가 초토화되는 장면을 보고 그게 어느 도시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또한 이 도시를 기억한다고 해도 과연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가 있을까. 베트남 쌀국수 먹는다고 베트남 이미지 떠올릴 일도 없고 인도 카레 먹는다고 인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볼 일도 없는데 말이다.

영웅들이 지구를 구한다는 ‘어벤져스’의 내용을 감안한다면 서울 시내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박살나는 장면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반지의 제왕’을 통해 뉴질랜드가 엄청난 관광객 유발 효과를 입증했지만 때리고 부수는 ‘어벤저스’와 대자연의 풍광을 보여주는 ‘반지의 제왕’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껏 여러 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엉터리로 묘사된 서울이 사실은 높은 건물이 즐비한 발전된 곳이라는 걸 보여줄 기회라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그에 비해 기대 효과는 너무 부풀려져 있다. 조금이라도 세계에 알릴 만한 행사가 이 땅에서 벌어지면 우리는 경제 유발 효과나 국가 브랜드 가치 효과를 따지면서 호들갑을 떤다. 영화 한 편으로 국격이 올라갈 일도 없고 2조 원의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이 일어날 일도 없다. 이렇게 뜬구름 잡지 말고 현실적으로 우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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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도 이렇게 포항을 잘 안다.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 때문이다. (사진=부산MBC 좌충우돌 두 남자의 만국유람기)

지구 반대편에서 포항을 아는 이유

과거 부산MBC에서 방영하는 <좌충우돌 두 남자의 만국유람기>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리스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VJ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반갑다는 듯 답변했다. “두유 노우 캉남스타일? 두유 노우 연아킴?”을 외치지도 않았는데 이 외국인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Very good football team, Pohang Steelers!”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 사람은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포항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과연 AFC 챔피언스리그가 아니었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포항이라는 한국의 작은 도시를 알 수가 있을까. 전세계 사람이 성남을 아는 게 과연 성남시 호화청사 때문일까. 아니면 2010년 성남일화가 성남이라는 이름을 달고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어 세계클럽월드컵에 나갔기 때문일까. 일회성으로 영화 한 편 찍어서 홍보 효과가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런 게 진짜 홍보 효과다. 영화 한 편으로 2조 원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팩트’다.

전북현대가 모기업의 풍부한 지원을 받는 것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는 전북 구단은 매년 브라질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가는 데만 25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그래도 브라질을 찾는 이유는 바로 홍보 효과 때문이다. 이미 브라질내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전북 구단을 잘 알고 이동국을 비롯한 스타 선수들도 꿰뚫고 있다. 단순히 브라질에 가 전지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현대자동차 로고를 달고 사인회도 열고 친선경기도 치른다.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에서 나선다. 모기업에서 이 전지훈련에 대한 성과를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북은 여전히 선수 영입을 위해 빵빵한 지원을 받고 있다. 축구단 하나가 얼마나 큰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전북 구단이 브라질에 방문하기 시작한 이후로 현지 매출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라는 게 이렇게 무시무시하다. 잘만 공략하면 포항과 전주 등 우리나라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다.

현대자동차 사장이자 전북현대 구단주인 정의선 사장은 해외에 나가면 ‘현대자동차 CEO’라는 명함 대신 ‘전북현대 구단주’라는 명함을 더 많이 돌린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CEO’라는 명함을 상대가 받았을 때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만 ‘전북현대 구단주’라는 명함을 다시 건네면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CEO보다 한 축구단의 대표라는 직함이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더 잘 통한다. 나는 평소 마음대로 부풀릴 수 있는 경제 유발 효과 같은 걸 믿지 않지만 ‘어벤저스2’가 엄청난 경제 유발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마찬가지로 응수하고 싶다. 전북은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6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파악했고 우라와 레즈도 2007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시 차원에서 1,63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봤다고 공식 집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걸 그대로 다 믿을 생각은 없지만 2006년 집계를 감안해 현재의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득이 있음은 분명하다.

AFC 챔피언스리그의 실질적인 경제 효과

“홍보 효과 따져서 뭐하느냐. 실질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어야지”라고 반문할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AFC 챔피언스리그가 얼마나 돈 되는 사업인지 설명하겠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매년 네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선다. 조별예선 여섯 경기 중 세 경기를 안방에서 치르니 총 열두 차례 우리나라에서 경기가 열린다. 광저우 헝다나 우라와 레즈처럼 한국 원정에 수천에서 수만 명씩 몰려오는 경우도 있고 호주 등 먼 나라에서는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 원정 응원을 온다. 많이 줄여 통상적으로 한 경기에 원정 응원을 1천명 만 온다고 가정해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때문에 한국에 오가는 사람은 3~4월 동안만 1만 2천여 명이나 된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2010년 당시 K리그는 동아시아에 걸린 넉 장의 8강 티켓을 모두 휩쓰는 등 매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8강까지 세 팀, 결승까지 한 팀이 올라간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8경기가 더 열린다. 아무리 적게 따져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2만 명이다.

또한 상위 토너먼트로 갈수록 더 많은 원정 응원단이 한국을 찾고 특히 광저우를 비롯한 대규모 중국 응원단이 방문할 경우까지 따져본다면 그 인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난다. 참고로 한국 방문 단골팀인 우라와 레즈는 전주와 성남 등을 몇 차례 방문할 때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3~4천 명이 원정길에 올랐었고 광저우 헝다는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결승 1차전에 무려 1만 5천여 명의 원정 응원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주변 숙박시설과 유흥가, 상점 등은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 특히 지난해 광저우 팬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 안에 있는 대형 마트를 털다시피 했다. 주류와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분유와 기저귀 등도 모두 동이 났다. 이 대형 마트 진열장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뜬구름 잡는 경제 유발 효과가 아니라 이런 눈에 보이는 경제 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 무서운 건 이게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어벤져스2’가 대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불확실하다. 오히려 AFC 챔피언스리그가 진짜 노다지 아닌가.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는 물론 실질적인 경제 효과도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뛴 FC서울과 광저우 헝다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무려 전세계 46개국에 송출됐다. 중국 현지에서 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만 2,000만 명에 이르렀고 전세계적으로는 6,200만 명이 이 경기를 지켜봤다. ‘어벤져스1’을 본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2억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매년 열리는 AFC 챔피언스리그라면 ‘어벤져스’와도 충분히 견줄 만한 가치가 있다. ‘어벤져스2’ 한 번 촬영한다고 마치 세상이 바뀔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매년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AFC 챔피언스리그라는 기회를 잡는 건 어떨까.

ACL이 진짜 블록버스터다

더 긍정적인 건 이게 단순히 서울 등 수도권에만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축구단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수도권에만 몰려 있는 게 늘 아쉬웠다. 지방을 가보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도 있고 볼거리, 먹을거리도 많지만 그저 서울 명동이나 인사동 주변만을 도는 게 전부인 외국인 관광 코스가 살짝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를 연계한 관광 상품이 개발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FC 챔피언스리그를 보기 위해 외국에서 날아온 관광객이 경기만 보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울산이나 포항, 그리고 인근의 경주 등에서도 지갑을 열 수 있고 이 기회를 통해 우리의 문화도 소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올 시즌부터 AFC는 챔피언스리그 시작 전에 홈 경기 도시 홍보 영상을 틀기로 합의했다. 이 영상은 전파를 통해 아시아 각지에 중계 된다. 축구만 잘하면 자연스레 연고지 홍보가 되는 셈이다.

이미 과거에도 몇 차례 칼럼을 통해 언급했지만 AFC 챔피언스리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더 칼럼으로 소개하는 건 ‘어벤져스2’ 촬영이 마치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이자 돈줄이 될 것처럼 여기는 상황 때문이다. 이제는 AFC 챔피언스리그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 대회를 통해 브랜드 창출 효과는 물론 경제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마케팅을 하는 건 어떨까. AFC 챔피언스리그는 ‘어벤져스2’ 촬영처럼 서울 시내 곳곳의 교통을 통제하는 불편도 감수할 필요도 없고 AFC 챔피언스리그는 ‘어벤져스2’ 촬영처럼 일회성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스칼렛 요한슨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경제적 이득을 안겨 주는 진짜 블록버스터는 ‘어벤져스2’가 아니라 바로 AFC 챔피언스리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