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축구를 잘하는 팀은 참 많은 것 같다. K리그 클래식에서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전북현대도 아시아 최강이라는 광저우 헝다를 만나서는 늘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런 광저우 역시 지난 시즌 클럽월드컵에서는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에 0-3으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광저우를 원정에서 한 번 잡아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적지로 떠난 전북은 결국 어제(18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광저우와의 경기에서도 1-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전북은 이로써 지긋지긋한 광저우와의 악연을 이어가게 됐다. K리그 클래식 최강팀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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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광저우 원정에서 이동국이 골을 기록하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나갔지만 결국 주심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1-3 패배를 당해야 했다. (사진=전북현대)

정인환 골 무효 선언은 명백한 오심

하지만 이 패배는 참 찝찝하다. 후반 전북 정인환의 완벽한 득점 상황에서 주심이 이를 반칙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1-2로 전북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이 골이 득점으로 인정됐다면 아마 분위기는 완벽히 전북 쪽으로 넘어 왔을 것이다. 반칙이라는 장면을 아무리 돌려봐도 반칙 사유를 찾을 수 없어 더 분통이 터진다. 경기 후 심판진의 인터뷰는 금지돼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오만 출신 주심이 이 장면에서 반칙을 선언한 이유를 꼭 들어보고 싶다. “헤딩슛에 영혼이 깃들지 않아서”라던가 “인천 팬이라 정인환이 너무 싫어서”라는 이유 말고는 주심이 할 말이 별로 없어 보인다. 보통 판정 논란의 장면에서는 “반칙으로 보기 애매했다”고 에둘러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정인환의 골이 무효가 된 이 장면만큼은 명백한 오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골이 인정 받았다면 1-3이라는 스코어로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2-2 상황에서 주도권을 전북이 잡았을 것이고 보다 팽팽한 흐름으로 경기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근 2년 동안 안방에서 패배를 단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광저우로서는 2-2 동점 상황이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오심 이후 전북 선수들의 집중력이 무너진 것도 문제지만 경기 승패에 관여해서는 안 될 심판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부터가 애초의 문제였다. 호주에서 멜버른전을 소화하고 바로 인천으로 날아와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치른 뒤 곧장 비행기를 타고 다시 중국으로 가 이 경기를 치른 전북으로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승부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었지만 결국 심판의 올바르지 못한 판정 하나로 승점을 날리게 됐다.

하지만 ‘만약 그 골이 들어갔더라면’이라는 가정만 하고 아쉬워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은 칼럼으로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예측에도 부담이 없지만 이건 그저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만약 그 골이 인정받았더라면 전북이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라는 건 상당히 가능성이 큰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이후 어떤 변수가 또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판 판정에는 굉장히 화가 나지만 이 하나로 모든 걸 덮어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 심판에 대한 ‘깊은 빡침’과 함께 냉정하게 이 경기를 평가해 보는 건 어떨까. 나는 충분히 광저우가 이길 만한 경기였고 앞으로도 광저우는 언제나 K리그 클래식 팀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느낀 경기였다.

무섭게 성장한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광저우는 그저 엄청난 돈을 투자해 환상적인 외국인 선수 몇몇이 최전방에서 다 해결하는 구단 쯤으로 인식 됐었다. 광저우는 다리오 콘카와 무리퀴, 엘케손 등이 최전방에서 휘젓고 알아서 해결해주면 뒤에서 나머지 중국 선수들이 실수만 하지 않고 무난하게 경기를 해 손 쉽게 승리를 거머쥐는 팀이었다. 나도 이런 역할을 해봐서 잘 안다. 짜기로 유명한 ‘인천 당구’로 200점을 치는 내 친구는 나와 내기 당구에서 한 팀을 먹으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빠킹’만 하지마. 내가 다 뺄게.” 광저우가 딱 그런 팀이었다. 앞에서 ‘당구 200점을 치는’ 초특급 외국인 선수가 결정짓는 게 전부였다. 나 같은 ‘당구 50점’짜리 중국 선수들은 그저 내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속된 말로 ‘빠킹’만 안 하면 그뿐이었다. 지난 시즌 광저우는 이런 방식으로 당구 ‘죽빵’에서 아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 전북전에서 보여준 광저우는 진일보했다. 사실 중국 프로축구를 유심히 챙겨볼 기회가 없으니 더 그 차이가 확연해 보인다. 나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서울전 이후 제대로 광저우전 경기를 본 건 이번 전북전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 광저우는 더욱 강한 팀이 돼 있었다. 그저 몇몇 외국인 선수가 최전방에서 휘저어주고 중국 선수는 머릿수나 채우는 팀이 아니었다. 중국 선수들의 기량이 몰라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기량은 물론 자신감 또한 대단했다. 언제부터 중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 드리블을 했었나.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은 이제 ‘공한증’ 같은 건 잊은 모습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전북 선수들 앞에서 개인 기량을 선보이며 공격을 주도했다. 특히 전반전 내내 뻥뻥 뚫린 박원재는 아마 차이나타운만 가도 기겁을 할지 모른다.

광저우의 첫 번째 골과 두 번째 골 모두 중국 선수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두 골 모두 측면에서 장 린펑이 헤집고 이걸 가오 린이 해결했다. 세 번째 골 역시 디아만티의 크로스를 이어 받은 중국 선수 랴오 리셩의 헤딩 골이었다. 그저 특급 외국인 선수의 개인 기량으로 만들어 낸 골이 아니라 중국 선수들이 돌파와 패스, 슈팅을 통해 뽑아낸 득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광저우를 특급 외국인 선수 몇몇이 이끄는 팀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특히나 장 린펑과 가오 린의 실력은 중국 선수들 중에서도 유독 돋보였다. 과거 이들은 임유환과 조성환 등 전북 선수들에게 부상을 입혔던 거친 선수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광저우를 넘어 중국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뛸 만한 실력까지 겸비하게 됐다.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면 꼭 데려가고 싶은 선수가 장 린펑”이라고 했던 말이 립서비스는 아닌 모양이다.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이 강해진 이유

어제 선발로 나선 후앙 보웬과 펑 샤오팅은 과거 전북 소속이었던 선수들이다. 당시 이들은 전북에서 주전 선수를 보좌하는 1.5군 정도였다.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제 이들 또한 개인 기량에서도 전북의 주전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성장한 모습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수의 기량이 발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전북의 후보 선수들이 전북을 압박하는 광저우의 주전 선수로 빠른 시간 내에 도약했다는 건 짚어볼 대목이다. 이뿐 아니라 골키퍼 정청을 비롯해 순시앙과 정쯔 등도 전혀 K리그 최강이라는 전북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만약 전북과 광저우 모두 외국인 선수를 다 제외하고 붙어도 전북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만큼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은 이제 초특급 외국인 선수들과 쿵짝을 이룰 만한 성장했다.

세계적인 명장 리피 감독으로부터 오랜 시간 지도를 받은 효과가 큰 것 같다. 여기에 콘카나 무리퀴, 엘케손, 디아만티 등 초특급 외국인 선수로부터 전수 받는 개인 기량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원래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았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리면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아 교과서라도 한 번 더 펴보는 법이다. 또한 중국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광저우에서 몇 년째 발을 맞추며 좋은 호흡을 자랑하고 있고 무엇보다 과거 초특급 외국인 선수를 앞세워 이미 전북을 비롯한 K리그 클래식의 강호들을 상대해본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이들의 가장 큰 무기다. 중국 선수들이 한국 대표팀이나 K리그를 만나면 지레 꽁무니부터 빼던 건 다 옛날 얘기다. 오히려 이제는 아시아 정상의 광저우에 K리그 클래식 팀들이 도전하는 모양새가 되니 이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전북 선수들 앞에서 과감하게 개인 돌파를 선보이고 세 골 모두 자국 선수들이 뽑아내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K리그 클래식 팀들이 광저우를 만날 때 더욱 피곤할 것 같다.

반대로 전북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이동국이나 김남일 등은 이런 큰 무대를 많이 경험해 봤지만 한교원을 비롯해 이재성, 김기희, 정혁 등은 아직 챔피언스리그라는 무대가 그리 익숙지 않다. 특히 지난 시즌 인천에서 펄펄 날았고 올 시즌 전북 유니폼을 입은 뒤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교원은 이번 광저우전에서 기대 만큼의 플레이를 전혀 선보이지 못했다. ‘답 없는’ 카이오, 마르코스가 디아만티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개인 기량을 끌어 올리기를 바라기 전에 이미 자국 선수들의 활약에서도 광저우는 전북을 앞서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전북의 이번 패배가 더욱 아쉽다. 아시아 최강을 자랑한다는 광저우가 안방에서 승리하게 놔둬서는 안 됐다. 적어도 무승부는 거뒀어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자국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을 만큼 독주를 펼쳐도 K리그 최강이라는 전북을 만나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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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으로 인한 전북의 패배는 아쉽다. 하지만 다가올 리턴매치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진=전북현대)

광저우전, 오심은 화나지만 그 전에 받아들여야 할 사실

정인환의 골이 무효 처리된 게 그래서 자꾸 떠오른다. 이미 전북을 비롯한 K리그 클래식 구단을 만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개인 기량을 모두 선보이는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에게 안방에서도 전북을 만나면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해줄 좋은 기회를 결국 오심 하나로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오심 때문에 지지 않을 경기를 졌다고 화만 낼 게 아니라 이제는 광저우가 몇몇 선수에 의존한 팀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몇 백만 명이 서명한다고 오심이 번복될 리도 없고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한다고 이 경기가 전북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이 오심에 화가 난다면 다음달 2일에는 전주성에서 실력으로 갚아주면 된다. 하지만 잔뜩 독기만 품어서 될 일은 아니다. 이제는 디아만티와 무리퀴, 엘케손뿐 아니라 중국 선수들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필요하다. 우리가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게 중국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광저우의 중국 선수들은 이미 K리그 최강이라는 전북을 압도할 만큼 성장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복수의 시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