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 대표팀 경기 만큼이나 연령별 청소년 대표팀 경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선수들 특유의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성인 대표팀의 완숙한 경기와는 다르게 청소년 대표팀 경기는 풋풋한 맛이 있다. 실력 좋은 팀이 우왕좌왕 하다가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가능하고 정신력을 앞세워 약팀이 강팀을 잡는 것도 성인 대표팀보다는 청소년 대표팀 경기에서 더 확률이 높다. 체격 조건은 성인 대표팀 선수들 못지 않지만 가끔 보면 어린 티가 줄줄 나는 게 바로 청소년 축구의 매력이다. 성인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 경기는 그 매력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중동 축구 수준 말해준 시리아의 비매너 골

지난 19일 열린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U-22 챔피언십 8강 한국과 시리아의 경기에서는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한 비매너 골이 나왔다. 한국이 2-0으로 앞선 후반 종료 직전이었다. 황도연이 부상으로 쓰러지자 문창진이 공을 밖으로 걷어냈고 경기 재개 과정에서 시리아 선수가 한국에 공을 넘겨주는 게 통상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시리아의 마르케디안은 공을 한국 쪽으로 넘겨 주지 않고 곧바로 공격해 골키퍼 노동건까지 제치고 공을 골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마르케디안은 두 손을 들고 환호했고 그의 팀 동료는 공을 들고 중앙선으로 빠르게 뛰어가며 동점골을 향한 의지를 보였다. 규정상 명백한 골이었지만 이건 규정에 앞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비겁한 행동이었다.

이 행동 자체만으로도 시리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지난 2011년 수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비슷한 골을 기록한 알 사드(카타르)처럼 시리아 역시 페어플레이 정신을 어겼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성인 대표팀에서 나왔어도 분개했을 이런 비매너가 청소년 대표팀 경기에서 나왔다는 점이 더 놀랍고 황당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직은 어린 티가 줄줄 흐르면서 패기로 싸워야 하는 청소년 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아시아 축구의 수치다. 22세 이하인 이 선수들은 앞으로 10년 넘게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갈 텐데 앞으로도 이 선수들이 우리와 수 차례 맞붙는다고 생각하니 마음 같아서는 동아시아와 중동을 분리했으면 싶기도 하다. 신분증을 훔쳐서 게임을 못하게 해놓고도 떵떵 거리며 살아남아 논란을 일으킨 이들처럼 이들은 축구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다.

인종이나 지역을 차별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나는 이렇게 중동 국가들이 종종 절대 해서는 안 될 비매너 골을 서슴치 않게 넣으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어길 때마다 그들의 축구 수준을 돌아보게 된다. 그나마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등 수준 높고 지저분하지 않은 축구 문화를 구축한 국가들이 아시아 지역을 이끌었기에 망정이지 중동을 따로 분리한다거나 그들이 아시아 축구 문화를 이끌었다면 아시아 축구는 절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중동 구단 간의 경기를 보면 경기 막판 골키퍼가 장갑을 천천히 벗고 다시 축구화 끈을 고쳐 매면서 시간 끄는 건 예삿일이고 이런 비매너 골도 심심치 않게 터진다. 아무리 공을 잘 차고 돈을 앞세워 월드컵을 유치해도 이런 후진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그들의 축구가 발전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라이벌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저급해 고맙다고 해야 할까.

승부 떠나 풋풋함이 매력인 청소년 축구

나는 세계청소년대회가 끝나면 꾸준히 그 선수들을 인터뷰 해 왔다. 지금까지 축구계 여러 관계자와 선수들을 인터뷰했지만 이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을 인터뷰하러 가는 날이면 더 기분이 좋다. 대회 기간 내내 풋풋했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려주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는 게 이들은 경기 전 선수들끼리의 미팅 내용에 따라 분위기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하고 댓글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한 선수가 부상을 당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라커룸에서 다들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한다. 겉으로는 성인과 다름 없는 체격을 갖췄지만 알고 보면 다들 부모님께 투정 부리고 한참 멋 내기 좋아할 시기의 어린 선수들이다. 세계청소년대회가 끝난 뒤 이들을 인터뷰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절로 미소가 번진다. 지금이야 세상에 찌들어 신세한탄이나 하는 나이가 됐지만 나도 저렇게 풋풋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청소년 대표팀이 국제 무대에 서면 눈에 띄는 성적을 원하지만 나는 이 또래 선수들이 그저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을 쌓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앞으로 축구를 할 날이 많은 이 어린 친구들이 동료들과 끈끈한 정으로 뭉쳐 축구의 소중함을 배워간다면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사실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 선수 중 성인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르면 이들 중 대부분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청소년 대표팀의 훌륭한 성적이 성인 대표팀에서도 보장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성인 대표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우정과 패기를 누렸으면 한다. 실제로 지금껏 만나본 많은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은 “우리끼리 모여서 함께 울고 웃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고 했다.

종종 연령별 대표팀의 큰 대회를 앞두고 언론에서는 “이번 대표팀은 스타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그들만의 더 큰 장점 아닐까. 이 어린 선수 중 어느 한 명만이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고 나머지 선수들이 소외되는 것 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뭉쳐 패기로 승부하는 게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U-20 청소년월드컵이 끝난 뒤 만난 김경중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회를 앞두고 일부에서는 이번 대표팀에 스타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나라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모두가 스타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히려 동기유발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23세 이하가 주축이 된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놓친 뒤 이란과 3·4위전을 치른 구자철도 이런 말을 했다. “금메달이 대체 뭐기에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오늘 경기는 축구화를 신은 이후 가장 행복했습니다.” 연령별 대표팀은 이거면 충분하다.

‘비매너’ 시리아를 통해 교훈을 얻자

연령별 대표팀 경기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성적에 대한 압박을 떠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우정을 쌓고 거기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연령별 대표팀 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성인 선수들이 저질러도 지탄 받을 행동을 시리아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은 서슴 없이 저질렀다. 논란이 될 걸 잘 알면서도 그런 비매너 골을 넣은 선수가 반성하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득점 후 세리머니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는 분노를 넘어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패기를 앞세워 싸우고 경기를 즐겨야 할 어린 선수가 그저 한 골에 눈이 멀어 그런 지탄 받을 행동을 하는 시리아 축구계는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골을 넣은 선수의 잘못도 크지만 이렇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어기고라도 어떻게든 골만 넣으면 된다고 가르친 그 나라 축구계 전체의 잘못이다. 이런 비매너 골이 계속되는 한 중동 축구는 동아시아 축구를 이길 수가 없다.

지금 이 대회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지난 2011년 U-20 청소년월드컵에 나섰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때 우리 어린 선수들은 부상으로 코뼈가 부러져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황도연을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경기부터 벤치에 황도연 유니폼을 걸어 놓고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뒤 이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이 어린 선수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코뼈 수술을 받고 아직 붕대도 풀지 못한 황도연이었다. 그들은 공항에서 뜨겁게 포옹했다. 이게 바로 어린 선수들이 보여줘야 할 모습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은 내팽개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비매너 골을 넣는 시리아 선수들보다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보여줘야 할 바른 자세를 갖춘 우리 선수들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 우리의 이 선수들이 지금처럼 동료를 챙기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잘 지켜 앞으로도 한국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를 잘 이끌어줬으면 한다. 비매너를 일삼는 시리아전을 계기로 우리는 절대 그런 추악한 모습을 보이지는 말자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