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화요일이다. 아무 날도 아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가나 축구선수 스티븐 아피아가 태어난 날이고 시인 김소월이 하늘로 떠난 날 정도다. 오늘은 프로축구연맹에서 ‘K리그와 함께하는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 활동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냥 1년 365일 중 하루이고 그냥 화요일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래도 혹시 크리스마스 이브를 떠올릴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오늘은 특별한 칼럼을 준비했다. 우리 이런 날 괜히 밖에 나가 커플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말고 축구와 함께 보내자. 축구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를 들어볼 테니 애써 위안 삼으며 케빈과 함께 씩씩한 하루를 보내자.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다 자기 암시다.

새벽에도 함께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애인과 새벽까지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은 애인이 학교 MT가 있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는 날이 아니면 흔치 않다. 내가 없는 돈을 털어 데킬라까지 사줬는데 애인이 부모님께 혼난다면서 밤 11시 50분에 택시 할증 붙기 전에 집에 간다고 하면 이보다 화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축구는 우리와 새벽에도 늘 함께 한다. 특히 마음이 적적한 주말 새벽에는 마치 김치찌개를 보글 보글 끓여 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아내처럼 텔레비전 안에서 축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우리는 새벽에 찌질하게 “택시비 줄테니까 와”라는 ‘카톡’ 메시지를 여러 명에게 단체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새벽에도 축구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새벽에 만날 수 있는 축구가 애인보다 못한 이유가 뭐가 있나. 서울 논현동에 혼자 살면서 엉덩이에 ‘PINK’라는 글자가 써 있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을 만나기 전까지는 함께 외박이 가능한 축구가 훨씬 낫다.

몸매를 따져도 누가 뭐라고 안 한다

오늘도 회사에서 몰래 치어리더 기사를 클릭하는 당신. 지하철에서 강명호 기자가 오늘은 어떤 기사를 올렸는지 몰래 클릭하는 당신. 당당하지 못하다는 거 다 안다. 뒤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지 슬쩍 눈치를 보는 거 다 안다. 이성의 몸매에 눈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티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다. ‘몸매’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축구에서는 이 ‘몸매’라는 단어를 ‘피지컬’이라는 말로 아주 멋지게 바꿔 부른다. 괜히 이성의 몸매 따지다가 손가락질 받지 말고 축구장으로 오라. 이 칼럼을 읽는 이가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연예인의 복근 사진을 찾아보면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겠지만 임상협의 복근을 감상하는 건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당당해질 수 있다. 배나온 애인 뭐하러 만나나. 여자라면 임상협을 보면서, 남자라면 건강미 넘치고 귀여운 이민아를 보면서 행복하게 살자.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다

애인한테 버럭 소리를 지른다면 아마 상대가 삐치거나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언제나 사랑은 나지막이 속삭여야 한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부랴 부랴 택시를 타고 제 시간에 맞춰 약속 당소에 도착했는데 애인이 한 시간이나 늦는다고 해도 절대 화를 내거나 그분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다. 경기장에서 주위가 떠나가라 소리를 쳐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서포터스석에서 이렇게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면 열정적인 관중으로 주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것이다. 축구장에 가면 그동안 억울려 왔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만큼 크게 소리쳐도 된다. 아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이 골을 넣는 순간 아무리 큰 함성을 질러도 당신의 목소리가 폭죽 소리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애인 사귀어서 뭐하나. 마음껏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데. 그러지 말고 축구장에서 소리나 마음껏 지르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애인이 있는데도 다른 이성을 만나는 건 아주 못된 짓이다. 이런 이들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성비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혼자인 거다. 또한 애인을 놔두고 다른 이성을 몰래 만나는 건 상당히 죄책감이 든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스트레스보다 이런 죄책감이 더 큰 법이다. 하지만 축구는 한 눈을 판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 경기를 보고 다른 경기를 또 봐도 이건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다. 어느 한 팀에 목숨을 거는 팬들도 있지만 가볍게 여러 팀의 경기를 즐긴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한 선수에게만 순정을 다 바칠 필요도 없다. 김신욱을 좋아하면서 이동국을 좋아해도 되고 리오넬 메시를 좋아하면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같이 좋아해도 된다. 꼭 어느 한 명에게만 ‘올인’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죄책감을 느껴야하는 연애 같은 몹쓸 짓을 왜 하려고 하나. 축구는 누구에게나 여러 번 사랑할 기회를 준다.

커플티를 여럿이서 입을 수 있다

놀이공원에서 커플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커플이 부러운가. 아마 이게 평생 소원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티셔츠를 선물한 뒤 몰래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한 장 더 사 입고 다니면서 커플티라고 ‘정신승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커플티를 더 이상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축구장에 가면 당신과 똑같은 옷을 맞춰 입은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커플티 입고 애인과 놀이공원에 가는 게 북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테니 그 전까지는 축구장에서 수백, 수천 명과 함께 커플티, 아니 커플 유니폼을 입고 소속감을 느껴보자.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당신만 유니폼 한 벌 사 입으면 바로 그 무리에서 어울릴 수 있다. 이미 당신 같은 사람 수백 명이 커플 유니폼을 장만해 놓았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남들이 연애하는 동영상을 보는 건 당당하지 못하다. 아마 지금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컴퓨터에도 남들이 연애하는 동영상이 있겠지만 다들 ‘incoming’ 폴더에 꼭꼭 숨겨 놓았을 것이다. 아들을 둔 부모님이 이 칼럼을 보고 있다면 당신 아들 컴퓨터의 ‘EBS_인강.avi’가 진짜 인터넷 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당당하게 남들이 연애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알싸’에 가면 남들이 축구하는 동영상이 수도 없이 올라와 있고 이걸 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스포츠를 사랑하는 굉장히 건전한 사람으로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또한 남들 축구하는 동영상에는 모자이크도 없다. 연애를 멀리하면 이렇게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연애라는 몹쓸 짓을 멀리하고 축구를 가까이하자. ‘야동보다 축동’이다.

명품백을 사달라고 눈치 주지 않는다

“혜정이 알지? 걔 남자친구는 이번에 혜정이한테 가방 선물해 줬대.” 이 말은 곧 “나도 명품백이 필요하다”는 여자들만의 언어다. 내 몸이 ‘이스트팩’을 기억한다고, 내 몸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짧게 매는 가방을 기억한다고 눈치 없이 책가방을 선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축구는 누군가 나에게 명품백 선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몇 만원 짜리 유니폼 한 벌과 시즌권 하나면 1년을 날 수 있다. 왜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한 번에 수백 만원씩 써야 하나. 이 돈이면 우리는 가난한 시·도민구단의 재정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다. 또한 축구장에 가면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세상 전부를 얻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축구는 술을 마신다고 애인처럼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명품백 대신 ‘비닐 봉다리’를 들고도 당당하게 가로수길을 활보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날 수 없다면 그냥 축구와 연애하자.

애인보다 축구가 훨씬 낫다고 정신승리하며 그냥 이 화요일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보내자. 괜히 이런 날 외로운 친구들과 홍대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 예쁜 여성이 있어 말 걸었는데 레슬링 선수 귀 모양을 한 남자친구가 등장해서 한 대 맞지 말고 축구와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자.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안 생긴다. 더군다나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축구 칼럼이나 쓰고 있는 나도 안 생기고 이런 걸 보고 있는 당신은 더더욱 안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