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비슷하다. 양 팀 팬들의 열띤 응원 열기와 지지 않으려는 두 팀 선수들의 경쟁심, 그리고 각종 사건 사고가 늘 슈퍼매치의 이슈였다. 하지만 이번 슈퍼매치는 조금 달랐다. 응원 열기와 경쟁심, 그리고 지난 경기 퇴장을 속죄하는 정대세의 큰절 세리머니까지 이전 슈퍼매치에서 늘 볼 수 있었던 볼거리 외에도 또 다른 감동이 있던 경기였다. 나는 바로 어제(9일) 열린 슈퍼매치가 앞으로 이 두 팀 간의 경기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훌륭한 명품 라이벌전으로 도약할 큰 의미를 지닌 승부였다고 생각한다.

오장은과 김진규, 감동의 슈퍼매치

오장은과 김진규가 바로 이야기의 오늘의 주인공이다. 경기 내내 투혼을 선보였던 이 둘은 후반 막판 큰 충돌을 겪었다. 서로 공을 쫓으려다가 머리끼리 부딪히는 아찔한 순간이 펼쳐진 것이다.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충격에 민감하고 예민한 곳이 바로 머리다. 하지만 이 둘은 단 한 번의 볼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급한 상황에서 머리부터 들이미는 건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장은과 김진규는 공을 따내기 위해 상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헤딩을 하다가 결국 피를 줄줄 흘리고 말았다. 이 장면 자체로도 왜 이 경기가 슈퍼매치인지 잘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슈퍼매치의 감동은 이후부터였다. 오장은과 김진규는 피를 흘리면서도 "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2-0으로 수원이 앞선 상황에서 경기는 막판으로 흐르고 있어 사실상 결과에는 큰 영향이 없는 시간이었지만 이 둘의 의지는 대단했다. 특히 김진규보다 출혈이 더 심했던 오장은은 의료진이 벤치에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코치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뛸게요. 어서 붕대를 감아주세요." 결국 코치진의 만류로 오장은 대신 조지훈이 교체 투입됐지만 그의 투혼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장은과 함께 충돌한 뒤 마찬가지로 출혈이 심했던 김진규 역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눈물 날 만큼 대단한 혈전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과 부상을 당하고도 뛰겠다는 열정만으로도 이번 슈퍼매치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후 장면은 지금까지 슈퍼매치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운을 남겼다. 수원 벤치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던 오장은에게 김진규가 다가가 미안한 마음을 전한 것이다. "괜찮아? 다치게 해서 미안해." 김진규는 오장은의 어깨를 두드렸고 오장은은 그런 김진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늘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수원과 서울의 이런 모습은 참 익숙하진 않지만 보기 좋았다. 김진규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신의 SNS를 통해 부상을 당하고 결국 교체 아웃된 오장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 감동의 슈퍼매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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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은의 부상을 걱정해주는 김진규의 모습.

슈퍼매치의 수준을 끌어 올리다

사실 이 둘은 연령대별 대표팀을 함께 경험한 오랜 친구이면서도 지난해 그라운드에서 격하게 충돌했던 관계다. 지난해 6월 FA컵 16강 경기에서 이 둘은 서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김진규가 다소 거친 태클을 하고 오장은의 머리를 쓰다듬자 오장은이 일어나 김진규를 밀쳤고 김진규가 오장은을 더 세게 밀치면서 양 팀 선수들이 대거 그라운드에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싸움으로 박현범과 아디 또한 격하게 부딪혔고 결국 김진규는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전 오장은을 만난 자리에서 "슈퍼매치를 앞두고 있는데 김진규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진규하고 별로 안 친해요. 허허." 장난이었겠지만 지난해 충돌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나도 억지로 웃었다.

이 둘은 1년 만에 많이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더 많이 다친 오장은은 김진규가 얄미웠을 수도 있고 김진규는 이미 사실상 팀의 패배가 굳어진 상황에서 다친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 따위는 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손을 꼭 맞잡았다. 이뿐 아니라 차두리는 염기훈이 공을 빼앗으려 하다 반칙을 범해 넘어진 뒤 감정적으로 대할 수도 있었지만 웃으며 염기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았다. 염기훈 역시 차두리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웃었다. 지금껏 슈퍼매치에서는 볼 수 없던 희귀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의 슈퍼매치가 경쟁심과 열정만을 강요했다면 이번 슈퍼매치는 이런 경쟁심과 열정은 물론 여기에 동료의식까지 갖춘 훈훈한 승부였다. 오장은과 김진규는 이 슈퍼매치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주역이었다.

나는 늘 K리그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들끼리 그라운드에서 충돌하는 장면 또한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내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라운드에서 뛸 때만의 이야기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라운드 밖에서 주먹다툼을 벌이거나 상대를 인신공격하는 행위는 건전한 라이벌이 아니다. 90분 동안 박터지게 '축구로' 싸우고 그 외적으로는 동료애를 발휘하는 게 진정 스포츠가 가야할 길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역시 2011년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바르셀로나의 에릭 아비달을 위해 바르셀로나의 숙적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올림피크 리옹과의 그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아비달 힘내(Amino Abidal)'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기를 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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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와 염기훈은 치열한 공 다툼을 벌인 뒤 이렇게 손을 맞잡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슈퍼매치는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 이슈의 중심은 늘 '충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충돌'이라는 이슈에 '동료애'라는 감동까지 더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앙숙 관계이면서도 한 선수를 위해 같은 마음을 보여준 것처럼 수원과 서울도 충분히 더 발전적이고 건전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다음에 또 오장은과 김진규가 그라운드에서 만나 피를 보며 충돌하거나 서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서로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팬들도 수위만 높지 않다면 얼마든 위트 있게 서로를 깎아내리는 건 환영이다.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서로 물어 뜯고 싸우고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K리그에서 함께 뛰는 동료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다.

사실 나는 슈퍼매치를 보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양 팀 팬들의 응원전이 대단하고 선수들의 투지도 대단하지만 경기 내용 자체는 늘 슈퍼매치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경기력으로 놓고 보면 전북-포항전이 더 수준이 높다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슈퍼매치는 소문난 잔치에도 먹을 게 많다는 걸 보여준 경기였다. 오장은은 이날 전반 막판 두 번이나 몸을 날리는 수비로 서울 공격을 차단했고 후반 김진규와 충돌해 피를 줄줄 흘리며 결국 50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이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다시 뛰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김진규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먼저 상대방의 부상을 걱정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런 감동적이고 멋진 장면을 연출하면서 슈퍼매치는 더 높은 수준을 향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슈를 만들긴 쉽지만 감동을 더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 슈퍼매치는 이슈에 감동까지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