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메일로 충격적인 제보 하나를 받았다. 2013 전국중등축구리그 인천 지역 예선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부조작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제보는 구체적이었다. 제물포중의 한 선수가 부평동중과의 경기가 끝난 뒤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이 그 증거였다. 이 선수는 “승부조작 재밌네”라고 글을 올린 뒤 또래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과 구체적인 승부조작 내용에 대해 댓글로 이야기를 나눴다. 승부조작이 자행된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이 사실을 웃으며 말하는 어린 선수의 모습에서 얼마나 우리의 축구 유망주들이 승부조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가 더 충격적이었다.

알고 보니 이 캡쳐본은 각종 축구 커뮤니티에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한국 축구에서 가장 무서운 승부조작이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단 한 번도 보도되지 않은 채 어린 선수들의 승부조작으로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사자들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눠 이 승부조작 의혹이 사실인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오늘 글은 내 주장을 담은 ‘칼럼’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려 한다. 이미 각종 축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이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려 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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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중과 부평동중의 경기가 끝난 뒤 한 선수(빨간색 네모)가 친구들에게 승부조작 사실을 자랑스럽게 털어 놓으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제물포중과 부평동중의 경기에선 무슨 일이?

중등 축구리그 인천 지역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승부조작 의혹을 사고 있는 제물포중학교는 11개 팀 중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제물포중은 19경기에서 단 두 번밖에 패하지 않은 강팀으로 13승 4무 2패 56득점 16실점 중이었다. 이 대회는 3위까지 왕중왕전에 자동으로 진출하고 4위는 다른 지역 예선 4위 팀과 승점을 따져 와일드카드로 왕중왕전 진출을 겨루는 방식이다. 이 바로 밑에서 부평동중과 정왕중이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정왕중은 13승 3무 3패 승점 42점을 기록하고 4위에 올라 있었고 부평동중은 12승 3무 4패로 승점 39점으로 5위를 기록 중이었다. 마지막 한 경기에 따라 3위 제물포중에서 5위 정왕중까지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3위를 차지하면 왕중왕전에 직행하지만 4위를 기록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과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는 경기 북서 지역 예선 백마중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4위 백마중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5위 백양중과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백마중은 마지막 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13승 1무 5패 승점 40점을 기록 중이었다. 만약 백마중이 이기고 제물포중이 패할 경우 백마중이 제물포중을 밀어내고 와일드카드로 왕중왕전에 나갈 수 있었다. 만약 백마중과 승점이 43점으로 같아져도 대회 규정상 승점 다음으로 따지는 경고 횟수에서 제물포중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대회는 페어플레이를 준수하기 위해 골득실보다 경고 횟수를 순위 반영에 더 먼저 따진다. 이들과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던 경기 북서 예선 백마중과 백양중의 마지막 경기는 제물포중과 부평동중의 경기가 치러지기 1시간 10분 전에 열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물포중은 마지막 경기에서 부평동중에 0-1로 패했지만 인천 지역 예선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광성중이 정왕중을 1-0으로 잡아 주는 바람에 3위로 왕중왕전 진출에 성공했다. 또한 와일드카드를 따져야 하는 경기 북서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백마중이 백양중에 패하는 바람에 제물포중을 잡고 승점 42점이 된 부평동중이 극적으로 와일드카드를 얻어 왕중왕전에 나가게 됐다. 그런데 제물포중이 부평동중에 0-1로 패한 경기가 끝난 뒤 한 제물포중 선수가 ‘카카오스토리’에 “승부조작 재밌네”라는 글을 올려 승부조작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지고도 상대와 사이 좋게 왕중왕전에 올라갔다는 점에 많은 이들은 주목했고 선수까지 승부조작을 인정했으니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더군다나 제물포중 김용삼 감독과 부평동중 신호철 감독은 부평고 동기라는 사실까지 알려져 의혹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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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대교눈높이 중등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는 제물포중 선수들의 모습. 이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김용삼 감독 "승부조작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제물포중 김용삼 감독은 승부조작 이야기가 나오자 펄쩍 뛰었다. “승부조작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도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부평동중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경고까지 받아 와일드카드도 위험했다. 그런데 어떻게 짜고 고스톱을 치나. 대한축구협회에서 직원이 직접 와 경기도 다 관전했다. 한 학생이 올린 글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혔는데 정말 사람이 이렇게 억울해서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터넷에는 이미 승부조작이 기정사실처럼 쫙 퍼졌는데 그 어떤 기자도 연락을 해온 적이 없다. 이렇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처음 승부조작을 인정했던 A선수의 진술은 무척 구체적이었다. 그는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우리가 부평동중 올라가게 하려고 그냥 한 골 먹고 공격진은 2학년으로 바꾸고 수비에서 공 잡으면 차 내기만 했어. 0-1로 져줬어. 조작. 어차피 우린 올라갔으니까. 감독님이 나한테 공격에서 갑자기 수비만 하라고 했어.” 하지만 A선수는 이후 말을 싹 바꿨다. 직접 나눈 대화에서 A선수는 “모든 게 자신의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이 부평동중에 많아요. 그런데 걔네한테 져서 쪽팔리고 화가 나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글을 올렸어요. 따로 승부조작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정상적으로 한 경기였어요.”

김용삼 감독은 “이 학생을 크게 꾸짖었다”고 했다. “‘이 학교에 1998년에 와 15년 동안 있으면서 아주 조그마한 자존심과 명예 하나로 살았는데 네가 그런 글을 올리는 바람에 나는 그것마저 다 잃어버렸다’고 했다”는 그는 “그 제자도 제자지만 확인도 안 하고 중학교 3학년 애가 화가 나 올린 글을 캡쳐해 소문을 유포한 사람도 의식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어린 선수 실명까지 다 공개됐다. 정왕중 학부형이 한 일로 알고 있는데 학교와 상의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애들 공 잘 차라는 얘기는 안 해도 인성은 제대로 가르치려는 지도자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가 애들한테 ‘골 먹어줘라’, ‘져 줘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지극히 정상적인 경기였고 언제든 우리 아이들과 일대일 면담도 주선해 줄수 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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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에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제물포중 김용삼 감독. 그는 이번 승부조작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의혹' 협회가 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승부조작도 조작이지만 거짓말까지 더해지면 최성국의 사례처럼 그때는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다. 진심으로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나.” 그러자 김용삼 감독은 단언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경기였다. 나의 모든 이야기를 다 녹음해도 좋다. 나는 이 학교에 있는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승부조작을 지시한 적이 없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성을 가장 중요시 한다. 축구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오랜 시간 노력해야 되는 일인데 체력 운동을 하고 힘든 상황에서 이걸 이겨낼 수 있는 게 인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승부조작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둔다. 내 모든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이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공은 대한축구협회로 넘어갔다. 정말 믿기 싫지만 만약 승부조작이 사실이라면 이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하고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이들의 이 억울한 누명을 풀어줘야 한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 의혹이 확산된 이상 협회가 나서야 한다. 또한 한 어린 선수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뒤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좋은 선수로 커 나가는 해프닝에 불과한지도 반드시 풀어야 한다. 더 나아가 유소년 축구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승부조작 의혹도 말끔히 해결해야 한다. 이번 의혹을 떠나 리그를 거친 뒤 왕중왕전을 치르는 현 유소년 리그 시스템상에서 매년 왕중왕전 진출을 놓고 승부조작 의혹은 불거지고 있다. 사실이건 아니건 어린 선수들이 꿈을 위해 뛰는 그라운드에서 이 불결한 단어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승부조작 재밌다"는 말을 장난으로라도 하는 풍토는 사라지길 바란다. 우리는 진실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