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5일) 또 다시 성남일화를 사랑하는 2백여 명이 성남탄천종합운동장에 모였다. 이들은 성남 연고이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결의문을 낭독하며 성남 축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 역시 성남이 성남에 남아 오랜 시간 멋진 축구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성남일화가 마주했던 찬란한 역사를 돌이켜 보려 한다. 승패를 떠나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던 성남일화의 역사적인 일곱 차례 역사적인 순간을 꼽아봤다.

7위. 2002년 5월 26일 성남탄천종합운동장
성남일화 VS 폴란드 (1-2패)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전을 준비하던 폴란드 대표팀은 성남일화와 평가전을 가졌다. 개막 직전 열린 경기였던 탓에 폴란드는 평가전임에도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가동했다. 세계적인 골키퍼 예지 두데크(리버풀)를 비롯해 토마시 종사(페예노르트), 토마시 하이토, 토마시 바우도흐(이상 샬케04), 야체크 봉크(랑스), 라도스와프 카우즈니(코트부스) 등이 모두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초반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한 건 성남이었다. 성남 김대의는 전반 10분 만에 골키퍼 두데크까지 제치고 슈팅을 날리는 등 위협적인 몸놀림을 선보였다. 이후 폴란드가 먼저 골을 뽑아냈지만 성남의 공격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김상식과 박남열의 슈팅도 두데크가 간신히 쳐냈다. 대표팀 엔트리 탈락에 대한 시위였는지 김대의는 시종일관 빠른 발로 폴란드 수비를 괴롭혔다.

후반 들어 성남은 한 골을 더 허용했지만 후반 29분 폴란드 진영 골에어리어 바깥에서 박강조가 30여m 통렬한 중거리슛으로 천금 같은 만회골을 뽑아냈다. 세계최고의 골키퍼 두데크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한 완벽한 골이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폴란드 에이스 엠마뉘엘 올리사데베(파나티나이코스)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고 폴란드 언론에서는 경기가 끝난 뒤 “내용에서는 성남에 완패했다. 특히 속도에서는 성남에 완전히 밀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평가전이라 승패에 큰 무게를 두긴 어려운 경기였지만 K리그 구단이 이렇게 월드컵에 나선 유럽 축구 대표팀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성남 전력의 절반이라는 샤샤는 감기 몸살로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샤샤가 나왔다면 폴란드는 ‘피떡’이 됐을 지도 모른다.

6위. 2007년 7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성남일화 VS 볼턴원더러스 (1-1 무승부)

피스컵 2007 개막전 성남과 프리미어리그 볼턴과의 경기. 시즌 종료 후 두 달 만에 처음 공식 경기를 갖는 볼턴의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성남 역시 전력이 100%는 아니었다. 김두현과 김용대. 김상식, 손대호 등 주전 선수가 무려 다섯 명이나 아시안컵 대표팀에 차출돼 전력의 상당 부분을 잃고 경기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볼턴은 케빈 데이비스와 니콜라스 아넬카, 유시 야스켈라이넨, 케빈 놀란, 이반 캄포 등 주전급 선수들을 모두 소집한 상황이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볼턴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성남은 이따마르와 모따, 한동원, 김민호를 공격진에 배치했다. 성남과 볼턴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무려 4만 8천여 관중이 몰려들었다.

0-0으로 팽팽하던 경기는 후반 33분 볼턴 쪽으로 기울었다. 후방에서 길게 찔러준 공을 성남 수비가 걷어내지 못하자 케빈 놀란이 오른발 슈팅으로 성남 골문을 가른 것이다. 이후 성남은 동점골을 위해 파상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후반 종료 직전 박광민의 돌파에 이은 남기일의 슈팅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프리미어리그 팀을 상대로 대등한 승부를 펼친 성남은 오히려 동점골 이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며 관중의 박수를 받았다. 결국 경기는 1-1로 막을 내렸다. 이뿐 아니라 성남은 2003년 피스컵에서는 베식타스를 2-1로 제압했고 리옹에는 비록 0-1로 패했지만 선전하기도 했다. 2005년 피스컵 때는 에인트호벤과 리옹에 각각 1-2로 패했음에도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고 2009년 피스컵 당시 세비야 원정 경기에서도 0-0 무승부를 거두며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피스컵에서는 에벨톤의 결승골에 힘입어 선덜랜드를 1-0으로 격파하기도 했다.

5위. 2006년 11월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성남일화 VS 수원블루윙즈 (2-1 승)

2006년 전기리그에서 10승 2무 1패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성남은 후기리그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나 모따가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은 뒤 수술과 재활 때문에 무려 넉 달 간이나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성남의 부진은 깊어졌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얻었지만 좋지 않은 분위기 탓에 성남의 도약을 기대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서울을 1-0으로 제압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후기리그 우승팀 수원은 무척이나 강했다. 그렇게 2006년 11월 19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수원과 마주한 성남은 만원 관중 앞에서 경기 막판 우성용의 결승골을 잘 지켜 1-0 승리를 거두고 2차전이 열리는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성남은 모따와 이따마르, 네아가를 공격 일선에 배치하고 김두현을 바로 그 밑에 포진시켰다. 4만 여 수원 팬들의 함성을 잠재운 건 역시 그중에서도 단연 모따였다. 전반 25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왼발 아웃사이드 슈팅으로 첫 골을 뽑아낸 모따는 후반 20분 이따마르가 오른쪽 측면을 뚫고 올린 패스를 네아가가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빗맞는 순간 가볍게 차 넣어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후 수원은 후반 30분 송종국의 크로스를 실바가 헤딩슛으로 연결했지만 더 이상 추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성남은 1,2차전 합계 3-1로 수원을 제압하고 역사적인 7번째 K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현재 성남의 가슴에 달린 일곱 개의 별은 이렇게 2006년 완성됐다. K리그에서 성남보다 많은 별을 가슴에 단 팀은 단 한 팀도 없다.

4위. 2004년 12월 1일 성남모란종합운동장
성남일화 VS 알 이티하드 (0-5 패)

성남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원정경기에서 심판의 편파 판정과 홈 텃세를 딛고 알 이티하드(사우디)에 3-1 완벽한 승리를 따냈다. 안방에서 0-2로 지더라도 성남이 아시아 정상에 등극하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김도훈과 두두, 이성남이 이끄는 공격진은 최강이었고 안방에서 완패한 알 이티하드는 감독까지 경질 당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성남의 우승은 당연해 보였다. 성남모란종합운동장에는 이례적으로 성남이 8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12월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2만 5천여 관중이 모여들었다. 모란종합운동장은 꽉 들어찼다.

전반 17분 알 이티하드가 첫 골을 뽑을 때만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기형의 강력한 슈팅이 골문을 외면하는 등 초조해진 성남은 전반 45분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하더니 후반 들어 연거푸 세 골이나 내주고 무너졌다. 0-5. 믿을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던 순간 성남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고 구단 직원은 준비해 놓은 샴페인과 우승 축하 기념 현수막을 다시 창고로 돌려보냈다. 이 참패 이틀 뒤 차경복 감독은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크게 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차경복 감독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경기를 두고 두고 아쉬워했다. 승리와 우승만이 아니라 성남의 이 대패도 반드시 성남 축구 역사에서 기억되어야 한다.

3위. 2010년 12월 16일 UAE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성남일화 VS 인터밀란 (0-3 패)

비록 패하긴 했지만 성남의 위대한 도전이 빛났던 경기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 나선 성남은 4강에서 유럽 챔피언 인터밀란을 만났다. 세리에A 우승만 18차례를 기록한 100년 전통의 이탈리아 축구명가 인터밀란은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네덜란드), 사뮈엘 에토오(카메룬), 마이콩, 줄리우 세자르(이상 브라질), 디에고 밀리토(아르헨티나) 등을 앞세워 이전 시즌 세리에A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FA컵(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휩쓸며 이탈리아 클럽 팀 사상 처음으로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유럽 최강팀이었다. 성남 신태용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기적은 1% 가능성만으로도 일어난다”며 전의를 다졌다.

역시 인터밀란은 강했다. 전반 3분 만에 데얀 스탄코비치가 골을 뽑아냈고 전반 32분과 후반 28분 하비에르 자네티와 디에고 밀리토의 연속골이 터지면서 성남은 0-3으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성남도 90분 내내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펼친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인터밀란에 맞받아쳤다. 전반 34분에는 라돈치치의 통렬한 헤딩 슈팅이 골키퍼 세자르의 선방에 막혔고 프리킥에 이은 조병국의 헤딩 슈팅도 골문을 살짝 빗나갔다. 결국 성남은 패했지만 라파엘 베니테즈 인터밀란 감독은 성남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성남 선수들은 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였다. 또한 훌륭한 기술도 가지고 있다. 비록 오늘 경기가 힘들었겠지만 신태용 감독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성남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2위. 2003년 10월 25일
성남일화 K리그 3연패

2003년은 성남일화는 물론 K리그에도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 25승 7무 5패로 독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성남은 2위 울산이 안양과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무려 7경기나 남은 상태에서 이뤄낸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이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최초로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일화가 성남을 연고로 해 얻어낸 또 한 번의 K리그 3연패였다. 신태용과 김도훈, 샤샤, 이성남, 이기형, 김대의, 김현수 등 어마어마한 선수를 보유했던 당시 성남은 결국 리그 2위 울산에 승점 18점이나 앞선 싱거운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개인상도 성남이 독식했다. 도도와 마그노, 이따마르, 에드밀손 등 외국인 선수가 특출난 활약을 선보였지만 득점왕은 김도훈(28골)의 몫이었고 도움 랭킹 10위 안에는 네 명의 성남 선수들이 이름을 올릴 만큼 공격 루트도 다양했다. 베스트11 중에도 김도훈과 신태용, 이성남, 김현수 등 성남 선수가 네 명이나 뽑혔다. 성남의 당시 리그 3연패 이후 지금까지 리그 3연패를 일궈낸 팀은 단 한 팀도 없었다. 차경복 감독은 축구 인생을 정리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늦은 나이에 성남에서 K리그 3연패를 달성한 일이 50년 넘는 축구인생에 가장 기쁜 일이었다.” 성남이 독주를 해 K리그가 재미없어졌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연맹은 이듬해부터 결국 전·후기 방식과 플레이오프를 도입하며 성남 독주를 견제하기도 했다. 리그 제도까지 바꾼 성남의 압도적인 경기력이었다.

1위. 2010년 11월 13일 도쿄국립경기장
성남일화 VS 조바한 (3-1 승)

2010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성남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과거에 비하면 현저히 약해진 선수층은 물론 라돈치치가 경고누적으로, 홍철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결승전 상대는 중동의 신흥 강호 조바한(이란)이었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칼라트바리의 위협적인 헤딩슛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성남은 이후 정성룡이 골문을 비우고 나갔다가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또 한 번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성남은 이후 침착했다. 전반 29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사샤가 선취골을 기록하며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성남은 후반 8분 조병국의 헤딩슛으로 2-0으로 앞서 나갔다. 이후 후반 22분 조바한 칼라트바리에게 한 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8분 몰리나가 때린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나오자 김철호가 이를 차 넣어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3-1. 성남이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순간 성남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뜨겁게 포옹하며 이 역사적인 현장을 즐겼고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헹가레를 받으며 감격의 어퍼컷을 날렸다. 1996년 선수로 이 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던 신태용 감독은 지도자로 다시 한 번 우승을 경험한 아시아 유일의 인물이 됐고 이 대회 활약 덕분에 사샤는 AFC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남 축구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때일 것이다.

성남은 K리그의 자랑을 넘어 아시아의 자랑이다. 일곱 개의 별을 가슴에 단 성남은 늘 더 큰 무대를 향해 도전했다. 유럽 클럽과의 경기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쓰디쓴 패배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섰다. 오늘 나는 성남일화의 역사적인 순간 일곱 가지를 꼽았는데 그 여덟 번 째 역사적인 순간은 지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훗날 모기업의 지원이 끊겨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을 팬들과 성남시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여덟 번 째 역사적인 순간을 소원한다. 천마는 가슴에 단 일곱 개의 별이 너무나도 무거워 안산까지 날아갈 수 없다. 축구로 우리를 울리고 웃긴 성남일화의 여덟 번 째 드라마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