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뽕'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국수주의를 비판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K리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이들까지도 '국뽕'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국뽕'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백 번 양보해 만약 '국뽕'이 진정 존재한다면 그건 국내 축구에 대한 인식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으로 대표팀 경기에만 자부심을 갖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이들이 아닐까. 한국 사람이 우리나라 축구 리그에 자부심을 갖는 당연한 일이 오히려 놀림감이 되는 이 시점에서 오늘은 막연하게 ‘국뽕’을 맞아 K리그를 찬양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K리그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진짜 11가지 이유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자다가 새벽에 열린 FC서울과 알 아흘리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을 후반전부터 봐서 이 칼럼으로 대신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1.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팀은 K리그에 있다

지금은 4대 구기 종목을 비롯해 이 땅에 많은 프로스포츠가 운영되고 있고 그 팀 수도 무척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스포츠 팀은 바로 축구에 있다. 바로 할렐루야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4년 전 프로스포츠라는 말이 생소하던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된 최순영 신동아 그룹회장은 공약으로 내걸었던 프로팀 창단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1980년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구단인 할렐루야가 탄생했다.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기도 전에 이미 프로팀이 존재했던 것이다. 여자친구도 없는데 여자친구 생기면 선물할 명품 백을 이미 준비해 놓았던 셈이다.

2.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는 K리그다

유럽에서나 하던 프로축구를 아시아 최초로 출범한 게 바로 우리다. 1968년 홍콩이 아시아 최초의 세미프로축구를 5개 팀으로 출범시켰지만 정식 프로리그는 아니었다. 1983년 할렐루야와 유공, 대우, 포철 등 프로 4개 팀과 아마추어 국민은행 등 5개 팀으로 시작한 ‘수퍼리그’가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였다. 일본이 한국 축구를 잡기 위해 1993년 J리그를 출범했고 중국은 199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프로축구리그를 출범시켰으니 K리그의 역사는 그들에게 이서진 앞의 이순재 만큼이나 오래 됐다. 출범 당시 전두환 정권의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은 프로축구와 프로야구가 태생적으로 가진 한계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아시아 최초 프로축구리그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는 점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3.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건 K리그다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있다. 흔히 1984년 현대에서 뛰었던 렌스베르겐(네덜란드)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지만 프로축구가 출범한 1983년 두 명의 외국인 선수가 먼저 수퍼리그에 다녀갔다. 포항제철이 영입했던 브라질 국적의 세르지오와 호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포철과 브라질 CVRD사와의 교류 협정에 따라 1983년 5월 말 한국 땅을 밟은 우리나라 최초 외국인 선수였던 이 둘은 6월 26일 국민은행과의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비록 세르지오와 호세는 각각 두 경기와 다섯 경기 출장이 전부였지만 우리나라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첫 외국인 선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참고로 프로농구는 1997년, 프로야구는 1998년 외국인 선수에게 그 문을 열었다. 현재까지 K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만 해도 600명이 넘는다. 참 글로벌한 리그다.

4. 국내에서 가장 많은 프로팀을 보유한 리그는 K리그다

1983년 5개 팀으로 처음 시작한 수퍼리그는 이후 양적으로도 많이 발전했다. 제주도와 강원도 등 스포츠 불모지에까지 연고를 둔 K리그는 무려 22개( K리그 클래식 14개 팀, K리그 챌린지 8개 팀)의 프로팀이 운영 중이다. 여기에 지금도 프로팀 출범에 대해 긍정적인 논의를 하는 지역도 꽤 된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프로야구를 모두 합친 프로팀이 26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K리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다. 더군다나 국내 프로스포츠 중 최초이자 현재에도 유일하게 시·도민구단이 운영되는 곳도 바로 K리그 뿐이다. 시·도민이 투자에 참여해 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내가 내 돈 내고 구단 운영에 참여하면 축구 못한다고 욕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다.

5. 국내 최초로 팀명에 연고지명을 넣은 건 K리그다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K리그 순위표가 연상된다. 성남, 수원, 서울, 인천 등 K리그에서 쓰이는 팀명이 그대로 목적지 안내 표지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국내에 많은 프로스포츠가 있지만 오직 K리그만이 기업명 대신 연고지명을 정식으로 쓰고 있다. 1994년 전북다이노스와 전남드래곤즈를 시작으로 연고지명을 쓰기 시작하더니 1996년부터는 모든 구단이 기업명 대신 연고지명을 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삼성 대신 수원이고 현대 대신 울산이다. 기업 이름 대신 내가 사는 도시 이름을 응원가와 응원 구호로 쓴다는 게 당연하지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

6. 첫 디비전 시스템 도입은 K리그다

국내 모든 스포츠 중 1,2부리그를 운영하며 승강제를 실시하는 곳도 K리그가 유일하다. 지난 시즌 최초로 강등제를 시행한 K리그는 올 시즌부터는 승격과 강등이 모두 존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지금껏 대부분의 스포츠가 1위 싸움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 돼 있었지만 K리그는 지난 시즌부터 1위 경쟁 만큼이나 치열한 강등권 탈출 전쟁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원래 남의 행복보다 남의 불행을 지켜보는 게 때론 더 재미있는 법이다. K리그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이러한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다. 1,2부리그를 합쳐 22개 팀이나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7.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은 K리그에 있다

지난 2010년 5월 5일 한국 프로스포츠사에 기념비적인 일이 벌어졌다. FC서울과 성남일화의 경기에 무려 60,747명의 관중이 들어찬 것이다. 프로스포츠 사상 6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한 날이자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한국 프로스포츠를 모두 합쳐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K리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K리그 경기장의 수용 인원을 살펴본다면 앞으로도 이 기록은 K리그가 스스로 갈아치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5~6만 명이 경기장에 가득 들어차는 모습은 오로지 K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5~6만 명이 한꺼번에 소리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K리그 팬들에게는 낯선 풍경도 아니다. 차는 정말 더럽게 막힌다.

8.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ACL을 정복한 곳은 K리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그 전신 대회까지 포함해 가장 많이 우승을 차지한 리그가 바로 K리그다. K리그는 무려 10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기록한 일본(5회)보다 무려 두 배나 많은 우승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 4년 간의 대회에서는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3회 우승을 차지한 포항은 역대 아시아 구단 중 최다 우승팀이다. 또한 1967년부터 열린 이 대회에서 같은 리그 팀이 결승에서 만난 경험이 딱 두 번 있는데 이 두 번 모두 K리그 팀간의 맞대결이었다. 1996년 포항과 천안이 말레이시아에서 결승전을 치렀고 2002년에도 수원과 안양이 이란 테헤란에서 격돌했다. 남의 나라에서 참 눈치도 없이 그 사람들 속도 모르고 열심히 뛰었다.

9. 프로스포츠 최초 급여기부를 K리그가 한다

K리그는 매월 각 구단 선수단과 직원, 연맹 사무국 직원, 심판 등 구성원들이 기본급의 1%를 기부하는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제적인 참여가 아니라 본인이 동의할 경우 매달 급여 공제 형태로 기부하는 방식이다. 강제는 아닌데 안하면 눈총 받는 고등하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같은 분위기랄까. 어찌 됐건 프로 스포츠리그의 구성원이 급여의 1%를 기부하는 나눔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다. 연고지에서 받은 사랑을 연고지의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주겠다는 훈훈한 의미다. 올해에는 선수 500여 명, 연맹 및 구단 직원 300여 명, 코칭스태프 200여 명, 심판 40여 명 등 약 1천여 명의 구성원들의 모금액이 약 10억 원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성남 일화는 작년부터 선수단 전원이 급여의 3%를 기부하는 등 K리그는 경기력뿐 아니라 사회공헌활동으로도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이 제도는 참 좋지만 네이트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0.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해외 중계한 리그는 K리그다

국내에서 K리그 중계를 접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다르다. K리그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해외 생중계되는 양질의 콘텐츠다. 2011년 미국의 케이블 스포츠 채널 '아메리카 원(America One)'은 프로축구연맹과 계약을 맺고 매 라운드 한 경기씩을 미국 지역에 독점 생중계했다. 미국 지역에 1200만 가구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한 이 스포츠 채널은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서도 K리그를 미국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이제 우리는 K리그 중계를 보기 위해 이민을 가야할지도 모른다.

11. 최초의 원정응원 전세열차는 K리그에 있다

2010년 FA컵 결승은 부산과 수원의 대결이었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부산 원정 응원을 떠나는 수원 팬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자 KTX측에서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전세 원정 응원 열차’를 운행했다. 운행비만 해도 무려 1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였다. 티켓 발매 한 시간 만에 매진된 이 열차에는 무려 930명이 탑승했고 부산까지 가는 동안 열차에서는 쉴새 없이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원래 할당된 티켓은 600장이었지만 워낙 원하는 이들이 많아 300여 명은 입석으로 이 열차에 올랐다. 이 최초의 원정 응원 전세 열차는 꼬리칸과 앞칸이 하나로 화합했고 단백질블록 대신 맥주를 실컷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K리그는 갈 길이 멀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한 훌륭한 리그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경기력을 뽐내는 K리그는 비록 언론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열기도 무척이나 뜨겁다. 타 프로스포츠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K리그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그리고 또 최고의 반열에 오른 분야를 살펴보며 이 땅에서 열리는 프로축구리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한 번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하는 축구리그라 억지로 ‘국뽕’의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K리그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리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