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선수가 중동으로 향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9년 설기현이 풀럼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임대를 떠났을 때 나는 한국 축구에 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그동안 중동으로 진출하는 유럽 선수들을 보면 오로지 돈에만 눈이 먼 속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기현이 중동으로 떠났으니 나는 금방 한국 축구도 돈에 오염(?)될 것이라 걱정했다. 뭔가 돈만 바라보고 나머지는 다 포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의 중동 이적은 나뿐 아니라 대다수의 축구팬에게 적지 않은 거부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 국내 선수들의 중동행은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영표(사우디 알 힐랄)와 이천수(사우디 알 나스르)가 중동에 진출한 바 있고 현재에도 이정수(카타르 알 사드)와 곽태휘(사우디 알 샤밥), 조용형(카타르 알 라이얀), 남태희(카타르 레퀴야), 신형민(UAE 알 자지라), 고슬기(카타르 엘 자이시) 등이 중동에서 뛰고 있다. 최근 여름 이적시장 기간에도 김정우(UAE 샤르자)와 신진호(카타르SC), 조성환(사우디 알 힐랄) 등이 중동행을 확정지었다. 4년 만에 국내 선수들의 중동행은 이제 굉장히 익숙한 일이 됐다. 더 놀라운 건 과거에는 은퇴를 앞둔 선수들이 말년 돈벌이를 위해 중동으로 떠났지만 최근에는 남태희와 석현준(사우디 알 아흘리) 등 어린 선수들도 중동에 진출한다는 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중동의 선수 대접

석유 부국답게 중동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중동에서는 주유소 직원은 주유기를 틀어 놓은 채 줄줄 흐르는 기름을 그대로 낭비하는 게 일상이고 자동차에 기름을 아무리 가득 채워도 채 2만 원이 넘지 않는단다. 이렇게 기름이 넘쳐 나면서 자연스레 생활에도 여유가 넘친다. 얼마 전 중동에 진출한 한 선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 팀 선수 한 명이 시가 6억 원짜리 ‘람보르기니’를 타고 왔더라고요. 연봉이 워낙 세다 보니 주변에서 이 정도로는 놀라지도 않아요.”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수영장이 딸린 2층집과 기본적인 외제차가 제공된다. ‘오일 머니’를 앞세워 좋은 선수들을 대거 불러 들이는 중동 축구를 돈으로 이길 수 있는 곳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나는 4년 전과는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 설기현의 중동행을 접한 뒤 들었던 거부감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만난 조용형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 사실 돈 보고 카타르 간 건 맞아요. 그렇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았으면 중동에서 축구를 할 일은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돈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의 세계에서 그게 꼭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도 조용형의 말에 동의한다. 길어봐야 30대 중반까지 축구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인 무대에 데뷔해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10년 안팎이다. 프로 입단 전까지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는데 이를 만회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선수로서 실패할 위험 부담까지 안고 살아왔다는 걸 감안한다면 굉장히 짧은 기간이다.

축구팬들이 성금 모금해 줄 거 아니면 돈을 위해 중동으로 떠나는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선수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단끼리 이적을 추진해 중동으로 떠나는 선수들도 있지만 길지 않은 현역 기간 동안 노후 준비까지 해야 하는 선수 입장을 떠올려보자. 유럽 진출의 꿈도 중요하고 K리그 한 구단에서 레전드로 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K리그에서 연봉 5억 원정도 받는 이들이 있다면 중동으로 넘어갈 때 몸값이 15억 원에서 20억 원까지 뛴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중동 한 포털사이트에서 현재 원고료의 네 배를 준다고 하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프로 세계에서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기에 중동 대다수 국가는 세금도 내질 않는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던 나에게는 참 솔깃한 이야기다.

한국 선수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

중동이 돈 많은 거야 원래 다들 알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 왜 그들이 한국 선수를 중용하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중동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연봉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제로 중동 클럽에서는 그리 고액 연봉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동에 진출한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제 연봉은 우리 팀 외국인 선수 네 명 중에 가장 적어요.” 그러면서도 성실함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게 중동 구단들의 평가다. 신형민의 경기를 현지에서 보고 온 한 팬은 그들이 한국 선수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 막판 한 골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팀이 공격을 하는데 몸을 날려 막는 선수가 신형민 뿐이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은 별로 승리가 간절하지 않나 봐요.”

한국 선수들 특유의 성실함과 투쟁심은 중동 클럽에는 무척이나 큰 매력이다. 훈련 시간에 맞춰 단 한 명도 훈련장에 도착하는 이가 없는 ‘멘탈 약한’ 중동 클럽에서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혼자 몸을 풀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성실함은 감동 그 자체다. 다음 날 자기가 선발 명단에 없으면 훈련 도중 아프다고 핑계대고 집에 가는 선수들이 즐비한 중동 클럽에서 부상을 당하고도 진통제를 먹으며 뛰는 한국 선수들의 투쟁심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들 딴에는 돈도 별로 많이 안 받는 선수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주니 얼마나 기특할까. 모든 일에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외치는 여유 넘치는 중동 사람들에게 이를 악물고 뛰는 한국 축구 선수들은 참 대단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마음 같아서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 고생하지 않고 K리그에서 행복하게 축구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선수들의 유출로 인한 K리그의 피해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K리그에도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와 경쟁하는 것처럼 우리의 훌륭한 재능을 보유한 선수들 역시 해외로 나가 부딪히고 깨지며 성장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우리 축구 시장이 훨씬 더 작기 때문에 주도권을 중동 쪽에 내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중동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우리는 그들의 프로리그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 선수들 중 상당수가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중동과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이 아시아의 브라질처럼 여기저기에 많은 선수를 진출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이들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돈만 보고 중동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과연 이 선수들이 많은 돈을 포기할 만큼 더 매력적인 게 K리그에 있다면 어떨까. 과거 성남은 관중도 적고 열기도 부족했지만 그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좋은 선수를 수집하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반대로 현재 K리그 몇몇 인기 구단은 이 정도로 막대한 연봉을 선수들에게 주지는 않지만 선수들이 ‘이 팀에서 뛴다’는 자부심으로 팀에 헌신하고 있다. 바로 이거다. 중동에서 100을 주고 K리그에서 70밖에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K리그가 더 뜨거운 열기와 꽉 찬 관중 앞에서 신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대다수 선수들은 30을 포기하고도 국내 무대에서 뛰는 걸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카타르처럼 경기장 관중석에 에어컨을 설치할 만큼 부자가 아니다. 세계적인 스타를 모셔올 만큼 리그에 돈이 많지도 않다. 돈으로 그들과 대결해서는 우리의 훌륭한 선수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K리그가 아시아 무대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저 중동으로 가는 선수들에게 “돈 때문에 꿈을 버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중동으로 떠나지 않도록 관심을 보내는 건 어떨까. 선수들은 누구나 돈 이상으로 많은 관중 앞에서 절대적인 응원을 받으며 뛰고 싶은 욕망이 있다. 더 많은 연봉을 포기하고도 뛸 수 있는 매력적인 K리그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중동을 돈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석유가 고갈되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