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까임 방지권’이라는 게 있다. 한 번의 대활약으로 다른 잘못에 대한 비난을 면제 받는 권리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 ‘까임 방지권’을 줄여 ‘까방권’이라고 부른다. 유재석과 김연아, 박태환 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까방권’ 보유자로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군 생활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임한 가수 오종혁 역시 새롭게 ‘까방권’을 얻었다. 나 역시 친구들에게 물 좋은 미팅을 주선해 최근 ‘까방권’을 한 장 얻었다. 이뿐 아니라 한국 축구계에도 ‘까방권’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다. 오늘은 ‘한국 까방권 선정위원회’의 자문을 얻어 한국 축구 ‘까방권’ 보유자와 그 자격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하려 한다.

'까방권' 보유자1. 박지성

박지성은 축구계의 대표적인 ‘까방권’ 보유자다. 대표팀에서 헌신적인 활약을 펼치며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기록했던 그는 세계 최고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 ‘까방권’을 얻었다. 또한 사생활로도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가장 존경받는 축구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현역 생활이 그다지 길게 남지 않은 박지성이 남은 기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저조한 플레이에 머물거나 SNS를 시작해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그의 ‘까방권’은 은퇴 후에도 영구적으로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까방권' 보유자2. 박지성과 친한 외국 선수들

박지성의 ‘절친’으로 알려진 외국 선수들도 대부분 ‘까방권’을 한 장씩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파트리스 에브라다. 사실 에브라는 프랑스 대표팀에서 파벌을 형성하고 ‘왕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출되는 등 우리가 아는 것처럼 완벽한 인성과 리더십을 갖춘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에브라를 ‘까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지성이 맨유에 진출할 당시부터 그와 유달리 친하게 지냈던 에브라는 최근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여전히 박지성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팬들은 에브라와 함께 리오 퍼디난드에게도 ‘까방권’과 함께 초코파이까지 선물하기도 했다. 박지성과 친하면 다 우리 편이다.

'까방권' 보유자3. 2002년 월드컵 멤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주역은 대부분 ‘까방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전 골든골의 주인공 안정환을 비롯해 황선홍과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김태영, 홍명보. 최진철, 이운재, 유상철, 이영표, 설기현, 차두리, 이천수, 이을용 등이 2002년 한일월드컵 종료 후 ‘까방권’을 한 장씩 부여 받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4강 진출을 계기로 ‘영구 까방권’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 중 이미 이 ‘까방권’을 쓴 이들도 있다. 이운재는 2007년 한 인도네시아 술집에서 이 ‘까방권’으로 술값을 계산했고 이천수는 활발한 성격으로 멋모르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이 ‘까방권’을 분실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며 스스로 이 ‘까방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또한 2002년 당시 활약이 적었던 최태욱과 윤정환, 현영민, 최은성, 이민성 등은 ‘까방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민성은 1997년 도쿄대첩 때 얻은 ‘까방권’을 이후 음주운전 사건으로 써야 했다.

‘까방권’ 보유자4. 한국에 이득을 안겨준 선수들

이 부류 중 가장 먼저 ‘까방권’을 획득한 이는 이라크의 움란 자파르였다. 1993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 나선 이라크는 종료 10초 전 자파르의 헤딩골로 극적인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도왔다. 더군다나 이 골로 일본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까지 날렸으니 자파르에게 ‘까방권’이 돌아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예의 바른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파르를 한국으로 초대해 일주일 동안 통역과 숙식 등을 전액 지원하고 관광까지 시켜주는 등 ‘까방권’ 소유자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아마 자파르는 다시 한국에 와 “1993년 그 때 그 선수”라고 신분만 밝히면 ‘옥타곤’ 클럽도 줄 서지 않고 VIP 자격으로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대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한국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환상적인 헤딩 자책골로 56년 만에 한국이 8강에 오르는 데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한 말리의 아다마 탐부라 역시 ‘까방권’ 소유자다. 당시 국내에서는 탐부라를 ‘축구 영웅’이라 극찬하면서 주민등록증을 패러디한 자료까지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탐부라 정도의 ‘까방권’이라면 군소정당 공천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에는 한국이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데 자책골로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장모님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의 아크말 쇼크라메도프 역시 따끈따끈한 ‘까방권’을 챙겼다. 하지만 한국은 쇼크라메도프에게 ‘까방권’을 줬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이란에 패하며 그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은 선물하지 못했다.

‘까방권’ 보유자5. 김병지

김병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고 그렇다고 유럽에서 뛴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껏 언급해온 ‘까방권’ 보유 자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수다. 하지만 김병지를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까는’ 이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굳이 분석을 하자면 22년 동안 K리그에서 항상 몸무게 78kg과 외롭게 싸우며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까방권 선정 위원회’에서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또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에 0-5 대패를 당하면서도 몸을 날리며 눈물 겨운 투혼을 선보였다는 점 역시 ‘까방권’의 보유 자격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까방권’ 보유자6. 유럽에서 주전으로 뛰며 SNS 안 하는 선수들

‘까방권’을 얻으려면 유럽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며 논란의 소지를 만들 수 있는 SNS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청용과 손흥민이 최근 들어 ‘까방권’을 획득했다. 반대로 이청용에게 깊은 부상을 안긴 톰 밀러는 ‘평생 까임권’을 얻었다.

* ‘까방권’ 자격 미달 기준은?

K리그에서는 김병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활약을 해도 ‘까방권’을 얻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동국이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펄펄 날며 여전히 최고 골잡이로 활약하고 있지만 ‘까방권’은커녕 ‘까임권’만 여러 장 보유하고 있다. 또한 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할 경우에는 이후 아무리 잘해도 4년간은 ‘까방권’ 보유 자격 미달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염기훈이 있다. 오랜 보유 자격 미달 기간을 거쳐 기어코 ‘까방권’을 따낸 이로는 황선홍이 대표적이다. 또한 ‘까방권’은 상속이나 증여 대상이 아니고 매매 또는 양도될 수 없다.

* ‘까방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는 ‘까방권’ 자체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누구나 그 순간의 잘잘못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평소 행실이 좋다는 이유로 실수나 잘못을 덮어주는 일은 원치 않는다. ‘까방권’이 있는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비판하려 한다. 또한 평소 선입견 때문에 칭찬할 일도 애써 평가절하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까방권’을 얻은 이들은 그동안 몸 관리는 물론 철저하게 사생활도 잘 관리해 온 선수들이다. ‘까방권’을 얻기까지 그들의 과정과 노력을 존중한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이 ‘까방권’을 보유한 이들이 더 많아져 축구인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더 생겼으면 한다. 나 역시 어서 결혼에 성공해 부모님으로부터 ‘까방권’을 획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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