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 열리는 대표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우즈벡전과 관련해 칼럼을 절반 넘게 썼다가 지웠다. 이동국이냐 손흥민이냐라는 문제에 가려져 우리가 잊고 있는 약점에 대한 지적을 쓴 칼럼이었다. 레바논전에 나선 네 명의 수비수 중 두 명이나 또 바뀔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수비 불안 문제를 지적했고 기성용이 빠지면서 전담 키커에 대한 문제점을 짚었다. 하지만 절반 넘게 쓴 칼럼을 결국 다 지워버렸다. 왜일까. 지금은 대표팀의 어떤 문제점을 논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절대적인 응원을 보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번 대표팀만큼 말 많고 탈 많은 대표팀을 찾아볼 수 없다. 대표팀 내부에서는 파벌 싸움과 불화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부 팬들은 최강희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 거센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남은 두 경기를 치른 뒤 최강희 감독이 전북으로 돌아갈 예정인 것도 말이 많다. 대표팀을 옹호하건 비난하건 일부 팬들은 언론에 대한 극심한 반감도 가지고 있다. 전력을 100% 다해서 싸워도 쉽지 않은 판국에 우리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절반 넘게 썼던 칼럼을 지우고 새 칼럼을 다시 쓰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아무리 미워도 대표팀에 전폭적인 응원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심리적인 측면이 무척 중요한 경기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전술을 떠나 팀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자주 바뀐다. 2007년 K리그에서 포항이 우승할 때만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5위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강호들을 연달아 물리치더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정규리그 1위인 성남까지 완파했다. 누가 봐도 성남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섰지만 포항의 기세는 대단했다. 당시 포항의 한 선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포항은 모든 선수가 하나된 마음으로 기적을 일궈냈다.

나는 비슷한 사례를 2010년에도 경험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끌던 당시 경남은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지만 오로지 승리만을 바라보며 똘똘 뭉쳤다. 당시 현장에서 지켜봤던 경남의 서울전 홈 경기는 아직도 기억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봐도 경남의 열세인 경기였지만 경남은 이 경기에서 서울을 1-0으로 제압하며 구단 창단 이래 사상 첫 K리그 1위 등극이라는 역사를 이뤄냈다. 당시 경남 소속이던 김병지는 그때의 대단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팀하고 붙어도 이길 수 있던 분위기였어요. 선수들이 오로지 승리 하나만 보고 뛰었거든요.” 그렇다. 축구는 이렇게 더 간절하게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야 이길 수 있다.

우리는 홈 이점을 안고 있는가

지금 대표팀 분위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내부적인 문제점은 물론 주변에서도 너무 흔들어 댄다. 대표팀 발전을 위한 쓴소리도 좋지만 이제는 믿고 응원해야 할 때다. 수능시험 보러가는 날 아침 그동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잔소리하는 선생님은 없다. 이때는 아무리 학생이 밉고 싫어도 격려하고 응원한다. 지금 대표팀이 딱 그런 상황이다. 불안한 포백 수비와 전담 키커 부재, 이동국과 손흥민 기용 논란 등 아무리 많은 문제점을 지적해도 고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바로 오늘이다. 열심히 응원했는데도 경기력이 실망스러웠다면 그때부터 비판해도 늦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비난할 것부터 찾는 건 지금 이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경기는 최강희 감독과 원수지간인 이가 감독이라고 해도, 이동국이 벤치에 앉아 있고 다른 누군가가 선발로 나온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응원할 생각이다.

지금은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네가 어디 살아 돌아오는지 한 번 보자”고 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출동 준비를 다 마친 상황에서 장수에게 전쟁에 임하는 전술로 지적하는 꼴이다. 아무리 약한 장수라도 “넌 살아 돌아올 수 있어”라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행동 아닐까. 나는 대표팀의 어떤 선수가 골을 넣건 박수를 보낼 것이고 어떤 선수가 실수를 하건 위로할 것이다. 선수와 관중이 한 곳만 바라보며 거침없이 뛰어도 모자랄 판에 사분오열된 모습으로는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잡을 수가 없다. 이미 뚜껑은 열렸고 우리는 이제 실전에 임해야 한다. 불안한 수비진과 공격수 기용에 대한 의견, 최강희 감독의 선택 등에 대해서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믿어줘야 한다. 까려면 결과를 보고 내일부터, 이왕이면 다음 주 이란전까지 응원을 하고 그 뒤에 시원하게 까도 된다.

단순히 한국 선수 11명과 우즈벡 선수 11명이 싸우는 경기가 아니다. 우리는 우즈벡, 이란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마지막 2연전을 치러 대진상으로는 쉽지 않은 승부를 펼쳐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적인 건 이 두 경기를 모두 안방에서 치른다는 점이다. 우즈벡 선수 11명과 수만 명의 우리가 싸우는 경기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홍명보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충돌 상황이 나올 때마다 주심에게 어필하라.” 그래야 관중이 더 흥분해서 열정적으로 홈 이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은 선수들이 잘한 것도 있지만 도저히 상대가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인 우리의 응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대표팀을 흔들 때가 아니다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어떤 선수가 밉고 싫어도 오늘 만큼은 절대적인 응원이 필요하다. 우즈벡이 공을 잡을 때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야유를 보내야 한다. 지금은 대표팀 선수 11명만이 뛰는 게 아니라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기성용과 구자철도 같이 뛰는 것이고 애국가 부르러 오는 가수 이승철씨도 같이 뛰는 것이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과 텔레비전 앞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는 우즈벡은 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데 우리는 지금 너무 분열돼 있다. 지금 최강희호를 흔들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빌 샹클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팀이 지거나 비기고 있을 때 응원할 수 없다면 이기고 있을 때도 응원하지 말라.” 지금 우리가 가슴 속에 품어야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