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자신을 축구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새벽까지 유럽 축구 중계를 보거나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빨간티를 입고 열광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K리그 경기장에서 목 놓아 응원가를 부르는 이들도 꽤 된다. 물론 이들 역시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여기 정말 축구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국 성인 축구의 최하부리그에서도 늘 꼴찌를 맴도는 고양시민축구단의 유일한 서포터스 라대관 씨다. 지난 주말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희열을 혼자 느끼며 눈물을 흘린 라대관 씨의 축구 인생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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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기수가 추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단에 넉넉한 자금이 없어서 직접 기수로 나선 라대관 씨의 모습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양시민축구단과 그의 첫 만남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라대관 씨는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 서포터스 ‘보레아스’와 함께 전국을 누볐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는 내셔널리그에서 승격을 노리며 최선을 다하는 고양국민은행을 몇몇 서포터스와 함께 응원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비록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내셔널리그였지만 그에게는 고향팀을 응원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6년에는 박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독일 월드컵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붉은악마 월드컵 원정 응원단 콜리더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 어린 소년이 선창을 하면 수천 명의 붉은악마가 독일 월드컵 현지에서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속된 말로 ‘이 바닥’에서 라대관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던 고양국민은행이 2007년 K리그 승격 자격을 얻고도 이를 거부하자 큰 상실감에 빠졌다. 응원하는 팀이 모두가 주목하지 않는 내셔널리그에 남아서가 아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고양국민은행이 같은 꿈을 꾸던 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승격을 거부한 것이 그에게는 큰 상처였다. 결국 라대관 씨는 ‘보레아스’ 동료들과 함께 발 벗고 나섰다. “우리가 직접 시민구단을 만들어 보자.” 수뇌부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기업 구단보다는 진정한 시민축구단과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고양시민축구단 창단을 도왔다. 결국 1년여 간의 긴 기다림 끝에 2008년 라대관 씨가 꿈에도 그리던 고양시민축구단이 창단됐다. 비록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라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진짜 내 팀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창단 후 군대에 간 그가 제대하자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하는 이는 대부분이 사라졌다. 기대와는 다르게 연패를 거듭하며 최하부리그 최하위를 전전하자 실망하는 이들도 있었고 내셔널리그와도 너무나 차이가 나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떠난 이들도 있었다. 생업에 종사하며 축구가 멀어진 이도 있고 “다시 한 번 믿어보자”며 고양국민은행 서포터스로 다시 돌아간 이도 있다. 결국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라대관 씨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군 생활 2년 동안 늘 꿈꿔왔던 곳에 돌아왔지만 그는 외로웠다. 그는 혼자서 이렇게 다짐했다. ‘나 혼자라고 응원하지 말란 법도 없잖아. 난 지금 내가 응원할 수 있는 내 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야.’ 이때부터 라대관 씨는 고양시민축구단의 챌린저스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혼자 전국을 떠돌며 응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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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응원을 하고 있는 라대관 씨의 모습.

라대관 씨의 외로운 원정길

걸개를 직접 만들었다. 엄청난 인원수를 자랑하는 K리그 클래식 서포터스도 요새는 돈 주고 업체에 맡겨 걸개를 제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라대관 씨는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직접 걸개를 제작했다. “정성이 중요하잖아요. 아무리 멋진 응원 구호라고 해도 돈 몇 푼 주고 업체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라대관 씨는 자비를 들여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집 앞 공터에서 걸개와 씨름했다. 여럿이서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혼자서 하려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제가 사실 포토샵을 잘 못하거든요. 일일이 그림판으로 작업을 해 색까지 칠하려면 적어도 걸개 하나 만드는데 3주는 걸려요.” 라대관 씨는 이렇게 만든 걸개를 가방에 넣어 대중교통을 타고 전국을 돌아 다닌다. 서포터스 이름을 고양시의 상징인 까치에서 따와 ‘울트라스 맥파이’라고 짓고 오로지 고양시민축구단을 위해서 외로운 응원을 시작했다.

혼자서 응원을 하다 보니 힘든 일도 많다. 챌린저스리그 경기장은 대부분이 근린 공원 등 생활체육 시설에서 열리기 때문에 K리그 클래식처럼 홈과 원정 서포터스 구분이 따로 없다. 원정 경기 응원에 나서면 일반 홈 관중 바로 옆에서 응원을 펼쳐야 한다. 때론 상대 선수가 거친 플레이를 할 때 야유를 보내다 낭패를 당한 적도 많다. 아직 서포터스 개념이 부족한 챌린저스리그 일반팬이 다가와 “당신 지금 뭐라고 했느냐”면서 시비를 건 적은 수도 없다. 여럿이 함께 응원을 하는 서포터스는 하프 타임을 이용해 웃고 떠들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라대관 씨는 하프 타임에도 함께할 이가 없다. “담배 두 대 피우고 제 SNS에 사진 몇 장 올리면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와요. 그게 제가 하프 타임 때 하는 전부입니다.”

엄청난 팬을 등에 업고 지금은 K리그 챌린지로 입성한 부천FC1995가 지난 시즌 챌린저스리그 고양시민축구단의 마지막 라운드 상대였다. 라대관 씨는 역시나 혼자서 큰 가방에 걸개를 넣고 부천으로 향했다. 2백 명이 넘는 부천 서포터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일반 관중까지 합치면 약 1천 명에 달하는 이가 그의 상대였다. 라대관 씨는 혼자 걸개를 건 뒤 목 놓아 고양시민축구단을 외쳤다. 1대 1천 명의 싸움이었다. 늘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은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하다보면 맥 없이 무너지는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슬프다. 고양시민축구단은 지난 시즌에도 챌린저스리그 B조에서 5승 7무 13패로 9개 팀 중 꼴찌를 차지한 약체다. 라대관 씨는 집에 돌아오는 길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장 외로울 때가 이럴 때죠. 0-4에서 0-5가 되는 순간이면 사실 저도 힘이 빠지거든요. 이런 원정 경기는 허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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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는 늘 혼자라는 사실이 오히려 편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구단 지원도 거부하는 이유는?

하지만 그는 고양시민축구단과 챌린저스리그를 외면할 수 없다. 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 포천시민축구단 이수식 감독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포천 원정을 가 묵묵히 상대팀 감독을 추모하는 걸개를 내걸었다. 그러자 포천 홈 관중 한 명이 그를 찾아와 음료수와 빵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예의를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라도 드시고 하세요.” 그의 이 추모 걸개는 포천 지역 신문에도 소개됐고 포천 구단 차원에서도 SNS를 통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올 시즌 전남 영광 원정도 그는 많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 걸개를 등에 지고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에 가 고속버스를 타고 택시까지 이용해 경기장까지 가는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그는 여기에서도 챌린저스리그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영광읍에서 나온 여직원 두 분이 하프 타임 때 저한테 오시더니 ‘혼자 여기까지 와서 고생한다’며 맥주와 땅콩을 건네 주시더라고요. 그럴 때면 힘이 나죠.”

라대관 씨는 올 시즌 현재까지 열린 10경기 중 회사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전주 원정을 빼놓고 모든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응원했다. 늘 혼자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고맙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항상 그에게 와 인사를 한다. 교체 선수까지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단 한 명의 팬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그에게 왜 한국 축구 최하부리그 최하위팀을 응원하느냐고 묻자 거창한 대답 대신 단순한 한 마디가 돌아왔다. “우리 동네 팀이잖아요. 우리 동네에 K리그 팀이 생기더라도 저는 이 팀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양시의 모든 축구가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라대관 씨는 안산에서 올 시즌 고양시로 연고를 옮긴 K리그 챌린지의 고양 Hi FC에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벌써 네 번이나 연고를 옮겨 언제 또 고양시에서 떠날지도 모르는 팀입니다. 저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팀이죠.”

라대관 씨는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하면서 나름대로 철칙을 세웠다. 혼자 원정 응원까지 떠나다보니 선수들과도 무척 친근하지만 그는 절대 선수들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거나 따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다. “팀 특성상 선수들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저희 팀이 워낙 열악한 환경인데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면 너무 감동적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정이 들면 그 선수가 떠날 때 너무 힘들어요. 또한 괜한 ‘친목질’로 선수들의 경기력에 방해를 하고 싶진 않아요. 그저 경기장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 외에는 따로 선수들과 만나지 않습니다.” 또한 라대관 씨는 절대 구단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 혼자 응원하는 게 고마워 구단에서는 걸개 제작에 도움을 주고 원정 응원에도 배려를 하려고 했지만 라대관 씨는 이를 모두 거절하고 있다.

“우리 팀은 한 시즌 동안 고양시에서 1억 원을 지원받는데 이 중 80%가 감독님과 선수들 인건비로 나가요. 그것도 감독님과 선수들에게는 너무 적은 액수이고 정말 빠듯한 살림인데 제가 어떻게 구단 예산을 축내나요. 가까운 수도권 원정 경기를 치를 때면 구단에서는 돈을 아끼려 감독님이 직접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선수들이 이동하거든요. 한 자리 비워줄 테니 같이 타고 가자고 하는데 선수들한테 불편함을 주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그냥 제 자비를 털어 걸개를 만들고 혼자 원정을 떠나는 게 선수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번 구단에 도움을 받게 되면 제가 목소리를 내야할 때도 그럴 수가 없잖아요. 구단과의 사이는 좋지만 금전이 오고가는 사이가 되는 건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어요.” 라대관 씨는 그저 고양시민축구단이 팬을 생각하는 고마운 마음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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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라대관 씨의 모습은 그저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찌보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혼자서 만세 삼창’ 감격스러운 시즌 첫 승

올 시즌 고양시민축구단은 9연패를 기록하며 챌린저스리그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지난 25일 지난 시즌 B조 3위를 차지한 ‘강호’ 양주시민축구단을 상대하기 위해 원정길에 올랐다. 양주시민축구단은 올 시즌에도 4승 2무 3패를 기록 중인 다크호스였다. 누가 봐도 이건 고양시민축구단의 절대적인 열세였다. 라대관 씨는 이날도 외롭게 원정을 떠났다. 예상했던 대로 전반 초반 양주시민축구단의 손 쉬운 골이 터졌다. 이대로 10연패를 기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김국현의 헤딩골에 이어 채수열의 중거리슛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올 시즌 고양시민축구단이 한 순간이라도 경기에서 앞선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양주의 슈팅이 번번이 골대를 맞고 흐른 뒤 수비적으로 경기를 하던 고양시민축구단이 다시 한 번 환호했다. 김상엽의 세 번째 골이었다. 이후 수비수의 퇴장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결국 처절한 방어 끝에 고양시민축구단이 ‘난적’ 양주를 3-1로 꺾었다. 올 시즌 첫 승리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혼신의 힘을 다한 고양시민축구단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혼자 응원가를 부르던 라대관 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기뻐하던 선수들은 곧바로 라대관 씨 앞으로 갔다. “가서 인사 먼저 하자.” 11명의 선수들과 백업 선수들까지 모두 라대관 씨 앞에 서 손을 맞잡았다. “만세 삼창 하는 거 텔레비전에서 봤지?” 한 선수가 이야기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라대관 씨와 고양시민축구단 선수들의 만세 삼창이었다. “만세. 만세. 만세.” 비록 수천 관중이 만세를 외치는 장관은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세 삼창이었다. 라대관 씨는 9연패를 끊고 올 시즌 처음으로 승리를 선사한 선수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누구에게는 그저 최하부리그 최하위팀의 경기였을지 몰라도 라대관 씨에게는 2006년 독일월드컵 붉은악마 콜리더로 경험한 승리보다 더 감동적인 승리였다.

라대관 씨는 죽을 때까지 고양시민축구단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 관중석을 지키지만 외롭지 않다. “제가 평생 응원할 수 있는 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K리그 팀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서 우승하는 꿈을 꾸지만 저는 제가 죽기 전에 고양시민축구단이 K리그 무대에 서는 것만 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함께 응원하며 같은 꿈을 꾸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우리 서포터스 규모도 지금보다 두 배가 되는 거잖아요.” 라대관 씨에게 마지막으로 혼자 멋진 응원을 하는 사진 몇 장을 부탁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항상 혼자 응원을 해서 제가 나온 사진이 없어요.” 비록 그는 자기가 멋지게 나온 사진 한 장 없지만 가슴 속에 고양시민축구단과의 가장 멋진 사진을 매 경기마다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