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흘러나오는 주제가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이 노래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대회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이 웅장한 노래가 전하는 떨림은 늘 부러웠다. 그런데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에도 이런 웅장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5월 이사회를 열고 K리그 앤섬(Anthem)을 제작해 K리그 선수 입장곡으로 의무 사용하기로 했다. 이 음악을 K리그 중계방송과 홍보 영상 등에도 활용해 K리그의 상징적인 음악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게 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의 대부분 구단이 연맹의 방침에 따라 K리그 앤섬 ‘Here is the Glory’를 선수가 입장할 때 틀고 있다. 나는 지금껏 구단별로 중구난방이던 입장곡을 이렇게 하나로 통일해 일체감을 주고 전통을 만들려는 노력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가끔 이 노래를 운전하면서 차에서 듣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마치 K리그 경기장에 온 것 같은 흥분에 사로 잡힌다. 특정 음악을 통해 K리그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성과다. 마치 UEFA 챔피언스리그를 지켜보며 듣던 그 웅장한 노래처럼 이제는 누구나 K리그 앤섬을 들으며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역사와 전통이 쌓이다 보면 우리도 더 발전한 K리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이 ‘K리그 앤섬’을 거부하는 이유

하지만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22개 팀 중 유일한 한 팀, FC서울 만이 선수가 입장할 때 이 노래를 틀지 않고 있다. 다른 팀은 다 트는데 서울만 유독 이사회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연고이전 후 K리그 서포터즈 연합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서울 입장에서는 서포터즈 연합회가 연맹에 헌정한 이 주제곡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서울 측은 “선정된 주제곡이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지금껏 이 주제곡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서울은 이 주제곡 대신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2005년부터 사용한 구단 자체 응원곡 '진군가'를 틀고 있다. K리그 앤섬의 작곡자가 수원 팬으로 알려진 ‘노브레인’의 드러머 황현성이라는 것도 서울 입장에서는 마음에 걸린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서울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사회 결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용해야 한다.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낼 수는 있어도 이사회에서 통과한 사항은 K리그에 속한 클럽으로서 반드시 지키는 게 맞다. 만약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사회에서 통과된 사안을 지키지 않는다면 K리그를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구단 이기주의’가 넘쳐날 경우 이사회는 유명무실해 진다. 연맹이 정한 공인구 대신 자기들 마음에 드는 축구공을 써도 할 말이 없다. 협의를 통해 통과된 안건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K리그 서포터즈 연합에서 탈퇴한 포항과 연고이전 팀이라는 이유로 K리그 서포터즈 연합회에 속하지 못한 제주도 결국 이를 수용해 K리그 앤섬을 주제곡으로 쓰고 있는데 유독 서울만 거부하고 있다. ‘구단 이기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연맹은 올 시즌부터 전 대회 우승팀에 대한 특별한 예우를 하기로 했다.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과 맞붙는 상대팀 선수들이 미리 경기장에 도열해 상대팀에게 존경을 표하는 박수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고 대다수가 이 결정에 반발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챔피언 서울과 개막전에서 맞붙는 포항은 이를 지켰다. 포항 선수들은 먼저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해 서울 선수들이 나오는 동안 일렬로 서서 박수를 보냈다. 포항의 한 선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했죠. 하지만 연맹에서 결정한 일이니 따라야죠.” 포항은 지난 시즌 FA컵 챔피언이지만 K리그 챔피언에 대한 예우를 전통으로 이어가려는 연맹의 결정을 준수했다.

다른 팀들도 다 손해를 감수한다

이사회의 결정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선 안 된다. 서울 입장에서는 2005년부터 입장곡으로 사용해 오던 ‘진군가’를 포기하는 것도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입장의 인천유나이티드를 한 번 언급한 필요가 있다. 인천은 2004년 창단 때부터 가수 ‘부활’의 노래 ‘새벽’을 입장곡으로 써 왔다. 나는 사실 이 노래가 입장곡으로 별로라고 생각했다. 노래 자체는 좋지만 웅장한 느낌보다는 잔잔한 분위기의 노래가 선수 입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천 구단 관계자에게 몇 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냥 좀 더 웅장하고 신나는 노래로 하면 안 되나요?” 하지만 인천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 노래를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곡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려는 인천 구단의 노력을 이해했다. 하지만 창단 후 줄곧 이 노래를 입장곡으로 써 오던 인천은 지난 해 연맹 이사회의 결정 이후 올 시즌부터 K리그 앤섬으로 입장곡을 바꿨다. 얼마 전 다시 만난 인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가까이 써온 입장곡을 바꾸려니 가슴이 아팠죠. 우리가 10년 동안 밀던 노래 잖아요. 이제 ‘부활’의 ‘새벽’이라는 노래가 나오면 인천유나이티드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아져서 포기하려니 아쉬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연맹이 결정했으면 우리도 따라가야죠.” 인천은 10년 동안 쓰던 입장곡을 바꿨고 제주는 K리그 서포터즈 연합회 소속이 아니지만 입장곡을 바꿨고 포항은 시즌 개막전에서 자존심 상하는 예우를 하고 입장곡도 바꿨다. 서울만 K리그 앤섬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주제곡을 만든 ‘노브레인’의 멤버 황현성과 이 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가 처음 이 제안을 받고 머리를 싸맨 채 방구석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축구 주제곡 만드는 녀석이 방에서 뭐하는 거야. 직접 축구장에 가서 열기를 느껴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야지.” 황현성은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곧장 K리그 경기장에 달려가 오감을 열고 축구를 느낀 뒤 이 곡을 썼다. 지난 해 연맹 이사회의 결정이 난 뒤에는 각 파트별로 2배 이상 악기를 추가하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 전 과정을 다시 거쳐 웅장함과 박진감을 더해 재탄생했다. 황현성은 이렇게 말했다. “연맹 ‘높으신 분’들이 쉽게 만족하지 않으셔서 수정 작업이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K리그 팀은 K리그의 룰을 지켜야 한다

K리그 앤섬은 각고의 노력이 기울어져 탄생한 ‘작품’이다. 또한 ‘노브레인’ 멤버들은 이 주제곡을 들은 뒤 “이건 ‘노브레인’의 색이 아니다. 그냥 황현성 개인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면서 작곡자에서 ‘노브레인’의 이름을 지웠다. 탄생 배경을 떠나 K리그에 속한 클럽이라면 누구나 아낌없이 사랑해도 괜찮을 음악이다. 이미 이사회에서 다 결정까지 난 사안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건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연맹이 정한 지난 시즌 챔피언에 대한 예우는 받으면서 연맹이 정한 K리그 앤섬은 거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연맹 역시 이사회의 결정을 어기는 구단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K리그에 참여하려면 K리그에서 정한 룰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