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실력만큼 중요한 게 정신력이다. 때론 실력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팀이 정신력과 투혼을 발휘해 기적 같은 승리를 따내기도 한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서도 정신력과 투혼을 발휘해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는 모습에 감동받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축구는 지금껏 눈물 겨운 투혼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나는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부서지고 조롱이 이어져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 오늘은 한국 축구가 지금껏 전한 감동의 투혼을 되새겨보려 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조별예선 한국 vs 말리

2004 아테네 올림픽에 나선 한국은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2-2로 비긴 뒤 2차전 멕시코전에서는 1-0으로 승리를 챙겼다. 1승 1무로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56년 만의 조별예선 통과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더군다나 마지막 경기 상대는 최약체로 평가받는 말리였다. 어렵지 않게 말리를 잡고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국은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는 생각에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펼쳐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전반 7분 한국은 말리 공격수 테네마 은디아예에게 첫 골을 허용했다. 은디아예가 트래핑 할 때 공이 왼손에 닿았지만 주심은 핸드볼 파울을 선언하지 않고 곧바로 골을 인정했다. 불운의 시작이었다.

한국은 전반 23분에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해 전반을 0-2로 마쳤다.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두 골이나 필요했지만 도무지 이 경기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후반 들어서도 말리의 공세는 대단했다. 후반 10분 결국 한국은 한 골을 더내줘 0-3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토록 원하던 올림픽 조별예선 통과의 꿈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 믿기지 않는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의 실망감은 대단했다. 남은 35분 동안 세 골을 넣는 기적이 아닌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후반 12분 김동진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조재진이 정확한 헤딩슛으로 꽂아 넣어 만회의 불씨를 살리더니 2분 뒤 똑같은 장면에서 김동진의 크로스를 조재진이 한 번도 골로 연결했다. 순식간에 한 골 차로 따라 붙은 것이다.

그리고 3분 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이 측면에서 크로스한 공을 말리 수비수 아다마 탐부라가 걷어낸다는 것이 그대로 자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3-3 동점이었다. 세 골을 먼저 허용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추격한 한국의 뒷심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경기는 3-3 동점으로 마무리 돼 한국은 극적으로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조재진은 이렇게 말했다. “1년 7개월간 흘린 땀이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행운도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에게 돌아간다고 굳게 믿었다.” 누구는 이 경기를 ‘탐부라가 선사한 행운의 8강 티켓’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 골을 허용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한 태극전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적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한국 vs 이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을 노렸다. 하지만 순항하는 홍명보호는 준결승전에서 연장전 종료 1분을 남기고 아랍에미리트연합에 통한의 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오로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내달리던 홍명보호는 충격에 빠졌고 팬들 역시 연장 막판 공격적인 전술 운영을 포기하고 골키퍼를 교체하며 승부차기를 대비했던 홍명보 감독의 선수 기용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병역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놓쳤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대단했다. 이렇게 한국 축구는 또 한 번 좌절을 맛봤고 사실상 의미가 없는 3·4위전은 맥 빠진 경기가 될 것처럼 보였다.

동메달을 놓고 싸운 상대는 이란이었다. 지난 2006년 도하 AG 3·4위전에서 당한 패배는 물론이고 1970년 방콕 대회 이후 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2무4패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있었다. 병역 혜택이라는 동기부여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란을 꺾는 건 힘겨워 보였다. 역시나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6분 만에 한 골을 허용한 한국은 전반 막판 또 다시 한 골을 내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경기 스케줄과 준결승전의 충격적인 패배 여파는 상당했다. 후반 2분 구자철이 한 골을 만회했지만 또 다시 2분 뒤 이란에 한 골을 더 허용하며 1-3으로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한국은 투혼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선수들끼리 다독이며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힘을 모았다. 와일드카드로 나선 김정우는 후배들에게 “부와 명예를 바라고 뛰지 말자.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하자”고 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후반 32분 박주영이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추격을 불씨를 살리자 이란은 특유의 ‘침대 축구’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한국은 침착하게 공격에 임했다. 그리고 후반 42분 서정진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지동원이 통렬한 헤딩슛으로 이란 골문을 갈랐다. 믿을 수 없는 3-3 동점이었다. 기세를 올린 홍명보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맹공을 퍼부어 1분 뒤 거짓말 같은 장면을 다시 한 번 연출했다. 윤석영이 올려준 공을 다시 한 번 지동원이 솟구쳐 올라 헤딩슛으로 연결한 것이다. 지동원의 머리를 떠난 공은 이란 골망을 출렁였다. 11분 동안 세 골을 기록하며 대역전극의 마침표를 찍었다. 비록 한국은 원하던 금메달과 병역 혜택을 놓쳤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가 끝난 뒤 구자철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하루가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란전 전반전이 끝나고 골대 뒤 1천여 붉은악마의 응원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분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 우리가 투혼을 발휘해주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후반전에는 죽기 살기로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이란전 후반 45분은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다. 이제까지 축구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따낸 소중한 동메달을 보면 행복하다.” 금메달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고생했던 이들에게 어쩌면 하찮은 동메달일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얻어낸 메달이기에 그만큼 이 동메달도 금메달 못지 않게 빛날 수 있었다.

2011 U-20 청소년월드컵 16강 한국 vs 스페인

2011년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은 청소년 월드컵 첫 경기에서 말리를 2-0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하지만 프랑스에 1-3으로 패하더니 콜롬비아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또 다시 0-1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프랑스전은 비록 패했어도 경기 내용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콜롬비아전 패배는 그 여파가 엄청났다.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16강행이 확정되는 대표팀은 90분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올랐지만 다음 상대는 ‘최강’ 스페인이어서 팬들의 조롱은 더 거셌다. “어차피 대패할 테니 망신 당하지 말고 빨리 짐이나 싸라”고 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으로 구성된 스페인은 누가 봐도 가장 강력했다. 대학생 위주로 구성된 한국에는 너무나 큰 산이었다.

경기 전날 자발적으로 모인 선수들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내일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지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이때 민상기(수원)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지금 생각하는 거 다 틀려 먹었어. 어떻게 축구 선수가 ‘질 때 지더라도’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 우리는 내일 전쟁터에 나가는데 죽으러 가는 거야? 죽이러 가는 거야? 죽이러 가자.” 순간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파이팅이 넘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날 성인 대표팀은 일본에 0-3 참패까지 당해 후배들이 물러설 곳이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최강’ 스페인이라고 해도 물러서면 안 되는 경기였다. 누군가는 그들을 조롱했지만 그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졸전을 펼친 이광종호는 전혀 다른 팀이 돼 있었다. 실력에서는 밀렸지만 온 몸으로 스페인 공격을 막아내면서 선전을 펼쳤다. 김영욱은 몇 번이고 상대와 충돌해 실려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뽑아낸 스페인은 120분 동안 한국에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다리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상황이었지만 몸을 던져 스페인 공격을 틀어 막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이끌었다. 승부차기 역시 팽팽했다. 8번째 키커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한국은 8번째 키커 김경중이 실축하며 결국 승부차기에서 6-7로 패하고 말았다. 기회를 날린 김경중은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고 동료들은 달려가 그런 김경중을 위로하는 가슴 찡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 어린 선수들은 패배의 아쉬움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비록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최강’ 스페인을 상대로 대표팀이 보여준 투혼 만큼은 대단했다. 누가 봐도 열세인 경기에서, 그것도 고국 팬들의 조롱까지 들으며 버텨낸 선수들의 의지에 팬들의 마음도 다시 돌아섰다. 이 경기는 경기의 승패를 떠나 투혼이 얼마나 우리를 감동케 하는지 보여준 멋진 승부였다. 특히 이날 한국의 벤치에는 코뼈가 부러져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팀 동료 황도연의 유니폼이 걸려 있어 그 감동이 더했다. 이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동료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온몸을 던졌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결승 한국 vs 일본

199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축구 열기로 뒤덮였다.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이 열렸기 때문이다. 석 장의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이 걸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준결승에서 이라크를 꺾고 결승에 진출해 이미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결승이었다. 일본과의 숙명적인 맞대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2002 월드컵 유치를 놓고 팽팽하게 경쟁하던 한국과 일본은 이 대결에 모든 걸 걸었다. 월드컵 개최 능력도 능력이지만 축구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어필해야 했기 때문이다.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3·4위전에서 맞붙은 이라크와 사우디보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한·일전이 더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마에조노를 앞세운 일본도 준결승에서 사우디를 2-1로 제압하는 등 만만치 않았다. 마에조노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했다.

더 큰 걱정은 또 있었다. 이라크전에서 주축 수비수 이상헌이 상대와 충돌하며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헌은 이라크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고 교체 아웃됐고 일본전에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상헌은 이라크전에 끝난 뒤 이마를 여섯 바늘이나 꿰맸다. 수비수가 찢어져 꿰맨 이마로 경기에 나서 헤딩 경합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헌의 의지는 확고했다. 찢어진 이마에는 반창고를 붙였다. 비쇼베치 감독은 “이조 쇼지는 이상헌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아프면 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상헌은 “월드컵 개최의 운명이 달린 경기인데 벤치에서 지켜볼 수 없다. 차라리 그라운드에서 뛰다가 쓰러지겠다”면서 출전을 강행했다. 그렇게 이상헌은 의지를 불태웠다. 상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도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망언으로 한국을 자극할 때였다.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준결승에서 한국과 일본이 이라크와 사우디를 각각 2-1로 이긴다는 족집게 예측을 했던 도박사들도 “한·일전은 민족 감정과 월드컵 유치전 경쟁 등 워낙 얽혀 있는 변수가 많다”면서 아예 예상을 포기할 정도로 팽팽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던 한국과 일본의 승부는 후반 34분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윤정환이 올린 프리킥을 누군가 강력한 헤딩슛으로 연결해 일본 골문을 가른 것이다. 골을 넣은 뒤 뒤돌아 서 환호하는 선수를 보고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마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바로 이상헌이었다. 이마에 깊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는 그 머리로 일본에 비수를 꽂는 첫 골을 뽑아냈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팀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다. 이후 곧바로 조 쇼지에게 한 골을 허용한 한국은 흔들리지 않고 또 다시 1분 후 이원식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최용수가 성공시키며 극적인 2-1 승리를 따냈다.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산케이 신문은 “월드컵 유치전 초전이나 다름없는 이번 결승전에서 일본이 패배함으로써 월드컵 유치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다”면서 “전원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이 주로 대학선수들인 한국 팀에 진 것은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 신문 역시 “이번 패배가 월드컵 유치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의 투혼에 또 다시 패하고 말았다”고 자국 선수들을 비판했다. 이 짜릿한 승리를 맛본 한국 팬들은 경기 종료 후 이상헌의 인터뷰에 또 한 번 코 끝 찡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상헌은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말했다. “헤딩을 할 때마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길 것이다.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버텼습니다.” 일본전 ‘3분의 드라마’, 그 주인공은 이상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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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생의 붕대 투혼으로도 유명한 이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투혼이 빛났던 경기로 꼽힌다. (사진=국제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한국 vs 벨기에

1998 프랑스월드컵에 나선 대표팀은 멕시코에 1-3으로 패하고 네덜란드에도 0-5로 대패하며 일찌감치 조별예선 탈락이 확정됐다. 월드컵 첫 승과 첫 16강 진출을 노렸던 한국으로서는 네덜란드전 대패의 충격이 엄청났다.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 경질이라는 사상초유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미 탈락이 결정된 상황에서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를 김평석 코치 체제로 준비해야 했다. 두 번이나 쓰디쓴 패배를 맛 본 한국은 수장까지 잃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듯했고 한국전에서 승리할 경우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벨기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세 골차 이상으로 한국을 이기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전 네 차례 대회에서 모두 16강에 올랐던 벨기에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부상으로 황선홍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한국으로서는 유럽에서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벨기에와의 승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는 “한국 축구는 이미 끝났다. 치욕이다”라는 최악의 여론이 형성돼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4분 만에 벨기에 닐리스에게 골을 허용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또 다시 악몽이 재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탈락이 확정된 한국에는 또 다른 목표가 있었다. 바로 월드컵 첫 승이었다. 지금껏 5차례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한국은 이를 악물고 벨기에에 달려 들었다. 가까스로 벨기에 공격을 막아내던 한국은 후반 27분에는 하석주의 프리킥을 이어받은 유상철이 몸을 날리며 동점골까지 뽑아냈다. 그리고 진짜 투혼의 경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국을 이기면 자력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벨기에가 거센 반격에 나서자 한국은 육탄방어로 맞섰다. 벨기에 공격수와 충돌해 머리가 찢어진 이임생은 그라운드 밖에서 붕대를 감다가 “빨리 그라운드로 들여보내 달라”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김태영도 두 번이나 상대에 가격 당해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갔다. 벨기에 공격수가 슈팅을 날리자 김태영과 이임생, 이상헌이 동시에 몸을 날려 이를 저지했고 상대의 강슛에 얼굴을 들어 방어하는 위험천만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후반 종료 직전 붕대를 칭칭 감은 이임생의 얼굴에서는 또 다시 피가 흘렀다. 태극전사들은 다리를 절며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야말로 ‘혈투’였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렇게 투혼을 발휘하는 한국에 벨기에 선수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결국 승부는 1-1로 막을 내렸다. 경기가 끝나자 한국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다. 비록 또 다시 월드컵 첫 승의 꿈을 4년 뒤로 미루게 됐지만 지난 두 차례 경기에서 졸전을 펼친 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대단한 정신력을 선보였다.

벨기에 언론에서는 “벨기에는 이미 탈락하고도 온몸을 던진 한국 축구에 배워야 한다”고 자국 대표팀에 비난을 쏟아냈고 제프 블래터 당시 차기 FIFA 회장은 “한국이 보여준 투혼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일깨워줬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IMF 사태를 맞으며 온 국민이 시름에 빠진 상황에서 보여준 투혼에 IMF 캉드쉬 총재도 이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 그는 “한국인의 저력을 느낀 경기였다. 4년 뒤 한국이 월드컵을 주최할 때는 이 투혼이 분명히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 경기는 지상파 3사 통합 74.7%의 시청률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여전히 기록 중이다. 한국 축구사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최고의 투혼이 펼쳐진 경기다.

투혼과 정신력은 촌스러운 단어가 아니다

이제 투혼이나 정신력은 스포츠에서 촌스러운 단어로 인식되고 있다. 기술과 과학이 중시되는 현대 축구에서 투혼과 정신력은 시대에 뒤처지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어떤 스포츠도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투혼과 정신력 없이는 빛날 수 없다. 때론 불가능할 것만 같은 승리를 따내는 건 투혼과 정신력이 당연히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 병역 혜택 등 물질적인 이득이 걸려야만 최선을 다하는 행동은 스포츠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미 금메달이 물 건너 갔어도,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어도, 이미 병역 혜택이 사라졌어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스포츠인의 자세다. 이런 투혼과 정신력 없이 부와 명예, 혜택을 위해 그저 공만 차는 건 장사꾼과 바를 바 없다.

오늘 칼럼을 소개하기 위해 많이 고심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 나선 유상철은 전반전에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팀 닥터가 “뼛조각이 뇌로 들어갈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그 얼굴로 결승 헤딩골을 뽑아냈다. K리그 클래식 포항스틸러스는 2009년 우즈베키스탄 분요드코르 원정에서 1-3으로 패한 뒤 안방에서 투혼을 발휘해 4-1 승리를 거두고 그해 아시아 정상에까지 올랐다. 상무의 필드플레이어 이윤의는 승부조작 등으로 팀 내 골키퍼가 없자 생애 처음 골키퍼 장갑을 끼고 상대 공격을 온몸으로 틀어막았다. 안익수 감독은 부산 시절 맹장수술을 한 뒤 사흘 만에 복대를 차고 벤치에 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천수는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예선 스위스전에서 패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는 경기에 진 뒤 분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한국 축구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는 한국 축구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투혼과 정신력은 촌스러운 단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