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능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받고 고민할 것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울산의 에스티벤과 전남의 코니, 그리고 제주의 산토스요.” 비록 수도권 빅클럽에 속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산토스는 개인적으로 FC서울 데얀에 버금가는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산토스를 주목한 이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 ‘작은 영웅’이 K리그 무대를 떠났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도 별로 없다. 오늘은 K리그를 더욱 풍성하게 했던 ‘작은 영웅’ 산토스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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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제주에 입단한 산토스의 모습. 이때만 하더라도 산토스의 성공을 예견한 이는 없었다. (사진=제주유나이티드)

작은 키와 첫 해외 진출, 단점만 보이던 산토스

사실 2010년 산토스가 제주 유니폼을 입었을 때 나 역시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165cm의 단신인 그는 브라질 2부리그를 전전한 평범한(?) 선수였다. 키를 조금 더 부풀려 말해온 나로서는 그의 키가 정말 165cm가 되는지도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산토스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해외 무대를 밟아보지 않은 채 브라질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었다. 적응에도 무리가 있어 보였고 기량도 의문이었다. 20대 중반이 넘도록 국내에서만 활약한 브라질 선수라면 K리그에서의 성공이 회의적인 게 사실이다. 산토스는 “브라질을 떠나 첫 해외 무대를 밟는 것이라 걱정도 됐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제주 구단 역시 키가 작은 산토스의 활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발재간은 수준급이었지만 워낙 거친 K리그에서 이런 단신 선수가 통할지는 반신반의했다. 박경훈 감독도 “키가 작은데 헤딩골을 넣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산토스는 자신이 넘쳤다. “6개월 후에 다시 나에 대해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또한 첫 해외진출이었지만 적응도 빨랐다. 고등어와 불고기는 물론 된장찌개, 라면 등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젓가락질도 능숙했다. “한국이 너무 좋고 제주가 너무 좋다”는 그는 “마치 브라질에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이곳은 너무 편하다”면서 제주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고 반드시 K리그에서의 성공이 필요했다.

한 번은 제주에 가 그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나를 본 산토스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꾸벅했다. 그러더니 대뜸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가 자기보다 세 살이 많다는 사실을 알자 “형”이라면서 웃었다. 아마 이때 나보다 작은 K리그 선수는 처음 본 것 같다. 그는 인터뷰 도중 오가는 직원들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외모만 브라질 사람이었지 행동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산토스는 늘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형, 동생”하면서 지냈다.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선수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산토스의 행동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신선함이었다. 그의 이런 성실함과 겸손함은 경기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양 팀 통틀어 가장 작은 산토스는 늘 가장 부지런하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처음 그의 등장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관중들도 어느덧 산토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제주 축구의 새 역사를 쓰다

산토스는 K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2010년 대성공을 거뒀다. 28경기에 나서 14골 5도움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2010년 성남전을 비롯해 매번 헤딩 골을 넣을 때면 그는 바로 박경훈 감독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지금 머리로 넣는 것 보았느냐’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작은 키의 산토스는 언제나 이렇게 당당했다. 당시 제주의 돌풍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결국 산토스를 앞세운 제주는 챔피언결정전에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서울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한 골을 기록한 그는 2차전 원정경기에서도 골을 뽑아내며 자신의 진가를 선보였다. 비록 서울에 우승을 내주면서 데얀이라는 K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에 가리고 말았지만 산토스의 맹활약은 제주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대단했다.

2011년 제주는 혹독한 시기를 겪었다. 구자철이 독일에 진출했고 박현범과 조용형, 김호준 등도 팀을 떠났다. 또한 신영록은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제주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그럼에도 산토스의 활약은 빛났다. 29경기에 나서 14골 4도움을 기록하며 2010년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친 것이다. 산토스가 제주 공격을 거의 혼자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2011년 8월에 열린 대전과의 경기에서는 혼자 두 골 1도움을 올리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 불안으로 팀의 3-3 무승부를 지켜봐야만 했다. 수도권 빅클럽이 아닌 탓에 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데얀이나 몰리나, 라돈치치에 버금가는 뛰어난 공격수였다.

2012년은 산토스가 얼마나 제주에 필요한 선수인지 보여준 한해였다. 산토스는 2012년 7월 28일까지 22경기에 나서 13골 9도움이라는 믿기지 않는 공격 포인트를 올렸고 팀도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공격 포인트는 당시만 하더라도 K리그 전체를 통틀어 1위였다. 이대로만 기세를 이어간다면 2010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찾을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8월 1일 열린 대전과의 FA컵 8강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전반 시작 1분 만에 상대 선수와 충돌한 산토스는 심한 무릎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교체되고 말았다. 전력의 절반이라는 평가를 받던 산토스의 부상에 제주는 걱정이 컸고 산토스 역시 빠른 복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딱 한 달 뒤 산토스는 포항과의 FA컵 4강전에 나섰다. 하지만 또 다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부상이 재발한 것이었다.

산토스가 제주에서 차지하는 비중

산토스는 또 한 번 기나긴 재활 훈련에 돌입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산토스가 빠진 제주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산토스가 없는 동안 무려 10경기 연속 무승(4무 6패)이라는 최악의 부진에 빠지고 만 것이다. 산토스가 없으니 자일도 터지질 않았다. 그만큼 제주에서 산토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했다. 제주는 산토스 부상 이후 69일 동안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시 산토스가 돌아온 뒤 치른 11경기에서 4승 5무 2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제주 팬들은 김은중이나 구자철보다 산토스의 이름을 더 크게 연호했고 부상 당한 산토스가 돌아오면 경기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언제나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장 든든한 선수가 바로 산토스였다.

K리그에서 3년 동안 눈부신 기록을 남기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산토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결국 중국 무대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제주 우한 줘얼이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산토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쳐 결국 3년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언제나 그라운드에서 가장 성실하게 뛰었던 우리의 ‘작은 영웅’을 더 이상 K리그에서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슬프다. 많은 외국인 선수가 K리그에 오고 가지만 나는 산토스의 활약과 작별에 대해서는 반드시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까지 적어도 데얀에 버금가는 가장 뛰어난 외국인 선수는 산토스였다. 다만 그의 소속이 빅클럽이 아니었을 뿐이다. 또한 한 가지 오해가 있다면 그의 양쪽 무릎 십자인대가 부상으로 모두 없어졌다는 말은 잘못된 이야기다. 이 소문에 대해 산토스는 “십자인대 없이 축구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내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게 와전된 것 같다”고 했다.

165cm의 산토스는 언제나 그라운드에서는 가장 큰 선수였다. 산토스는 “작은 키가 언제나 약점으로 지적되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에 신경을 쓰면 자신감이 떨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냥 듣고 흘린다. 세상을 보면 꼭 큰 사람만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작은 사람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노력의 여부이지 키가 아니다. 누가 더 인기가 있고 누가 더 주목을 받는지도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나 운동장에서 능력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능력만 보여주면 당신처럼 나를 주목해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제주도까지 내려와 인터뷰를 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작은 거인’ 산토스가 제주에서 보낸 3년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 그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산토스 동생, 한국의 형들이 언제나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