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이 별로 좋지 않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내 앞으로 끼어드는 차를 보면 욕부터 나온다. 운전대만 잡으면 워리어로 변신한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이들을 보며 정신 수양을 더 할 필요가 있다. K리그라는 전쟁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정신으로 경기에 나서는 이른바 ‘멘탈의 신’들이다. 부처와 예수를 능가하는 이 시대 최고의 ‘멘탈 종결자’ 10명을 만나보자.

10. 남기일

남기일은 2003년 9월 부천SK 유니폼을 입고 전남 원정을 떠나 광양축구전용구장에 섰다. 경기 내내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전남 팬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 남기일은 후반 40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전남 팬들에게 다가가 총 쏘는 시늉을 했다. 그냥 한두 발 쏜 게 아니라 아예 따발총을 날렸다. 총을 쏴도 한 번만 쏴야하는데 너무 많이 쐈다. 물론 따발총에 난사(?)를 당한 전남 팬들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흥분한 몇몇 전남 팬들은 그라운드에 난입해 이렇게 외쳤다. “저 놈 잡아라.” 졸지에 그라운드에서 남기일 납치 작전이 펼쳐졌다. 결국 남기일은 경기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과문을 올리고 벌금 400만 원의 징계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게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남기일은 얼마 뒤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신이 트레이드 됐다는 이야기였다. 혹시나 하지 말자. 당연히 남기일이 새롭게 옮긴 팀은 전남이었다. 전남은 김길식에 2억 원을 얹어 남기일과의 트레이드에 성공했다. 졸지에 적과 동침하게 된 남기일의 심기는 불편했다. 전남 서포터즈 역시 구단에 공식적으로 남기일 영입에 대한 질의서를 보내는 등 대놓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남기일은 2004년 대구와의 개막전에서 전남 팬들 앞으로 가 사죄의 큰절을 올렸지만 전남 팬들은 결국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1년 내내 그 누구의 환호도 받지 못한 채 뛰어야 했다. 전남에서 무려 29경기를 이렇게 쓸쓸히 뛰면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아마 나라면 ‘멘붕’으로 일찌감치 은퇴했을지도 모른다.

9. 김남일

수원 팬들은 김남일을 좋지 않게 바라본다. 아니 좋지 않게 바라보는 정도가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김남일에게 분노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2007년 수원 소소이던 김남일은 부상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 뒤 J리그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어 수원 팬들의 분노를 샀다. 부상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원 구단에서 통역까지 제공해줬지만 결국 김남일은 수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원 팬들은 김남일을 ‘김배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김남일이 K리그로 돌아와 인천 유니폼을 입고 지난 3월 11일 수원과 맞붙었으니 당연히 수원 팬들은 김남일에게 야유를 퍼붓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후반 교체 투입돼 김남일이 그라운드를 밟자 귀청을 찢을 듯한 야유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뒤덮었다. 후반 45분 내내 야유는 이어졌다.

경기가 끝난 뒤 김남일이 저벅저벅 수원 팬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평소 불 같은 성격의 김남일이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이들을 줘 패러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김남일은 야유를 보내는 팬들 앞에 다가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순간 야유하던 팬들이 당황했다. 김남일이 수원 팬들 앞에서 인사를 하는 건 이들의 매뉴얼(?)에는 없었다. 쉬지 않고 야유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몇몇 팬들은 야유 대신 박수를 보냈다. 김남일은 이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원의 선수였다. 나에게 응원을 보내던 팬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그가 J리그로 떠난 과정이야 논란을 일으킨 건 분명하지만 야유와 욕설을 보내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 만큼은 진정한 ‘멘탈의 신’이었다.

8. 김형일

지난 2009년 7월 포항은 강원 원정을 떠났다. 후반 37분 1-0으로 이기고 있던 포항은 황재원이 페널티킥을 허용해 위기를 맞았다.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내준 포항의 김형일은 승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 터치라인에 있던 물통을 발로 찼다. 그런데 이 물통은 의도치 않게 강원 김영후 쪽으로 날아갔고 화가 난 강원 팬들은 김형일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몇몇 관중은 그라운드에 물통을 던지기도 했다. 강원은 김영후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지만 후반 종료 직전 데닐손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해 결국 1-2로 패하고 말았다. 예민해진 강원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화를 가라 앉히지 못했다. 강원 팬들은 본부석 선수 출입구 앞에 진을 치고 김형일을 기다렸다. 경찰까지 출동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그런데 공동취재구역에 나타난 김형일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팬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김형일이 강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욕설이 쏟아졌다. 그런데 김형일은 90도로 고개를 숙인 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강원 팬들도 지금껏 본 적 없는 선수의 진심 어린 사과에 박수를 쳐주면서 “앞으로는 잘 하라”고 했다. 김형일은 이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페널티킥을 내줘 화가 나 잘못된 행동을 했다. 잘못했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한다.” 평소 김형일은 거친 플레이를 펼친다고 지적 받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플레이 스타일이지 그의 원래 성격이 아니다. 그라운드 밖에서 김형일은 늘 남을 먼저 배려한다. 나는 2010년 대표팀에 소집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던 김형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물을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운데 참 고생이 많으시네요.” 선수가 먹는 물을 선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이 남자 갖고 싶다.

7. 대전팬

대전시티즌 만큼 말이 많은 구단이 또 있을까. 만년 하위권인 대전은 참 바람 잘 날이 없다. 최윤겸 감독 시절 때는 감독과 코치의 폭행 사건으로 논란에 휘말렸고 이후 정치적인 목적을 띄고 온 사장으로 고생한 적도 많다.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당시 가장 많은 선수(9명)가 연루된 것도 대전이었다. 승부조작 사건이 가라 앉자 이번에는 최은성 사건(?)이 터졌다. 신임 사장이 대전의 레전드인 최은성을 내치자 대전 팬들은 또 다시 분노했다. 결국 사장이 사퇴하고 최은성은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레전드가 팀을 떠나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것만큼 충격적인 일이 또 있을까. 대전은 한 가지 사건이 마무리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는 참 신기한 구단이다.

그런데 이 팀 팬들은 여전히 충성도가 높다. 그라운드 안에서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는 대전 팬들은 늘 그라운드 밖에서도 정의를 위해 누군가와 싸워야 했다. 물론 이 팀을 응원하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돈 받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대전시티즌 콜리더 최해문 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전은 참 바람잘 날 없는 구단이지만 누가 이 팀을 응원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이 팀을 응원하는 건 그냥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성명서나 질의서를 내야 할 팬들이 있다면 대전 팬들에게 문의하라. 대전 팬들이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다. 성적도 좋지 않고 늘 말썽을 일으키는 구단이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고 대전을 응원하는 팬들이야말로 진정한 ‘멘탈 종결자’들이 아닐까. 이런 팬들이 있기에 말썽 많은 대전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닐까.

6. 김신욱

지난해 11월 수원과 울산의 K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는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울산 김신욱이 승부차기 키커로 성큼성큼 골문 앞으로 다가갔다. 상대는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이었고 그의 눈 앞에는 수 많은 수원 팬들이 자리를 잡은 채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김신욱은 힘차게 슈팅을 하기 위해 도약하더니 정성룡이 몸을 날리자 예쁜 포물선을 그리면서 힘 없이 한 가운데로 향하는 슈팅을 날렸다. 골망은 그렇게 출렁였다. 국가대표 골키퍼를 상대로,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슈팅을 날린다는 건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김신욱은 승부차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뒤 수원 서포터스석을 바라보며 자신의 귀에 손을 갖다 댔다. “더 떠들어보라”는 의미였다. 수원 팬들은 분노했지만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신욱은 “사실 그 세리머니를 하면서 겁도 좀 났다”고 했지만 이렇게 수 많은 상대팀 팬들 앞에서 허를 찌르는 골을 뽑아낸 뒤 도발적인 세리머니를 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이거 나중에 <강심장>에 나가 이야기를 꺼내면 1등할 수 있는 소재다. 이런 멘탈이라면 2002년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 데리고 자비를 털어 술 먹였던 홍석천을 능가한다. 갸루상, 아니 김신욱은 보통 사람이 아니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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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너희들 야유가 잘 안 들리거든?” 김신욱의 간 큰 도발 세리머니. (사진=울산현대)

5. 오재석

2010년 12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홍명보 자선축구가 열렸다. 경기가 끝난 뒤 다른 선수들이 유유히 라커룸으로 사라질 때 오재석은 관중석 밑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관중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건넸다. 이 관중은 오재석이 전달한 유니폼을 받아 들고는 감격에 빠졌다. 단순히 시즌이 끝난 뒤 선수가 팬에게 유니폼을 선물하는 것도 감동적인 일이었지만 오재석은 유니폼에 이 팬을 위한 특별한 편지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써도 성가실 텐데 유니폼에 빼곡이 글자를 써 넣었다. 이 팬은 며칠 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평소 자신을 전폭적으로 응원해주던 팬이 군대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안 오재석은 ‘유니폼 편지’를 통해 작별 인사를 전했다.

“수원과 너를 알게 돼 감사하다. 크게 빛이 나지 않았어도 작은 빛에도 기뻐해주는 네가 있어 정말 행복했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올 한해 나와 우리가 입고 달린 유니폼이 좋은 의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선물한다. 내년에는 우리 둘 다 옆구리 충전하자.” 한 명의 팬을 위해 이런 특별한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후배가 군대에 간다고 해 호프집에서 위로를 하다가 장난 삼아 신청곡으로 ‘이등병의 편지’를 틀어 눈물 바다를 만들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분 좋게 군대에 간 이 팬이 제대 후 수원에 오재석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멘붕’을 당할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4. 황진성

올 해 4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 프로축구연맹 사무실에는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연맹 직원들은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인 이 택배를 풀어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자에는 떡이 가득 들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9라운드 MVP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가 보낸 택배일까. 바로 포항의 황진성이었다. 전북과의 9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K리그 통산 29번째 30-30클럽에 가입한 황진성이 K리그 9라운드 MVP에 뽑힌 뒤 연맹에 보낸 감사의 표시였다. 연맹 직원은 황진성의 뇌물(?)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에게는 떡이 왕따를 위한 도구로 쓰이지만 황진성에게 떡은 감동을 전하는 도구로 쓰였다.

황진성은 늘 겸손하다. 며칠 전 전화를 해 두 라운드 연속 MVP를 수상한 그에게 축하를 보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냥 운이 좀 좋았어요.” 아마 나 같으면 K리그 두 라운드 연속 최고의 선수가 됐다는 사실에 온갖 건방을 떨었을 테지만 황진성은 달랐다. 겸손과 고마움을 아는 선수다. 지난 주 포항에 내려가 연락을 했더니 경기가 끝나고 피곤할 텐데도 나에게 10만 원이 넘는 회를 쐈다. 다음날 FA컵 기자회견 때문에 서울에 가야하는 일정이었지만 멀리에서 온 손님이라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나보다 동생이지만 나는 회를 염치 없게 얻어 먹은 뒤 이렇게 다짐했다. ‘앞으로는 진성이 형이라고 불러야지.’ 진성이 형은 멘탈이 참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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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성이 프로축구연맹에 보낸 선물. 그는 늘 겸손하고 누군가에게 베풀 줄 아는 선수다. (사진=프로축구연맹)

3. 이영표

지난 2002년 7월 부천과 안양의 경기에서는 종료 5분 전 양 팀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비에서 공을 걷어낸 부천 이임생은 이후 이영표가 고의적으로 자신과 충돌했다고 생각해 이영표의 머리를 쥐어 박았고 이영표는 두 손을 들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기가 속개된 뒤 또 다시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를 참지 못한 이임생은 이영표에게 다가가 한 차례 더 폭력을 썼다. 이임생은 “야, 너 이리 와”라면서 이영표를 불러 세웠다. 양 팀 선수들이 말렸지만 이임생는 진정하지 못하고 화를 냈다. 그런데 이때 이임생 앞에 선 이영표는 허리를 숙여 사과를 전했고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이임생이 비난 받는 걸 유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임생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후 이임생은 이영표와 전화통화를 해 서로 오해를 풀었고 자신이 백 번 잘못한 일이라면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임생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이를 꾹 참고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이영표의 자세를 더 주목하고 싶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에게 이렇게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이런 강력한 멘탈이 있었기 때문에 이영표가 훗날 유럽에서도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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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은 독일에 진출했지만 시간이 허락하면 늘 제주와 K리그에 대한 응원을 잊지 않는다. 제주에서 팬들과 만나는 구자철의 모습. (사진=제주유나이티드)

2. 구자철

요새 들어 구자철의 TV출연이 잦아졌다. 아마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구자철에게 국가대표 생활이나 유럽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구자철은 늘 K리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해서는 김용만에게 “기사가 날 때까지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인증샷을 올려 달라”고 했고 최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기성용편에서도 전화 인터뷰를 통해 K리그에 관해 언급했다. 많은 이들은 구자철이 기성용의 사생활에 대해 폭로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내 귀에는 그의 마지막 말이 확 들어왔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K리그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구자철은 독일에 진출해 있지만 여전히 K리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구자철은 한국에 오면 늘 4년 간 뛰었던 제주를 방문한다. 일일 해설위원으로 제주를 응원하기도 하고 같은 시기에 함께 뛰지는 않았지만 제주 유니폼을 입고 쓰러졌던 신영록의 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제주를 찾아 팬들에게 감자 1982개를 쏘기도 했던 구자철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 팀과 K리그를 응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럽과 남미의 스타 플레이어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 팀에서 마무리하는 모습을 부러워했던 K리그로서는 “영향력 있는 선수일 때 K리그에 돌아오고 싶다”는 구자철의 자세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멋진 마인드를 가졌는데 좀 구글거리면 어떤가. 몇 년 후 유럽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마친 그가 제주에 돌아와 이런 말 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아, 신난다. 아, 제주다.”

1. 김병지

내가 보기에 김병지는 이제 단순한 K리그 선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다. 많은 사랑을 받는 축구선수라면 실력뿐 아니라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김병지는 참 대단한 인물이다. 김병지는 그라운드에서 행동 하나 하나 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도 참 훌륭한 멘탈을 지닌 선수다. 김병지는 트위터를 통해 K리그의 타이틀 스폰서인 현대오일뱅크 주유 영수증 30장을 모은 팬에게 친필 사인 유니폼을 직접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귀찮을 수도 있지만 K리그와 팬들을 위한 작은 아이디어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서경덕 교수, 배우 박하선 등과 함께 여수 엑스포 유랑단을 선발해 개인 비용으로 일반인들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한 것도 참 대단하다.

부산 소년의 집 출신인 김병지는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12명의 소년의 집 축구선수들에게 직접 남아공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자비를 들여 후원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경기도 남양주시에 유소년 전용 축구장을 만들어 이를 남양주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유소년 전용 축구장을 20개까지 만든다는 것이 김병지의 새로운 목표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많지만 이렇게 사회에 봉사하고 모범이 되는 선수는 몇 없다. 장기기증증서에 서약하고 불우이웃돕기에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지 등 사소한(?) 선행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김병지 같은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K리그는 더 발전한다.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멘탈의 신’으로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