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2012 런던올림픽 때문에 살 맛 난다. 연일 들려오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하다. 메달도 메달이지만 부상을 당하던 순간까지 바벨을 놓치 않던 역도 사재혁의 이야기는 무척 슬프면서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배드민턴의 고의패배 탈락은 너무나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토너먼트에서 같은 국가 선수들과의 대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경기에서 패한다는 건 스포츠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중국이 먼저 시작해서 우리도 했다”는 건 핑계가 될 수 없다. 4년 동안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선수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정정당당하지 못한 승부를 펼친 이들에게는 실격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올림픽에서 그런 경기를 할 거라면 ‘약수터 이용대’인 내가 나갔어도 될 일이다.

‘카드 세탁’이 아무렇지도 않은 K리그?

얼마 전 나는 두 장의 경고를 받고 있는 선수가 다음 경기를 쉬고 카드를 소멸하도록 일부러 경고를 받는 이른바 ‘카드 세탁’ 의혹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지금껏 은연중에 K리그 ‘카드 세탁’이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이는 없었다. 상당한 이슈가 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칼럼을 통해 두 명의 선수에 대해 언급한 뒤 충격적인 이야기가 전해졌다. 사실 이 두 선수는 ‘카드 세탁’ 의혹이 짙었지만 본인 스스로 이를 인정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도 ‘카드 세탁’이 벌어졌고 감독 스스로가 이를 인정한 것이다. 울산은 경기 막판 평소에 코너킥을 차지 않는 김신욱이 코너킥을 차기 위해 시간을 끄는 이상한 행동을 했고 김호곤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에게 “내가 시킨 것이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라운드 경기 상대인 대전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 경기에서 쉬고 경고를 소멸하기 위해 그랬다”고 덧붙였다.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던 ‘카드 세탁’을 감독 본인이 스스로 인정한 충격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일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 ‘카드 세탁’에 대해 정황만 있었을 뿐 당사자가 직접 이를 인정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문제를 이제는 공론화 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칼럼에 언급했던 두 선수도 다음 상대 대전전을 쉬기 위해 그랬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김신욱 또한 대전전을 앞두고 ‘카드 세탁’을 행했다. 심지어 당시 울산은 부산에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막판 시간을 끌었다. 졸지에 대전은 K리그에서 가장 만만한 ‘카드 세탁기’가 됐다.

이 문제를 다시 꺼낼 필요가 있었다. 칼럼을 쓰고 난 뒤 김호곤 감독이 ‘카드 세탁’을 인정하자 숱한 이메일이 왔다. “서울의 ‘카드 세탁’에 대해 비판했으면 똑같이 김호곤 감독을 비판하라. 특정팀 까기가 아니라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이 문제를 다시 칼럼 주제로 꺼내지 않은 건 지금껏 똑같은 내용으로 연이어 칼럼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카드 세탁’ 의혹 칼럼에서 외국 사례까지 들어 소개했는데 똑같은 내용으로 똑같은 칼럼을 쓰는 건 솔직히 나도 편하게 글 쓰고 돈 버는 일이다. 그냥 지난 칼럼에 이름만 바꿔 쓰면 칼럼 하나 또 나온다. 하지만 지난 칼럼과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며칠 이 상황을 지켜봤다. 적절한 시기에 칼럼을 또다시 쓰기 위해서였다.

전략이 될 수 없는 ‘카드 세탁’

그런데 최근 올림픽에서 고의 패배가 일어났다. 고의 패배와 ‘카드 세탁’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고의 패배가 훨씬 더 불량한 사건이다. 하지만 일부러 좋지 않은 상황을 연출하면서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플레이를 했다는 건 고의 패배와 ‘카드 세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의적으로 셔틀콕을 경기장 바깥으로 쳐내는 행위와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어 경고를 받는 행위는 경중을 따질 것 없이 똑같이 정정당당하지 못한 플레이다. 적어도 정정당당한 플레이에 위배되는 건 무대와 종목이 다를 뿐 고의 패배와 ‘카드 세탁’이 비슷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를 공론화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여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칼럼을 쓴다.

‘카드 세탁’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배드민턴의 고의 패배 역시 똑같은 하나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보다 마음에 드는 대진을 위해 패하는 것과 경고를 소멸한 뒤 보다 좋은 환경에서 경기에 임하기 위해 일부러 옐로우 카드를 받는 것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드민턴의 고의 패배를 전략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만약 팬들이 이를 전략으로 인정한다면 고의 패배를 실행에 옮긴 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선택을 했다”면서 박수를 보냈어야 하지만 실제로 이 일이 벌어지자 관중들은 거센 야유를 보냈고 결국 이들은 올림픽에서 실격되고 말았다. 고의 패배가 전략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일부러 지는 것과 일부러 경고를 받는 행동은 사실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부러 패하면서 다음 경기에서 더 강한 상대와 맞붙어야 하고 일부러 경고를 받으면서 다음 라운드에는 경고 누적 결장이라는 페널티를 안아야 한다.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략도 정당한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스포츠라는 게 더 많은 점수를 내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뛰고 더 높이 뛰는 등 인간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시험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일부러 점수를 내주고 일부러 페널티을 받는 등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건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이번 칼럼을 잘 쓰고 돋보이기 위해서 지난 칼럼을 대충 썼다”고 하면 “김현회의 탁월한 전략”이라고 할까. 그러다 송대남한테 업어치기 당한다.

배드민턴의 실격에서 느낄 점은?

지금껏 K리그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카드 세탁’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기가 쉽지 않았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을 통해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증거 있느냐”고 했다. 나는 어느 정도 이 두 선수의 ‘카드 세탁’에 확신이 있지만 그렇게 묻는다면 “영상을 보고 직접 판단하는 것밖에는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칼럼을 쓴 뒤 보란 듯이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이번에는 감독이 이를 직접 인정했다. ‘카드 세탁’의 실체를 밝혀줬으니 김호곤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관중이 눈치 채지 못하게 ‘카드 세탁’하는 건 백 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경기가 끝난 뒤 감독이 이를 인정하는 건 그만큼 K리그에서는 ‘카드 세탁’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없다는 뜻이다.

올림픽은 고의 패배 선수들에 대해 즉각적인 실격 조치를 내렸다. 아마 이제 올림픽 무대에서 고의 패배를 하는 간 큰 선수는 없을 것이다. 강력한 징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 역시 이번 올림픽을 통해 느낀 점이 있어야 한다. 암암리에 성행하는 ‘카드 세탁’에 철퇴를 가하지 못하니 이제는 오히려 감독이 당당하게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연히 이 일에 철퇴를 가해야 또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한참 뒤 순위 싸움이 민감하고 강등팀을 정할 시기에 이 문제가 더 커져 그때 공론화하면 늦는다. 그때 가서 징계를 가하려고 한다면 아마 많은 팀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얼마 전 ‘카드 세탁’은 감독도 인정했는데 징계 없이 넘어가고 왜 우리만 징계를 받아야 하는가.”

결국 연맹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사실이 두렵거나 ‘카드 세탁’이 징계를 받을 만큼 중대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모든 구단의 ‘카드 세탁’을 용인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 어떤 리그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카드 세탁 인증 리그’가 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일부러 경고를 받았다”고 당당히 밝히는 감독이 더 늘어나는데도 연맹이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걷잡을 수 없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불법으로 바라보는 ‘카드 세탁’이 전술로 인정되는 유일한 리그가 되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카드 세탁’은 우리 팀이 했어도 옹호할 일이 아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구자철이 ‘카드 세탁’을 했는데 이것 역시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당시 여러 이슈에 묻혀 넘어갔지만 이에 대해 정확히 인지했다면 대회 측에서도 적절한 징계를 내렸을 것이도 나 역시 비판했을 것이다. 우리 팀이라고 잘못된 것도 감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카드 세탁’,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

또한 ‘카드 세탁’은 K리그의 취지였던 ‘5분 더 캠페인’과도 맞지 않는다. 지금은 K리그에서 더 이상 이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지 않지만 실질적인 경기 시간을 5분 더 늘이겠다는 의지는 변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카드 세탁은 시간 지연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카드를 받으려 일부러 상대에게 백태클을 가하지는 않으니 칭찬해야 할 일이 아니다. 고의적인 경고를 위해 시간을 끄는 행위로 그만큼 실질적인 경기 시간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 K리그는 어떻게든 플레이 타임을 늘이기 위해 캠페인까지 벌였는데 킥을 해야 하는 선수가 주심이 경고를 줄 때까지 멍하게 서 있기만 하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건 캠페인의 취지에 역행하는 일이다. 요새 1초가 얼마나 긴지 잘 알지 않나.

만약 중요한 경기에서 한 팀이 경기 막판 이기고 있어 시간 지연 행위를 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해보자. 이 자체로도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카드 세탁’이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으니 작정하고 경고 하나 받을 생각하고 시간을 끈다면 누가 이를 비판할 수 있을까. 경기가 끝난 뒤 “‘카드 세탁’하려고 그랬다. 이기고 있어 시간을 끈 게 아니다. ‘카드 세탁’은 연맹도 징계를 내리지 않는 정당한 전략 아닌가”라고 하면 이를 탁월한 전략이라고 인정해줘야 할까. ‘카드 세탁’은 충분히 문제가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행위다. 그 자체로도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단 몇 초라도 경고를 받기 위해 시간을 끄는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가는 팬들은 없다.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암암리에 시행되던 ‘카드 세탁’도 문제지만 이제는 감독이 직접 ‘카드 세탁’을 인정할 만큼 이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연맹은 징계는커녕 단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이전 ‘카드 세탁’을 처벌할 생각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못 박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카드 세탁’을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강력한 징계를 내리겠다”고 해야 한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이를 못 박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생긴 뒤 징계를 논하면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가 없다. 연맹의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유럽의 선진 리그 따라가려고 많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카드 세탁’ 징계라는 유럽의 훌륭한 자세는 왜 배울 생각은 하지 않는가.

연맹은 칼을 뽑아들어야 한다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오심 논란에도 한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정당당한 테두리 안에서 투혼을 선보이며 전세계적으로도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 대부분이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하고 있을 때 몇몇 선수의 그릇된 행동으로 한국 선수단 전체의 페어플레이 정신까지 훼손됐다. K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선보이며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데 몇몇 선수들이 전략의 일종이라면서 ‘카드 세탁’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많은 선수들까지 똑같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연맹이 칼을 뽑아들고 나설 차례다. 요새 펜싱 경기를 보며 규칙을 배웠는데 플뢰레는 상대 몸통만 찌를 수 있지만 에페는 상대방 전신 어디든 찌를 수 있다. 연맹은 ‘에페의 정신’으로 K리그에 숨어 있는 모든 편법을 찔러야 한다. 자, “알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