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6일)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한국과 멕시코의 B조 조별리그 첫 경기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단 한 골만 넣었다면 8강 진출을 향한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었는데 두고두고 아쉽다. 더군다나 일본이 스페인을 잡았으니 우리 속이 쓰리는 건 당연하다. 왜 일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속 쓰리게 하는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홍명보호를 격려하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싹 돌변했다. 하지만 나는 어제 열린 멕시코전이 성공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실패도 아니라 생각한다.

상대는 멕시코였다. 우리가 보기엔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 만큼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멕시코는 언제나 버거운 상대다. 멕시코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고 무승부를 거둘 수 있는 팀은 전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멕시코를 1승 제물로 꼽았던 걸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했던 것 같다. 우리가 2-0, 3-0으로 쉽게 잡을 수 있는 수준의 팀은 아니다. 멕시코에 비기고도 아쉬워할 만큼 한국 축구가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멕시코는 월드컵에서도 16강 진출이 기본인 나라다.

사람들은 내가 박주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병역 논란 이후 내가 박주영을 적대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병역 논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뿐 박주영의 실력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은 없다. 만약 어제 박주영이 아니라 이동국이나 김신욱 등 다른 공격수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력으로 봤을 때 박주영이 지나치게 비난받는다는 느낌이다. 이래놓고 만약 스위스전에서 박주영이 골이라도 넣는다면 또 분위기가 바뀔까. 부진해도 감싸는 소위 ‘박빠’와 잘해도 욕하는 ‘박까’가 박주영의 한 경기 한 경기 플레이에 따라 무슨 대통령 선거 지지율 변화하듯 상대를 제압하는 건 웃긴 일이다. 나는 솔직히 ‘박주영 병역 논란까’이기는 해도 ‘박까’일 이유는 없다.

구자철이나 김보경, 남태희 등의 지원사격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동국도 늘 대표팀에서 고립 문제로 고민했던 것처럼 어제 박주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지동원과 김현성의 컨디션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땅한 교체 카드도 부족했다. 고립된 상황에서도 개인기로 두세 명씩 제치고 골을 넣어야 위대한 공격수지만 그런 선수는 전세계적으로도 한두 명 뿐이다. 하나 불만인 건 프리킥 상황에서 박주영보다는 박종우나 기성용이 이를 전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이 둘의 프리킥 감각 역시 박주영 못지 않다. 또한 왼발 프리킥을 전담할 선수가 부족하다는 점도 약점이다. 어제 두 차례 프리킥 모두 왼발 키커가 있었다면 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몰리나 어디 갔나.

아쉬운 점은 또 있다. 홍명보호는 지나치게 슈팅을 아꼈다. 하늘로 향하든 골키퍼 품으로 안기든 일단 슈팅을 날려야 골이 터진다. 그런데 어제 홍명보호는 너무 슈팅이 부족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오늘 하이라이트 편집하는 PD는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였다. 결정적인 장면이라고는 기성용의 중거리슛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축구경기에서 완벽한 기회에 슈팅을 날릴 순간은 90분 동안 한 번 올까 말까다. 오히려 수세에 몰려 있다가도 역습으로 슈팅까지 날리는 멕시코의 플레이가 더 위협적이었다. 후반 종료 직전 골대를 맞고 나간 멕시코의 슈팅은 왜 이들이 강한 팀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걸 멕시코가 했다. 슈팅이 없으니 당연히 경기가 재미없었다. 사실 이거 우리나라 경기만 아니었다면 나는 어제 SBS의 <스타부부쇼 자기야>를 봤을 것이다.

김보경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왼발이 장기인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두 차례 오른발로 크로스를 연결했다. 만약 왼쪽에서의 상황이었다면 더 정확한 크로스로 박주영에게 공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스위스전에서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면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과감하게 왼발 슈팅을 날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보경은 “나 슈팅 때리니 너희가 맞고 죽든 골이 들어가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강력한 슈팅을 때릴 능력이 충분하다. 차라리 팽팽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의 무승부라면 만족했겠지만 강호 멕시코가 수비만 하는 경기였는데 슈팅이 없었다는 점이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하지만 이 정도면 크게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첫 경기를 그르치고 매번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이번 올림픽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가봉이 스위스와 비기는 등 혼전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첫 경기부터 조에서 가장 강하다는 멕시코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어도 경기를 주도하고 지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메이저 대회에서 이렇게 긴장하지 않고 첫 경기에 임하는 건 실로 오랜 만에, 아니 거의 처음 보는 일이다. 참 우리나라 축구 많이 컸다. 멕시코한테 비겼다고 이리도 만족하지 못할 만큼 많이 컸다.

잘한 선수들도 칭찬해 주자. 홍정호가 빠져 불안했던 수비진이 멕시코를 상대로 무실점했다는 점이 부진한 공격진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는 건 아쉽다. 어제 경기 수비력은 한국과 주심이 동급이었다. 특히 실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오른쪽 풀백 김창수가 안정된 활약을 선보였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부산은 희생하는 마음으로 시즌 중에 김창수를 와일드 카드로 올림픽 대표팀에 보내줬지만 아마 어제 경기를 보고 불안해졌을 것이다. 이 정도 경기력이라면 유럽에서도 눈독을 들일 만하다. 기성용의 안정감이야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답답하면 우리보고 뛰라고 했는데 기성용이 뛰는 게 제일 낫다. 답답해도 기성용이 뛰길 바란다. 성인 대표팀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선수가 아직도 올림픽 대표팀 연령이라는 건 한국 축구에 큰 축복이다.

우리는 지금 홍명보호를 비난할 때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톱시드이면서도 경기 내내 한국에 밀리고 무승부를 거둔 멕시코 언론과 팬들은 아주 들고 일어나야 한다. 홍명보호가 톱시드를 상대로 경기를 주도하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욕 먹을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어제 한국은 성공한 경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경기를 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하자. 어제 경기력 비판은 하지만 비난은 하지 않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