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21라운드 8경기가 열렸다. 이틀 동안 열린 이번 라운드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마 잠시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갔다 돌아온 이가 있다면 다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놀라운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진 이번 라운드를 되짚어 보자. 프랑스 칸에는 ‘칸 영화제’가 있고 이탈리아 베니스에는 ‘베니스 영화제’가 있고 네이트에는 ‘김현회의 내 멋대로 어워드’가 있다. 이번 라운드 수상자를 공개한다.

설상가상 - 수원

포항에 0-5, 경남에 0-3으로 충격패를 당한 수원은 이번 라운드에서 전북을 맞아 또 다시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팬들도 등을 돌린 모습이다. 팬들은 경기 도중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향해 ‘베짱이를 위한 응원은 없다’라는 걸개를 내걸고 “뛰지 않는 선수는 나가라”고 했다. 윤성효 감독을 향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퇴진”과 “집에나 가라”라는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수원은 “윤성효 감독의 경질은 없다”고 했지만 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있다. 경기력도 좋지 않고 팬들도 등을 돌린 수원은 설상가상이다. 수원이 한 순간에 이렇게 추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름다운 작별상 - 루이스

전북 루이스가 수원전을 끝으로 정든 K리그를 떠나게 됐다. 2008년 수원에 입단한 뒤 2008년 시즌 중반부터 전북 유니폼을 입고 팀의 두 차례 우승을 이끈 루이스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리그 알 샤밥으로 이적했다. 지난해 울산과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한 그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후반 41분 팀의 세 번째 골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전북은 계약기간이 6개월 남아 있지만 조건 없이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의 헹가레를 받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전북에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행복했다”고 전했다. K리그에서 124경기에 출전해 26골 24도움을 기록하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루이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길 기원한다.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우리 서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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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전을 마친 뒤 팬들을 향해 인사하러 가는 루이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사진=전북현대)

거상 - 부산아이파크

공익근무를 마친 장학영이 K리그로 돌아왔다. 성남 소속이던 장학영은 이제 부산 유니폼을 입고 뛴다. 부산의 장학영은 전남을 상대로 이번 라운드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다시 K리그 팬들에게 인사했다. 챌린저스리그 서울유나이티드에서 줄곧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K리그를 2년 동안 떠나 있어 장학영의 능력에 의심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학영은 이날 경기에서 몇 차례나 결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는 등 오히려 2년 전보다 더 발전된 기량을 뽐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부산이 성남으로부터 장학영과 현금 15억 원을 받고 한상운을 내줬다는 점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한상운은 성남으로 이적해 변변치 않은 플레이를 펼치다가 결국 J리그로 떠났다. 한상운을 내주고 장학영과 현금 15억 원을 얻은 부산 구단에 ‘거상’을 수여한다. 장사 한 번 제대로 했다.

불상 - 조르단

경남 조르단은 이번 라운드 포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하고 퇴근하기 위해 힘없이 자신의 자가용으로 간 뒤 깜짝 놀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차량 앞바퀴에 펑크를 냈기 때문이다. 이날 부진한 플레이에 앙심을 품고 송곳으로 타이어를 찌른 것이었다. 결국 조르단은 쏟아지는 폭우를 맞고 있다가 까이끼의 자가용을 얻어 타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경기에서도 지고 타이어도 펑크난 조르단이 바로 ‘불상’의 주인공이다.

밥상 - 제주유나이티드

제주유나이티드는 요새 참신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소속 선수의 이름으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음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서동현은 충무김밥을 쐈고 홍정호는 비빔밥을 쐈다. 산토스는 소세지를 관중에게 선물했고 권순형은 떡볶이를 제공했다. 이러다가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 맛집 하나 차릴 기세다. 이번 라운드 대전과의 홈 경기에서도 허재원이 나섰다. 허재원은 경기에 앞서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며 수박 화채 1,982인분을 시원하게 쐈다. 관중들은 화채를 먹으며 제주가 대전을 4-1로 잡는 시원한 경기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1,982개를 쏘는 제주는 다음 라운드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도 자일이 나초 1,982인분을 팬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다음부터는 캐비어나 랍스터 등도 한 번 쐈으면 좋겠다.

포상 - 이상협 이병

한때 K리그에서 주목받았던 이상협은 어느 순간부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대전으로 팀을 옮겨 다니면서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K리그에서 이상협을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최근 상무에 입단한 이상협은 기초 군사 훈련도 미룬 채 곧바로 팀에 합류해 대구를 상대로 K리그 경기에 나섰다. 그는 대구에 0-1로 뒤지던 후반 38분 통렬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누가 군대를 시간낭비라고 했던가. 이상협에게 군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보여준 라운드였다. 이상협에게 ‘포상’과 함께 부상으로 맛다시를 선물한다. 부대장에게 건의해 TV연등 조치도 이뤄질 수 있도록 해보겠다.

비상 - 유현

인천이 서울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이 일어났다. 인천이 서울과의 경기에서 후반 종료직전 터진 빠울로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짜릿한 3-2 승리를 거뒀다. 두 골을 기록한 한교원과 결승골을 뽑아낸 빠울로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누가 뭐래도 인천 골키퍼 유폰, 아니 유현의 환상적인 선방이 가장 빛나는 한판이었다. 유현은 이날 경기에서 후반 중반 고광민의 완벽한 슈팅을 막아내더니 데얀의 페널티킥까지 잡아냈고 후반 종료 직전 또 다시 고광민의 슛을 몸을 던져 선방하는 등 후반에만 무려 세 번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냈다. 슈퍼세이브 해트트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 유현에게 인천을 상징하는 단어인 ‘비상’을 수여한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전에 나한테 와서 상 받아가길 바란다.

좋은 현상 -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빠울로의 골은 극적이었다. 상황이나 득점 장면이 10년 전 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안정환의 골든골 같았다. 빠울로는 남준재가 크로스를 연결하자 솟구쳐 올라 살짝 방향만 바꾸는 백헤딩으로 팽팽하던 승부에 쐐기를 박은 후 곧바로 골대 뒤 인천 팬들에게 달려가 팬들과 부둥켜 안았다. 관중석에서 욕을 하면 선수들이 알아듣고 노려볼 정도로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거리가 가까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었기에 가능한 골 세리머니였다. 지금껏 이 경기장에서 개장 후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하지 못했던 인천이 경기장 값을 제대로 한 순간이었다. 참 좋은 현상이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좋은 현상’을 수여한다.

외상 - 몰리나

서울에는 ‘에이스’ 몰리나가 없었다. 경고누적일까? 부상일까? 아니다. 외상값 받으러 갔기 때문이다. K리그에 오기 전까지 브라질 산투스에서 뛴 몰리나는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받지 못한 돈이 상당한 거액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용수 감독은 “돈 받으러 다녀오라”고 몰리나를 브라질로 보내줬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몰리나가 고민을 해결하는 게 앞으로를 위해서도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리나 없이 뛴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몰리나의 날카로운 프리킥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브라질에서 외상값 다 받고 돌아오면 동료들에게 거하게 한 턱 내야한다.

치명상 - 남인천방송

인천-서울전은 남인천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중계하지 않아 경기장에 가지 못한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남인천방송 중계를 지켜봤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 팬 뿐 아니라 서울 팬들 역시 인천 편향 중계인 이 방송을 봐야 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서울 팬들의 심기가 불편한 해설이 쏟아졌다. 서울 선수들의 사소한 플레이에도 공격적인 발언이 이어졌고 데얀의 페널티킥이 막히는 순간 해설진은 이렇게 말했다. “정의가 승리합니다.” 이 중계를 보며 서울을 응원했던 이들에게는 가뜩이나 경기에서도 졌는데 해설 때문에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서울 팬들에게 치명상을 입힌 남인천방송에 ‘치명상’을 수여한다. 그리고 서울 팬을 떠나 상대팀 편향 중계를 보며 비난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 마디만 하자면 남의 방송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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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전국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하지만 K리그는 그래도 계속된다. (사진=강원FC)

대상 - 장마도 막을 수 없는 열기

이번 라운드는 수영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치러진 경기에서 선수는 뛰고 있는데 공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축구 경기는 정말 오랜 만에 보는 것 같았다. 다른 라운드에 비해 장마로 인해 현저하게 적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실패한 라운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 뛰는 선수들이 멋졌고 우산과 우비도 거부한 채 함께 선수들과 비를 맞으며 응원을 보내는 관중들은 더더욱 멋졌다. 누군가에게는 장마와 함께 관중이 사라진 리그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장마를 통해 많은 이들이 K리그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