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 선수가 2009년 처음으로 K리그 성남에 입단했다. 호주와 마케도니아 이중 국적을 가진 이 선수는 브라질 선수가 익숙한 K리그에서는 무척 독특한 이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시아 쿼터 제도 시행과 함께 K리그를 무대를 밟은 이 선수는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받았지만 K리그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별로 없었다.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아 보였고 그렇다고 이전까지의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4년 뒤 이 선수는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K리그를 떠나게 됐다. 바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다. K리그 이번 라운드에는 포항의 수원전 대승과 서울-광주의 명승부 등 숱한 이야기거리가 있지만 이에 가려져 사샤와의 작별이 주목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사샤, '퇴출 1순위'에서 주장으로

사샤는 성남에 오기 전 그리스에서 1년간 활약했던 걸 제외하면 12년간의 프로 생활을 모두 호주에서 했다. 그러다 호주 퀸즐랜드 로어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던 신태용 감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신태용 감독은 사샤와 1년을 보낸 뒤 마음먹었다. ‘내가 감독이 되면 저 녀석을 꼭 우리 팀에 데려와야겠다. 참 성실하고 쓸모가 많은 선수다.’ 그리고 그는 성남 감독이 되자마자 호주로 날아가 사샤를 데려왔다. 호주에서 그저 그런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대표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중고참 사샤는 그렇게 처음 K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였다.

하지만 사샤의 기량은 실망스러웠다. 발이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지적됐고 수비수로서 중요한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최후방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당시 성남의 또 다른 외국인 선수인 몰리나와 파브리시오가 공격에서 맹활약하는 동안 사샤는 찬밥 신세였다. “세 명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을 방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모두가 ‘퇴출 1순위’로 사샤를 지목했다. 못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잘하지도 않는 느림보 수비수를 계속 붙잡고 있는 신태용 감독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사샤와 성남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2010년이 되자 사샤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공중을 장악했고 영리한 수비로 느린 단점을 보완했다. 주축 선수들이 다 빠져나가고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미완성의 팀 성남이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는 데는 사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2월부터 9개월간 진행된 대장정 동안 팀 내에서 가장 많은 900분을 뛰었다. 특히 조바한과의 결승전에서는 라돈치치와 홍철, 전광진 등이 결장한 불리한 상황에서 팀의 선제골을 뽑아내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사샤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샤는 2010년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주장이 되기도 했다.

아시아 최고 선수와 국가대표 유니폼

시즌이 끝난 뒤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이 열렸다. 사샤는 바데르 알 무타와(알 카디샤·쿠웨이트), 파하드 마지디(에스테그랄·이란), 파시드 탈레비(조바한·이란) 등 2010시즌 아시아 무대에서 가장 멋진 활약을 펼친 이들과 함께 한 자리에 섰다. 사샤가 아시아 최고의 선수에게 수상하는 이 상의 주인공이 될지 관심이 쏠렸다. 함께 후보에 오른 알 무타와는 “AFC 올해의 선수로 사샤가 가장 유력하다. 대세는 사샤다. 아무래도 그가 이 훌륭한 상의 주인공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날 시상식 무대에 선 빈 함맘 AFC 회장이 수상자를 발표했다. “2010년 AFC 올해의 선수상 주인공은 사샤입니다. 축하합니다.” 사샤가 아시아 최고 선수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30대의 노장이던 사샤의 꿈은 호주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또 벌어졌다. 호주가 서른한 살의 사샤를 대표팀에 발탁한 것이었다. 호주와 이집트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발표한 호주 대표팀 명단에 사샤의 이름이 포함됐다. 모두가 대표팀의 꿈을 이루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했지만 사샤는 결국 꿈을 이뤘다. “정말 기분이 끝내준다. 오랜 꿈을 이루게 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 조국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싶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느림보 수비수는 1년 뒤 성남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본인 스스로도 최고의 자리에 섰다.

하지만 성남으로서는 사샤를 대표팀에 보내주기 난처한 상황이었다. 호주-이집트전에 사샤를 내주면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원정경기에 차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동안 세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이집트 원정은 시차와 이동거리가 상상을 초월했다. 6강 플레이오프라는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선수 한 명의 꿈을 위해 배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두들 사샤의 차출을 반대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를 주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인 스트레스보다 더 크다. 잘하고 돌아오길 빈다. 이번 시즌 내내 팀을 위해 희생한 성실한 그라면 이집트에 다녀와도 걱정할 것이 없다.” 사샤는 결국 호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이집트전에 나설 수 있었다.

'충성과 배신'의 사샤가 성남을 떠난다

그는 지난해 3월 성남-전북전이 끝난 뒤 늘 그렇듯 경기장 앞에 모인 팬들에게 둘러싸였다. 자신을 기다린 팬들에게 웃는 얼굴로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때 한 팬이 전북 유니폼 하나를 사샤에게 내밀며 사인을 요구했다. 그러자 사샤는 단호하게 말했다. “노(NO).” 성남 유니폼이 아닌 전북 유니폼에는 자신의 사인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사샤는 이후 FC서울 이적 추진으로 한 동안 비난받았고 신태용 감독도 “다시는 사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계약 기간 내내 경기에 내보내지 않고 벤치에 앉혀둘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샤는 묵묵히 실력으로 보답했고 다시 신태용 감독과 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동안 공을 잡을 때마다 성남 팬들에게도 야유를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큰 환호를 받는 게 바로 사샤다.

올 시즌 성남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졌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선수를 보강했지만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물고 있다. 투지를 잃은 선수들은 약체로 평가받는 팀에도 발목을 잡혔다. 다들 뛰기 싫은 표정이다. 사샤도 서서히 기량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가 있기에 그나마 수비진이 어느 정도 버텼다. 오합지졸이 된 팀에 사샤마저 없었다면 아마 더 끔찍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샤의 가족은 적응이 쉽지 않은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는 뜻을 사샤에게 내비쳤고 결국 사샤는 많은 고민 끝에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카타르 움살랄 이적을 결정했다. 사샤의 활약 속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성남도 사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성남으로서는 이제 서서히 하향세를 타고 있는 사샤를 내보낼 때가 됐다. K리그를 통해 아시아 최고 선수로 도약하며 명예를 얻은 사샤 역시 얼마 남지 않은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서로 좋게 헤어질 수 있기 시기에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게 됐다. 이별은 늘 슬픈 법이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는 없다. 가장 현명한 시기에 현명한 방법으로 이별하는 걸 사샤와 성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사샤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K리그 99경기 째인 강원과의 경기를 끝으로 정든 성남 유니폼을 벗게 됐다.

사샤가 K리그에 있어 행복했다

강원과의 경기가 끝난 뒤 이례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보통 외국인 선수가 팀을 떠날 때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도열해 사샤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임대 종료로 원소속팀에 복귀하는 에벨찡요와 함께 팀을 떠나는 사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 전광판에는 2010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사샤가 터뜨린 득점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샤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곳에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남은 나에게 4년 동안 영광스러운 우승컵을 비롯해 많은 추억을 남겨줬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멀리 있어도 항상 성남을 응원하겠습니다."

숱하게 많은 외국인 선수가 K리그에 입성하고 또 떠난다. 하지만 사샤만큼 우리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떠난 이는 없을 것이다. 또 K리그를 통해 이렇게 눈부시게 성장한 선수도 없을 것이다. 사샤와 성남은 서로에게 너무 멋진 추억을 안겨줬다. 지난해 성남 훈련장에 가 훈련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 주장이던 사샤는 훈련이 끝난 뒤 여느 주장과 다를 것 없이 코치진과 선수들 앞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이런 말을 했다. "차렷.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국적을 떠나 K리그 한 팀의 주장이었고 최고의 선수였다. 이제 사샤를 더 이상 K리그에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다.

사샤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2010년 성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떠올릴 때마다 사샤가 생각날 것 같다. 에닝요를 볼 때마다 그와 충돌하고 악수를 거부했던 사샤가 생각날 것 같다. 이태원 해밀턴 수영장에서 백인을 볼 때마다 사샤가 생각날 것 같다. 문득 성남 팬들의 사샤 응원가가 귀에 아른거린다.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그대 이름은 너무 길어요,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참 긴 이름 만큼이나 그에 대한 여운이 길게 느껴질 것 같다. 사샤가 K리그에 있어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