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어떤 머리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미용실에 가면 이 질문이 제일 난감하다. 얼마 전 미용실에 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수줍게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 머리처럼 해주세요.” ‘비스트’ 이기광 사진을 보여주자 직원이 살짝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최대한 비슷하게는 할 텐데 완벽히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파마가 끝나고 거울을 보니 나는 이기광이 아닌 이광기가 돼 있었다. 이렇듯 누구를 똑같이 닮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요새 김보경이 펄펄 날고 있다. 카타르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도움 두 개를 기록한 김보경은 어제(12일) 열린 레바논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두 골을 뽑아내면서 대표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제2의 박지성.’ 하지만 나는 김보경과 박지성은 전혀 다른 선수라고 주장하고 싶다. 김보경은 김보경일 뿐 ‘제2의 박지성’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머리 스타일을 똑같이 따라 해도 이기광이 아닌 김현회인 것처럼 말이다. 두 선수는 전혀 다른 선수다.

1.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

박지성은 활동량으로 그라운드 전체를 휘젓는 선수다. 센스도 뛰어나지만 그의 특기는 누가 뭐래도 90분을 꾸준히 소화해내는 체력이다. 하지만 김보경의 플레이 스타일은 박지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술을 바탕으로 박지성보다 더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조광래 감독과 최강희 감독은 “박지성보다 김보경의 잔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입을 모아 말 한 적도 있다. 박지성에 비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나 섀도 스트라이커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

2. 쓰는 발이 다르다

박지성은 주로 왼쪽 측면에 배치되지만 오른발을 사용한다. 왼발 또한 그리 약한 편은 아니지만 오른발을 쓰는 게 더 편하다. 하지만 김보경은 왼발이 특화된 선수다. 카타르와의 첫 경기에서 이근호를 향해 왼발로 툭 찍어 차 첫 골을 배달할 때만 보더라도 그의 왼발은 대단하다. 각급 연령별 대표는 물론 성인 대표팀에서도 왼발로 프리킥을 찰 때 면 전담으로 이를 도맡고 있다. 축구는 주로 사용하는 발 하나 만으로도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수가 될 수 있다. 박지성과 김보경은 실력을 떠나 스타일만 놓고 보더라도 같은 선상의 선수는 아니다.

3. 성장 배경이 다르다

박지성은 대기만성형 선수다. 명지대에 입학할 때도, J2리그에 진출할 때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김보경은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나는 몇 차례 당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청소년 시절 최고의 선수를 꼽는 데 있어서 김보경과 조영철, 박준태 등의 이름이 빠져본 적이 없다. 김보경은 J리그에 진출할 때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받았고 이후 꾸준히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박지성이 김보경 나이일 때는 실력이나 명성이 한 수 아래였다. 물론 성인 무대에 서 이런 평가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

4. 생김새가 다르다

주위의 여성 열 명에게 물어봤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누가 더 잘생겼느냐?”고 묻자 10명 중 여섯 명이 박지성을, 세 명이 김보경을 지목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런 거 그만하고 이번 달 곗돈이나 제 때 보내라”는 우리 엄마였다. 어찌됐건 박지성과 김보경은 외모부터가 전혀 다르다. 김보경을 지목한 세 명 중 한 명은 “김보경의 얼굴에서 유재석이 언뜻 보인다”고 했다. 김보경은 김보경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런 선수를 ‘제2의 박지성’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나도 ‘제2의 원빈’이라는 소리 듣는 걸 별로 원치 않는다.

5. 말투가 다르다

박지성은 말 끝마다 ‘때문에’를 쓰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이 ‘때문에’만 들어도 박지성인 걸 다 알기 때문에, 그가 이 말을 안 쓰면 어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박지성의 말투가 재미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반면 뭐 일단 김보경은, 뭐 일단 이번 두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뭐 일단 아직 갈 길이 더 멀어서, 뭐 일단 아직은 인터뷰하는 게 쑥스럽고, 뭐 일단 열심히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뭐 일단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는 사실이 뭐 일단…. 둘은 말투도 다르다.

‘제2의 박지성’을 애써 찾지 말자

우리는 홍명보가 은퇴한 뒤 몇 년 동안 ‘제2의 홍명보’를 찾았다. 기대를 모으는 수비수가 등장할 때마다 이 수식어를 붙였고 그 선수가 사라지면 다른 선수에게서 홍명보를 기대했다. 이렇게 잘할 때는 비행기를 태우다가 조금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렸다. 내 기억으론 ‘제2의 홍명보’라는 소리를 들은 선수만 해도 5~6명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표팀 수비를 책임지는 이정수와 곽태휘에게 ‘제2의 홍명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애써 ‘제2의 홍명보’를 찾으려하지 않아도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수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김보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우리에게 기대감을 안겨주면서 ‘제2의 박지성’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기분 좋은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김보경은 김보경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박지성이라는 부담스러운 잣대를 김보경에게 끼워 맞춰 무언가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박지성의 잣대’로 놓고 보면 그 어떤 훌륭한 선수도 대단하지 않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정수와 곽태휘가 자연스레 수비진의 빈자리를 메운 것처럼 김보경도 자연스럽게 대표팀 미드필더로 성장하면 된다. 왜 꼭 김보경에게서 박지성을 찾아야 하는가. 나는 김보경이 ‘제2의 박지성’이 아닌 ‘제1의 김보경’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