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국 출장을 다녀왔다. 한 BBC 관계자와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영국에서도 축구 중계로 인해 법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프리미어리그 시청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케이블 채널을 신청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젊은이들이 꼼수 아닌 꼼수를 쓴 것이었다. 케이블 채널을 신청하지 못한 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생중계를 틀어 놓고 이를 텔레비전 모니터로 연결한 뒤 라디오 중계를 스피커로 틀면서 축구를 즐겼다. BBC는 이들을 고발했지만 결국 법정에서는 이 젊은이들의 방법이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단다.

어딜 가나 축구 중계에 대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영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금 우리도 축구 중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 축구 중계를 보려면 적지 않은 돈을 내야하는 영구보다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더 암울한 게 사실이다. 지난 이틀 간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는 단 한 경기도 국내에 생중계되지 않았다. K리그의 네 팀이나 아시아 축구 정상을 위한 도전에 나섰는데 이렇게 국내 방송사가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참 애석한 일이다. 나는 BBC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예 돈 내고도 축구를 볼 수 있는 채널이 없어요."

K리그가 종편채널을 이용하자

중계 문제와 관련돼 숱한 칼럼을 써왔다. 하지만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지난 이틀 동안 이동국의 환상적인 발리슛과 에벨톤의 기가 막힌 터닝슛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 <아프리카TV>에 들어가 도박꾼들과 뒤섞여 말없이 이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참으로 축구 중계에 관해서는 우울한 나라다. 36억 명이나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가 대제전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저 남들 이야기일 뿐이다. 태국 부리람 팬들이 전주로 장거리 원정을 와도 그저 이건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AFC 챔피언스리그뿐 아니라 K리그 역시 중계에서 외면 받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라디오 중계와 인터넷 중계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영국팬들이 참 부럽다.

여러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일수도 있지만 나는 K리그가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중계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칼럼이라는 건 정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독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접하거나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채점지에 의해 오답과 정답으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일부 독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게 오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는 종편채널의 K리그 중계에 대해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이 문제에 대해 건전한 토론이 필요하다.

종편채널의 정치적 성향이야 다들 알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잡음이 있었고 나 역시 그리 고운 시선으로 종편채널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종편채널의 뒷배경 역시 무척 정치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종편채널을 통해 K리그가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에는 단물이 빠지면 나 몰라라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이 상황에서 종편채널이 K리그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K리그가 종편채널을 이용한다고 바꿔 생각해도 나쁠 것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K리그가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오는 방법으로는 참 현실적이다. 당장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그동안 K리그를 소홀히 대해서 죄송합니다. 이번 라운드부터는 전경기 중계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입장을 바꾸는 것 보다는 종편채널 중계가 더 현실적이다.

종편채널 노출이 이미지 타격일까?

스포츠 중계에는 정치적인 목적을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부터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도 전두환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출범시켰다. 그런데 지금 이 스포츠들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해석하는 이는 없다. 모든 일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게 얼마나 될까. 지금 파업 중인 지상파도 정치적인 논란이 있고 하다 못해 우리가 쓰는 대기업 가전제품에도 다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다. 종편채널을 통해 K리그가 중계된다고 해 K리그를 정치적으로 볼 사람도 없다. 종편채널에서 K리그를 중계하다가 나중에 포기한다고 K리그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까. 오히려 그때까지 텔레비전 중계를 해준 종편채널을 K리그가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종편채널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아니다. 정우성이나 한지민, 이수근, 김병만이 종편채널에 출연했다고 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도 않았다. 종편채널 출범 초기 몇몇 연예인들이 손가락질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미지 타격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우리는 종편채널에 나오는 것에 대해 실제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TV>나 찾아다니면서 버퍼링 심하고 좋지 않은 화질의 중계를 보고 있으면서 언제까지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이 입장을 바꿔 K리그 중계 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나는 종편채널이 "저런 슈팅은 박근혜님이나 할 수 있는 대단한 플레이였네요"라거나 "이건 우리 대통령 각하의 신중한 모습이 연상되는 용병술이었습니다"라는 중계 멘트가 나오지 않는다면 적어도 K리그가 중계되는 동안에는 다른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과 다른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종편채널은 거대 신문사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 채널에서 중계를 하는데 신문사에서도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1면에 K리그 이야기가 실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조선일보나 한겨례신문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 신문 1면에 K리그 소식이 보도되는 건 환영이다. 지금까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K리그가 종편채널을 통해 신문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된다면 K리그가 얻는 이익은 상당할 것이다. 지금 배고파서 굶어 죽게 생겼는데 찬밥 떠먹여 준다고 마다할 건가. "그 밥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따뜻하게 다시 가져다 주세요"라고 할 수 있나. 종편채널 중계를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떤 대안이 있는가. 현실적인 방안이 있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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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중계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아무리 멋진 경기가 펼쳐진다고 해도 중계가 되지 않으면 우리들만의 리그일 수밖에 없다.

100억 짜리 드라마보다 효율성 높은 K리그 중계

종편채널에서 중계를 시작하면 잠재적 팬들의 유입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호기심에 K리그 중계에서 멈췄는데 "어? 이거 종편이잖아!"라면서 다시 외면할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시청자들에게 축구는 축구다. 또한 지금은 잠재적 팬의 유입이라는 대단한 목적을 떠나 K리그 마니아들이 K리그 경기장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는 게 먼저다. 이렇게 언론 노출이 되지 않는 K리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지쳐서 떠나는 이들도 상당수다. 종편채널 중계를 통해 있는 팬들이라도 보다 편하게 K리그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연맹이 해야 할 일이다. 종편채널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 금방 문을 닫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K리그가 평생 종편채널과 함께 하는 것도 아니다. 계약기간 동안만 종편채널을 충분히 이용하면 된다.

종편채널에서도 스포츠 중계는 현실적인 편성이 될 수 있다. 종편채널을 생전 보지 않다가 얼마 전 TV조선에서 방영한 드라마 <한반도>를 챙겨본 적이 있었다. 방영 전부터 어마어마하게 홍보를 했고 원래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를 좋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하지만 내 인내심은 딱 6회까지였다. 열심히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재미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알아보니 이 드라마는 24부작으로 구성됐다가 1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00억 원을 투자해 16회 중 단 한 번도 시청률 1%를 넘지 못했으니 이거 망해도 크게 망했다. K리그 시청률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반도>에 비해 투자대비 효율이 높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K리그 중계료 지불하고 HD중계차 구입해도 <한반도> 제작 비용보다는 턱없이 적게 든다.

물론 종편채널의 자세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종편채널이 자체 제작을 통한 중계가 아니라 지역민방의 화면을 받아서 스튜디오 중계를 하거나 아예 지역민방 화면과 중계를 통째로 받아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K리그 마니아들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프로축구연맹이 종편채널과 협상을 하고 있거나 할 생각이 있다면 이러한 부분은 확실히 못을 박을 필요가 있다. 가끔 내가 아리따운 여성에게 다가가 연락처를 얻어낼 정도로 수도권 빅클럽 경기야 중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지방 구단은 중계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지역MBC에 의존하고 있는 지방구단들은 MBC본사의 파업으로 중계는커녕 하이라이트 제작에 필요한 화면도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MBC본사의 파업이 끝나더라도 이 문제는 근본적인 시스템 해결이 필요하다. 종편채널이 경기 영상을 담으면 다른 방송사로 재판매도 가능하다. 종편채널이 자체 제작 의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종편채널 중계, 건전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

사실 종편채널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종편채널을 통해 K리그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판단해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적어도 축구 중계에 관해서는 항상 K리그를 외면하고 있는 다른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과 종편채널이 다를 게 없다. 또한 지금처럼 K리그 중계가 외면 받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종편채널의 K리그 중계를 반대하는 의견도 분명히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칼럼이라는 건 정답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 타당한 논리를 내세워 건전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