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서울과 전북의 경기를 직접 봤다. 경기 30분 전 발표되는 선발 명단을 보고 전북 전술이 무척 공격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동국과 정성훈 투톱에, 이승현과 에닝요, 루이스까지 공격진에 포진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깜짝 놀랐다. 항상 최전방 공격을 맡던 정성훈이 김상식과 함께 최종 수비수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전북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마 중간부터 이 경기를 본 이들은 정성훈이 왜 골대에 공을 넣지 않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조성환과 임유환, 심우연, 이강진 등 중앙 수비 자원이 대거 부상을 당한 전북은 결국 정성훈을 수비수로 기용하는 임시방편을 사용해야 했다. 이흥실 감독대행으로서는 감독을 맡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중앙 수비수로 기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 어떤 감독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난 이후 한시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해야 할 인물이 이런 위기에 직면했으니 얼마나 고민이 되겠는가. 부담감이야 말로 표현 못 할 것이다. 이게 FM에서의 상황이라면 나는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건 지워버리고 싶은 파일이다.

정성훈과 함께 중앙 수비수로 포진한 김상식도 사실 수비 전문 선수는 아니었다. 대표팀에서 중앙 수비수로 몇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비난받기도 했던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이미 K리그에서도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김상식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중앙 수비수로 내려왔다. 그만큼 전북 사정이 좋지 않다. 축구선수가 공 차는 게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격수는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는 반면 수비수들은 무게 중심이 엉덩이쪽에 있다. 공격수가 수비수로 나선다는 건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같은 축구여도 이건 전혀 다른 일이다.

정성훈은 서울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할 뻔했다. 전북 골문 앞에서 상대 크로스에 발을 갖다댔고 이는 전북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가까스로 골키퍼 김민식이 막아냈다. 자칫하면 수비수로 나선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할 뻔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공격수의 공격 본능이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성훈은 후반 들어서도 불안 불안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서울 공격을 틀어막았다. 후반 막판 서울 몰리나가 역전 결승골을 기록한 순간에는 그라운드에 누워 한 동안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안쓰러웠다. 공격수의 수비수 도전은 이렇게 험난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감독님한테도 미안하고 선수들한테도 미안하다”면서 “나 때문에 실점을 했다”고 자책했다. 또한 “내가 수비수 경험이 부족해 나 때문에 더 많이 뛰어야 했던 (김)상식이 형한테도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성훈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그런데 이흥실 감독대행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이날 수비수로 나선 정성훈에 대해 “(정)성훈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원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고생했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전했다. 이들에게는 서로 서로 무척 미안할 일이 많은 경기였다.

하지만 나는 정성훈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 만약 정성훈까지 수비수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더 미안한 일이다. 프로 무대에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수만 팬들 앞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서고 싶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훈은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책골을 기록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헌신한 정성훈 같은 선수가 없었다면 아마 전북은 서울전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연출했을 것이다. 그나마 정성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선전할 수 있었다.

팀 동료들과 전북 팬들은 오히려 정성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선수도 뻔히 불안할 걸 알면서도 어색한 포지션에서 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성훈이 고개를 떨굴 이유는 없다. 이강진이 회복하지 못하면 다가올 경기에서도 수비수로 기용되어야 하는 정성훈에게는 미안해 할 시간도 없다. 서울전이 끝난 뒤 몰리나는 정성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정성훈이 키가 커 참 헤딩을 잘했다. 위치도 잘 잡았다. 내가 수비수로 나섰다면 아마 5~6골을 먹었을 것이다. 갑자기 수비수로 뛰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정성훈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을까. 정성훈은 더 당당해져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