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청소년 축구가 세계를 뒤흔든지도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당장이라도 여자 축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낼 것 같던 분위기도 이제는 수그러들었다. 또한 한국 여자 축구가 지난 해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결국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이 좌절됐다는 건 웬만한 축구 마니아가 아니면 잘 모른다. 이제는 여자 축구가 다시 우리에게 가끔 소식이나 전해주는 평범한 비인기 종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다가올 26일부터 열리는 IBK 기업은행 2012 WK리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볼거리가 많은 올 시즌 WK리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막걸리 해설? 이제는 막걸리 감독!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걸쭉한 ‘막걸리 해설’로 인기를 모은 이상윤 전 K리그 부산아이파크 코치가 다시 여자 축구 무대로 돌아왔다. 2009년 안익수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을 때 코치직을 수행했던 그는 2010년 부산아이파크 코치를 역임한 뒤 올 시즌부터 WK리그 충남일화 감독을 맡게 됐다. 11년 동안 K리그 성남에서 활약한 이상윤 감독은 비록 연고지 성남은 아니지만 모기업이 같은 충남일화 사령탑을 맡게 돼 ‘일화맨’으로서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지난 시즌 8개 팀 중 5위에 머물렀던 충남일화가 이상윤 감독의 가세로 어떻게 변모했을까. 또한 이상윤 감독이 벤치에서도 선수들의 플레이에 “나이스에요”를 연발할지도, ‘아들’인 바카리 사냐를 코치로 영입할지도 궁금하다.

볼거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성남일화 시절 팀 동료로 활약한 박남열 감독은 현재 고양 대교를 ‘WK리그의 바르셀로나’로 만들었다. 박남열 감독은 2009년부터 대교를 맡아 2번이나 WK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그 공로로 최근에는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까지 겸직하기도 했다. 이상윤 감독과 박남열 감독의 신경전도 대단하다. 박남열 감독은 이상윤 감독보다 한 살 어리지만 “내가 먼저 여자축구계에 발을 담궜으니 선배”라면서 WK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이상윤 감독을 겨냥했고 이상윤 감독은 “사실 선수 시절에는 내가 더 축구를 잘했다”면서 맞붙을 놓았다. 성남일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선수가 이제는 감독이 돼 WK리그를 이끄는 모습은 어떨까.

2. 청소년 월드컵 주역의 등장

창단 시기가 늦어져 지난 시즌을 앞두고 WK리그 드래프트에서 선수 선발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리그에 나섰던 국민체육진흥공단(KSPO)과 스포츠토토는 올 시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다. 이번 시즌 WK리그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권을 두 장씩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진전문대 여자축구부가 해체돼 졸지에 미아가 된 1학년 재학생들도 드래프트 참가의 혜택을 얻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두 시즌이 지나야 드래프트에 지원할 수 있지만 팀이 해체되면서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해 대학 6개 팀과 실업 8개 팀이 모두 이들의 드래프트 참가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WK리그만큼 훈훈한 곳도 없다.

특히 드래프트를 통해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 월드컵 3위의 주역들이 대거 WK리그에 입성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KSPO가 고베 아이낙에서 뛰고 있는 여자대표팀 미드필더 권은솜을 전체 4번으로 지명으로 지명했고 서울시청은 U-17 및 U-20 여자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송아리(한양여대)를 뽑았다. 부산 상무와 고양 대교가 이민아(영진전문대)와 서현숙(한양여대)을, 수원FMC와 현대제철, 충남 일화가 각각 권예은(한양여대)과 문미라(여주대), 강유미(한양여대)를 각각 1순위로 지명했다. 스포츠토토는 여자대표팀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던 박희영(강원도립대)을 선발했다. 그렇다면 과연 전체 1순위는 누구였을까. 올 시즌 대학무대에서 맹활약한 유니버시아드 여자대표팀 출신 공격수 김상은(여주대)이 KSPO의 지명을 받으면서 전체 1순위의 영광을 누렸다. 보통 여자라면 다비드 실바를 이상형으로 꼽겠지만 김상은은 다비드 실바를 롤모델로 꼽았다.

3. 돌아온 승부사, 최인철 감독

선수들만 WK리그에 입성한 게 아니다. 2010년 청소년월드컵 3위를 이끈 최인철 감독도 WK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WK리그 출범 이후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던 콩대제철, 아니 현대제철이 바로 최인철 감독의 새로운 팀이 됐다. 지난 해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마치고 돌아온 최인철 감독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했던 현대제철은 결국 최인철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히는 데 성공했다. 최인철 감독이 대표팀에서 지도한 전가을과 임선주, 조소현 등이 현대제철에서 활약하고 있어 이들의 호흡에도 기대를 건다.

최인철 감독은 여자축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당시부터 꾸준히 선수 선발과 컨디션 점검을 위해 WK리그를 찾았었다. 누구보다 각 팀의 장,단점을 잘 아는 감독이다. 그는 “올 시즌에는 챔피언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여자축구 초등학교 팀부터 시작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감독을 거치면서 한 단계씩 전진한 최인철 감독은 이제 WK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여자축구에 더 이바지하고 싶다며 K리그 코치직 제안도 고사했던 최인철 감독이 우승에 한이 맺힌 현대제철을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4. 개막전부터 빅매치

FC서울과 수원블루윙즈,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개막전부터 맞붙는 꼴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던 고양 대교와 인천 현대제철이 개막전에서부터 라이벌전을 치르게 됐다. 고양 대교는 WK리그 최강이다. 지난 시즌에도 단 1패만을 할 정도로 강력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이 선수들이 올 시즌에도 그대로 팀에 남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모든 팀 감독이 “고양 대교는 꼭 이겨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힐 정도로 ‘공공의 적’이 됐다. 그리고 고양 대교를 잡을 수 있는 팀은 현실적으로 인천 현대제철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 지난 시즌에도 결국 챔피언결정전 문턱에서 고양 대교에 패하기는 했지만 1무 1패를 기록하면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이세진은 “지난해 고양 대교가 1패만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몇 패를 안겨주고 싶느냐”는 질문에 “마음 같아서는 전패를 주고 싶은데 2패 정도 생각하고 있다”며 고양 대교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고양 대교를 ‘공공의 적’으로 꼽자 이에 대해 고양 대교 차연희는 이런 말을 했다. “상대팀들의 의견을 다 합치면 우리는 올 시즌 17패 정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리그 경기에서 전승을 한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과연 현대제철이 개막전에서부터 고양 대교의 콧대를 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고양 대교가 최강의 실력을 이번에도 보여줄까. 오는 26일 열리는 고양 대교와 현대제철의 개막전은 KBS N SPORTS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다.

5. WK리그의 초대형 이적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나온 축구선수는 다 잘된다는 속설이 있다. 최근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근호와 이동국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1박 2일>에 출연하기 전 이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사한 축구선수가 있었다. 지난 2008년 <1박 2일>에 출연해 외모와 축구 실력으로 화제가 됐던 심서연은 이후 <1박 2일>에 나선 축구선수답게(?) 펄펄 날았다. 이 해부터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하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획득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그런 심서연이 수원FMC를 떠나 ‘최강’ 고양 대교에 합류했다는 점은 이근호가 울산으로 이적한 것 이상으로 신선한 소식이다. K리그로 치면 수비력은 마토, 외모는 임상협급인 그녀가 팀을 옮겼다는 점은 참 흥미롭다.

또한 국가대표팀 골키퍼였던 문소리도 서울시청을 떠나 스포츠토토로 이적했다. 지난해 10월 소속팀 감독과 불화 끝에 팀을 이탈해 논란을 일으켰던 문소리는 어린이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시청이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줘 스포츠토토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감독에게 선수 대우를 받지 못해 더 이상 서울 시청에 있기 힘들다”던 그와 “그럴 거면 팀을 떠나라”던 서울시청 측이 극적으로 만나 합의를 이룬 것이었다. 자칫하면 선수 생활을 그만둘 뻔했던 문소리가 다시 WK리그 무대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축구팬으로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심서연과 문소리, 훌륭한 실력만큼이나 외모도 빛나는 이들의 올 시즌을 기대한다.

6. 브라질 리그 득점왕이 WK리그에?

지난 시즌까지 WK리그는 쁘레치냐의 무대였다. 브라질 국가대표로 월드컵에서만 5골을 기록한 쁘레치냐는 고양 대교 소속으로 WK리그에서 ‘왕언니’ 노릇을 했다. 2009년 고양 대교의 우승을 이끈 그는 2010년과 2011년에는 연거푸 득점왕에 오르면서 세계 최정상 선수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또한 까리나와 바바라는 수원FMC에서, 지오바냐와 달레니 등도 현대제철에서 좋은 모습을 펼치면서 WK리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우리는 독일이나 미국이 여자축구리그의 빅리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WK리그 역시 외국인 선수의 수준 등 모든 면에서 그리 독일이나 미국에 그리 뒤처질 것도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또 한 명의 강력한 외국인 선수가 WK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현대제철이 영입한 글라우시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시즌 브라질 여자축구리그에서 24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던 글라우시아는 20세 이하 브라질 청소년대표팀 공격수로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를 갖추고 있다. 17세 때부터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주전 공격수로 경기에 나설 정도로 브라질에서도 최고의 유망주로 꼽힌다. 현대제철 최인철 감독도 “쁘레치냐의 업적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37살의 쁘레치냐가 지는 해라면 우리 글라우디아는 미래의 떠오르는 태양”이라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나는 한 발도 제대로 못 쓰는데 글라우시아는 양 발도 자유자재로 쓴다.

7. 긴장하라, 박은선이 돌아왔다

“저 선수 성별 검사를 해봐야 한다.” 중국은 한국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박은선의 성별 검사를 요구할 정도였다. 박은선은 여자축구 강국 중국에서도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하지만 박은선은 2005년 서울시청에 입단한 뒤 잦은 팀 이탈로 논란을 일으켰고 여자대표팀에 뽑힌 후에도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협회로부터 2년간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2009년에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심리적으로도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박은선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에서 잊혀진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축구를 그만두고 장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박은선이 드디어 돌아왔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축구”라면서 서울시청을 찾아가 간절히 복귀를 원했다. 서울시청 측에서는 이미 몇 차례나 약속을 어긴 박은선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결국 3개월 동안 박은선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는 지난 2월 정식으로 박은선과 계약을 체결했다. 최고의 공격수였던 그녀는 올 시즌에는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중앙 수비수로 나설 예정이지만 축구 센스는 여전하다. ‘최강’ 고양 대교를 상대로 치른 연습경기에서도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을 정도다. 몸 상태에 따라 후반 막판이면 박은선이 공격진으로 올라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왕년에 어마어마했던 이 누나가 드디어 돌아왔다. 신난다.

IBK 기업은행 2012 WK리그 개막전 일정(2012년 3월 26일, 19시)
고양 대교 vs 현대제철 (보은공설운동장)
서울시청 vs 수원 FMC (화천생활체육공원 주경기장)
부산 상무 vs 스포츠토토 (고양종합운동장)
KSPO vs 충남 일화 (강릉종합운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