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첫 선을 보였다. 개막도 하기 전부터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일찌감치 경기장으로 향했다. 과거 내셔널리그 인천코레일이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던 숭의운동장을 몇 번 찾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파리만 날리던 식당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는 주인 아저씨가 혼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 식당은 어제 손님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상권이 죽다시피했던 이곳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건설로 살아났다. 식당 밖까지 길게 줄을 늘어선 손님들을 바라보면서 식당 사장님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집 대박 났어요.” 숭의운동장 시절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담하면서도 웅장한 경기장의 자태에는 입이 떡 벌어졌지만 여기저기 허점 투성이였다. 공사가 두 번이나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홈 개막전에 맞춰 개장을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개장 경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불과 나흘뿐이었다. 밤 늦도록 퇴근도 못하고 개장 준비에 매달린 구단 직원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인천은 미숙한 운영으로 상당수의 잠재적인 팬을 잃었다. 개장 경기에 호기심을 갖고 처음 인천유나이티드를 접한 이들에게 불쾌감만 준 셈이다. 친구네 집 집들이 갔는데 8평짜리 집에 친구 서른 명 초대해 놓고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한 꼴이었다.

발권 문제가 가장 컸다. 경기 전부터 80% 이상의 티켓이 인터넷 예매를 통해 이뤄졌다. 매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팬들은 예매를 서둘렀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 도착하니 이런 예매는 무의미해졌다. 발권 창구에 가 예매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티켓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2만 명에 가까운 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주변을 돌아본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제 경기는 한 시간 후면 시작되는데 아직 티켓을 받지 못한 예매자는 경기장 앞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줄은 경기장 앞 도로까지 이어졌고 보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전산 시스템 오류로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예매권자를 대조하는 80년대 방식을 써야 했다. 여기 저기에서는 마치 박준태가 수원 수비 사이를 통과하듯 재빠른 몸놀림으로 새치기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상당수 관중들은 두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예매된 티켓 발권을 포기하고 정상가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의 암표를 사기도 했다. 킥오프 시간에 맞춰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예매를 한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는 참다 못해 화가 난 이들이 연간회원권 출입구로 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따지고 막무가내로 입장을 하기도 했다. 극히 적은 인원의 아르바이트생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곳은 30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연간회원권 소지자들만 출입할 수 있고 각종 다과를 제공하는 등 편안한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었지만 이런 경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도저히 밀려오는 관중들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인터넷 예매권자의 현장 발권 문제는 여러 경기장에서 증명된 적이 있었다. 휴대폰을 통해 예매권을 제시하기만하면 입장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인천은 경기장 난입을 막기 위해 지역 어르신들을 안전 관리 요원으로 배치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젊은이들끼리 마주하면 충돌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이 일을 맡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한 내린 결정이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어르신들은 가장 관람하기 좋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관중들보다 더 집중하며 축구를 보고 있었다. 연간회원권 소지자들이 반대로 이 어르신들의 시야에 가려 축구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축구 안 보인다고 어르신한테 비켜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랬다가는 ‘축구장 패륜남’으로 동영상 찍혀 인터넷에서 신상 털린다.

구역별로 입장료가 다르지만 출입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원정팬이 일반 관중석까지 넘어와 함께 축구를 보는 풍경도 연출됐다. 축구장에서 ‘위 아 더 월드’ 이런 거 안 통한다. 철저히 원정팬과 홈팬이 구분되어야 하지만 인천 유니폼을 입은 이들과 수원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해야 할 정도로 산만한 분위기였다.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경기장 밖에는 아직 입장하지 못한 관중으로 넘쳐났지만 정작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상당수 관중이 결국 참다 못해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나는 이날 경기 매진을 장담했지만 결국 경기장은 꽉 차지 않았다. 발권 문제만 제대로 해결됐더라도 경기장은 아마 관중으로 꽉 찼을 것이다. 난간에서 위태롭게 관람하는 이들만 안전 요원이 제지해 좌석으로 안내했다면 아마 관중으로 경기장이 꽉 찼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은 개장 경기를 앞두고 벤치에 지붕을 씌우도록 지시했다. 관중석 내부에 설치된 벤치는 이 경기장만의 특징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붕을 씌우면 그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어서 나는 연맹의 결정에 불만이 많았다. “관중이 벤치를 향해 오물을 투척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관중을 너무 믿지 못하고 폭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우리 관중들의 시민의식을 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만이 상당했다. 결국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개장 경기를 앞두고 연맹의 지시에 따라 부랴부랴 벤치에 지붕을 설치했다. 이로 인해 벤치 바로 뒷 좌석 관중은 경기 관람이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 됐다. 허정무 감독과 수다를 떨겠다는 상상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결국 연맹의 결정은 탁월했다. 우리의 시민의식은 벤치에 반드시 지붕을 씌우고 관중과 분리해야 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상당수 관중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 사진을 찍고 잔디를 짓밟았다. 내가 너무 우리 시민의식을 과대평가한 것 같다. 수원 팬들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집들이 선물(?)로 준 휴지가 그라운드에 떨어질 정도로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가까운 이 경기장의 장점을 일부, 아니 상당수 관중이 졸지에 단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시민의식으로 벤치와 관중석을 지붕 없이 트는 건 안 될 것 같다. 인천은 최고의 경기장을 얻었지만 이런 관중들이 넘쳐 난다면 이 경기장에서 경기할 자격이 없다.

어제 경기는 참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멋진 경기장에서 치른 이 경기는 여러 모로 기대가 됐다. 하지만 경기 외적인 요소로 인해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무슨 공원이라도 놀러온 것처럼 잔디에서 뛰어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쁜 관중은 이 멋진 경기장에 다시 올 자격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보자. 관중들 의식이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인데 선수들에게만 프리미어리그급 경기력을 강요하면 뭐하나. 이렇게 시민의식이 부족하면 경기장에는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가로막는 철조망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때가서 시야를 가리는 철조망을 원망할 건가. 이렇게 좋은 경기장에 걸맞는 성숙된 응원 문화를 지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벤치와 관중석 사이의 지붕도 사라질 것이다.

또한 인천 구단은 이 추운 날 90분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두 시간 넘게 줄을 서 기다려야 했던 이들에게 과연 다시 오고 싶은 서비스를 선사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비스업에서는 한 번 소비자가 불편을 경험하면 그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몇몇 관중의 입에서 “다시는 축구 보러 여기 안 온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걸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인천은 경기력은 물론 앞으로 이 경기장에 어울리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운 게 많을 것이라 믿는다. 대박 난 경기장 앞 식당 주인 아저씨가 또 한숨 짓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