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툭 튀어 나온다. 인터넷에서는 이걸 ‘갑툭튀’라고 한다. 이름도 어려운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은 툭하면 순위를 내놓는다. 매년 세계 클럽 랭킹을 선정하고 심심할 때면 21세기 최고의 클럽, 21세기 최고의 감독, 심지어 전세계 득점 순위도 뽑는다. IFFHS에서 선정하는 순위만 해도 20여 가지에 이른다. 도대체 밥만 먹고 순위만 선정하는 이 단체의 정체는 뭘까. 믿어도 되는 것일까. 오늘은 ‘갑툭튀’해서 우리에게 순위를 던져주고 사라지는 IFFHS의 정체를 까발려 보고자 한다. 이 단체 참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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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 푀게(왼쪽에서 두 번째)는 1984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을 설립한 이후 숱한 순위 발표로 우리 언론의 단골손님이 됐다. (사진=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혼자 만든 통계 단체, IFFHS

IFFHS는 1984년 설립됐다. 전세계 축구의 역사와 통계를 정리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축구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었다. 독일의 한 대학 병원 실험 진단 및 임상 화학 분야 전문가인 알프레도 푀게 박사가 혼자 만든 단체다. 하지만 아무도 이 단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또한 동독인인 푀게는 당시 독일이 통일되기 전이어서 국제적으로도 운신의 폭이 좁았다. 결국 IFFHS는 독일에 사무실을 두지 못하고 법률 지원을 맡은 덴마크인 스포츠 법학 전문 교수 라우리센의 영향으로 덴마크에 사무실을 갖췄다. 그는 이후 1985년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서독 비스 바덴으로 이주했다.

전세계 여기 저기에서 축구 전문가들과 교류를 쌓고 축구 역사에 관한 책을 내는 게 목표였지만 광고 수입 없이 출판업에 나선다는 건 불가능이었다. 한 서독 기업이 후원사로 나설 예정이었지만 푀게의 독단적인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이러한 제안을 철회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결국 IFFHS는 역사보다는 통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디어는 푀게의 머리에서 나왔다. 1987년 처음 산정한 세계 최고 골키퍼 순위 역시 푀게의 작품이었다. 물론 순위 산정 방식은 푀게 마음대로였지만 지금까지 이런 순위를 접한 적이 없던 축구계는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울스포츠에서 후원을 자처했다.

반응이 좋자 푀게는 세계 최고 심판 순위를 또다시 내놓았고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스폰서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푀게는 더욱 다양한 순위를 발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매년 세계 최고에 관한 순위를 발표하겠다.” 하지만 1988년 당시 유럽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축구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그는 각 대륙에서 축구 전문가를 섭외해 순위 선정에 더욱 매진했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축구 통계를 내려는 푀게의 부탁을 거절할 이들은 없었다. 그는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매년 세계 최고를 가리는 순위를 내놓기 시작했다.

순위는 비단 최고 클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최고의 심판, 최고의 골잡이, 최고의 리그, 최고의 골키퍼 등 푀게의 모든 아이디어가 현실이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순위를 발표하는 푀게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1990년 IFFHS는 FIFA, 아디다스와 함께 FIFA 올해의 선수 선정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FIFA는 푀게가 자꾸 여러 상을 신설하려고 하자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푀게와 결별했다. 자고로 상이라는 건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데 푀게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부터 FIFA는 IFFHS와 결별해 올해의 선수상과 월간 랭킹을 선정하게 됐다.

“푀게 혼자 원맨쇼 하는 곳”

IFFHS에 대한 비판의 시선은 상당하다. IFFHS 측은 전세계 150여 개국 200여 명의 전문가와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이들의 명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독일 언론에서는 “200여 명에 이르는 명단을 공개하라”고 하지만 IFFHS는 묵묵부답이다. 독일 언론에서는 “그들이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단순한 축구팬도 무척 많다”고 IFFHS를 깎아내리고 있다. 또한 “홍보에 급급한 단체”라면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순위를 마구 양산해 내 결국 단체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독일 언론 ‘DPA’에서는 더 이상 IFFHS가 발표하는 순위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독일의 축구 역사학자인 칼 레나츠는 IFFHS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시작을 유지하고 있다. 레나츠는 “이 단체는 신뢰할 수 없다”면서 “이런 애매한 단체에 대해 더 이상 언론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다. IFFHS는 푀게 혼자 원맨쇼를 하는 곳”이라는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또한 유럽의 축구 환경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다른 대륙의 상황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독일의 한 언론은 “IFFHS가 제공하는 자료들을 여러 나라에서 기자들이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오류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 사람이 주도하는 통계에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건 잘못됐다는 시선이다.

실제로 엉터리 순위를 매겨 논란이 된 적도 많았다. 2007년 발표한 세계 클럽 랭킹에서는 K리그 성남(119위)이 싱가포르 육군(121위)보다 순위가 낮았고 레알 사라고사(122위)와 뉴캐슬 유나이티드(130위)는 더 밑에 있었다. 세계 리그 순위에서도 K리그가 요르단과 싱가포르, 이란, 우즈베키스탄, 레바논보다 뒤에 있었다. 더 황당한 사실은 1년 전인 2006년에는 K리그가 71위로 시리아(57위)와 오만(62위)보다 한참 떨어지는 순위를 기록했었는데 프로축구연맹에서 정정 요청을 하자 일주일 만에 K리그를 57위로 정정해 줬다는 점이다. IFFHS는 “순위 산출에 오류가 있었다”며 쿨하게 실수를 인정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보다는 낫다.

여전히 순위 선정에는 오류가 많다. 아시아에서 강한 실력을 갖춘 리그 팀만 참가하는 AFC 챔피언스리그와 약체국들의 리그인 AFC컵을 동일하게 놓고 평가한다. 이 두 리그 모두 이기면 7점, 비기면 3.5점을 준다. 싱가포르 리그 팀이 AFC컵에서 승승장구하는 게 K리그 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조별리그 탈락하는 것보다 더 낫다. 2009년 초에도 프로축구연맹에서 정정 요청을 했지만 IFFHS측으로부터 이런 답변만 들어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순위를 선정하는 방식을 고수할 것이다.” 결국 연맹은 이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제는 정정 요청도 하지 않는다.

이 순위는 ‘바이블’이 아니다

매년 발표하는 세계 득점 랭킹도 이해할 수 없다. 2008년 세계 득점 랭킹 7위는 싱가포르에서 활약하던 알렉산다르 듀리치였다. 듀리치는 그해 28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세계 득점 랭킹에서 높은 순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리그를 폄하할 뜻은 없지만 싱가포르에서 많은 골을 넣었다고 이를 프리미어리그 득점수와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2008년 이 부문 1위는 바레인 리그에서 뛰며 19골을 넣은 레안드손 다 실바였다. 당시 유럽을 호령하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사무엘 에투, 다비드 비야는 레안드손에 밀렸다. 박주영이 A매치 7골로 공동 62위에 올랐지만 그의 정확한 A매치 득점수는 5골이었다. 융통성도 없고 그렇다고 정확하지도 않다.

최근에 발표한 21세기 프로 리그 순위에서 K리그는 아시아 2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명확히 이 순위를 선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순위 선정 방식을 한참 따져보면 여기에도 오류가 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 조별리그의 승리 점수가 같다. 또한 정규리그와 FA컵 챔피언스리그 등을 모두 포함해 각 리그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5팀을 뽑아 합산해 리그 점수를 계산했는데 당연히 챔피언스리그에 많은 팀이 나서는 리그가 훨씬 유리하다. 리그가 평준화 된 곳은 더 불리하다. 상위권 5개팀이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 리그는 좋은 점수를 받지만 그렇지 않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하는 팀이 정규리그에서 죽을 쑤면 점수가 깎인다. 한마디로 상위권 5개팀과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상대팀이 승리를 빼앗아 간다면 그 팀은 리그 순위를 갉아 먹는 셈이다.

2009년 세계 최고 리그 순위에서는 멕시코가 8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많은 축구팬들은 IFFHS의 순위 선정 방식에 큰 불만을 드러냈었다. 빅리그에 가산점을 부과하지 않고 모든 리그가 똑같이 승리하면 같은 점수를 가져가는 상황이니 당연히 더 많은 팀들이 있어 많은 경기를 치르는 팀이 순위 선정에서 무척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IFFHS는 이러한 순위 선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클럽 랭킹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벨레즈 사르스필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3위를 기록했다. 이 팀은 김귀현이 뛰고 있으니 IFFHS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박지성보다 더 훌륭한 선수를 몰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 순위는 한 마디로 원맨쇼에 가깝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걸 무슨 ‘바이블’보듯 한다. K리그가 J리그보다 순위가 낮으면 그 자체로 분노하고 K리그가 싱가포르 리그보다 더 밑에 있으면 K리그의 위기를 논한다. 최근 전북이 아시아 랭킹에서 1위를 기록하자 아주 신이 났다. 무슨 IFFHS에서 순위 한 번 발표될 때면 이 소식으로 온통 축구 뉴스가 도배된다. 외국에서 그럴듯한 이름을 단 단체가 순위를 매겼으면 다 무조건 믿어야 하는 건가. 푀게라는 사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이 단체가 툭하면 우리 언론을 모두 도배하니 이 사람이 우리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 한 번 대단하다.

이건 그냥 재미로 한 번 보고 말면 그만이다. 아니, 그냥 정신 건강 해치지 않으려면 오히려 안 보는 편이 낫겠다. 세계가 인증한 순위라고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 우리가 단체 하나 만들어 순위 발표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순위를 던져주는 IFFHS에 집착하지 말자. 정확하지 않은 전문가 집단에서 선정 방식도 마음대로 정해 발표하는 순위가 뭐 그리도 궁금한가. 그냥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이상형 월드컵’ 정도로 생각하자. 내 마음대로 순위를 매겨 신봉선이 김태희를 이겼다고 해도 세상은 놀라지 않는다. IFFHS의 순위는 딱 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