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챌린저스리그(과거 K3리그)를 조기 축구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배 나온 아저씨들이 공 좀 차는 리그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챌린저스리그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챌린저스리그는 승강제의 든든한 뿌리가 될 만큼 성장했다. 특히 지난 주말 우리의 눈이 대표팀 경기에 모두 쏠려 있을 때 치러진 2011 챌린저스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은 얼마나 우리 축구의 뿌리가 튼튼한지 알 수 있는 한판이었다.

기사 이미지

<경주시민축구단이 올 시즌 챌린저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환호하는 모습. 경주는 2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경주의 거짓말 같은 우승
극적인 승부였다. 플레이오프에서 포천시민축구단과 1-1 무승부에 이은 승부차기 승리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양주시민축구단과 이천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0-0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에서 이긴 경주시민축구단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1-1로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포함한 플레이오프 세 경기가 모두 무승부로 끝날 정도로 팀간의 전력차가 없었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결과에 따라 우승 트로피의 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적지에서 치른 1차전을 1-1로 비긴 경주시민축구단은 안방에서 열린 2차전에서 먼저 두 골을 내줬다.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세 골을 몰아 넣어야 극적인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후반 15분까지 0-2로 뒤진 상황이라 사실상 챌린저스리그 2연패의 꿈이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주는 이때부터 거짓말 같은 명승부의 드라마를 썼다. 후반 15분과 39분 김민섭이 골을 기록해 2-2까지 따라가더니 후반 44분 최진석이 극적인 역전골을 뽑아내며 경기를 3-2로 뒤집었다.

경주의 믿기지 않는 우승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경주 선수들은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환호했다. 허무하게 우승의 꿈을 날린 양주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올해 챌린저스리그는 챔피언결정전 명승부로 마무리됐다. 누군가에게는 조기 축구일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꿈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곳이 바로 챌린저스리그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경주 축구팬들도 무척 많았다. 본부석의 절반이 꽉 들어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제대로 된 길 가고 있는 챌린저스리그
이런 명승부는 오랜 만이다. 비록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챌린저스리그 경기였지만 경기 내용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축구를 수준으로만 따진다면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 같은 최대 규모의 대회를 빼면 다 쓰레기로 취급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가 전세계 어디에서도 사랑 받는 건 꼭 수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치열하게 경쟁해 상대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바로 축구의 매력이다. 챌린저스리그에서 보여준 명승부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승강제의 핵심은 하부리그에 있다고 생각한다. K리그에서 강등시킬 팀을 찾는 건 쉽지만 하부리그에서 상위리그로 올라갈만한 팀을 찾는 건 여건상 어려운 일이다. 승강제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하부리그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챌린저스리그는 무척 중요한 요소다. 꼭 이 한 경기만 놓고 보지 않더라도 챌린저스리그 소식은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이제는 한국 축구의 버팀목이 될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챌린저스리그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 시민구단 형태로 운영되는 팀은 대부분 산하 유소년 팀을 보유하고 있다. 승리수당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선수들은 유소년 클럽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수입을 얻는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유소년 클럽 코치 등 축구와 인연을 유지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지역 유소년 선수들과의 연계는 연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프로스포츠에서 무척 긍정적인 현상이다.

기사 이미지

<경주 최진석이 후반 종료 1분을 남기고 극적인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을 확정짓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처음부터 빅클럽은 없다
이들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코치님’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챌린저스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선수로 변신한다. 신분이 애매하지만 하부리그 특성상 선수로 ‘올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당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연고 지역명을 달고 선수로 나서는 모습은 독특한 우리만의 축구 문화다. 이런 시스템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K리그도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이런 모습으로 처음 출범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우리는 보다 연고 지역에 밀착한 K리그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병역 문제 해결도 챌린저스리그에 좋은 사례가 많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면서 챌린저스리그 선수로 활약, 병역을 해결하는 선수들이 상당수다. 황지수(전 양주시민축구단)는 얼마 전 소집해제 후 포항스틸러스로 복귀했고 황지수 외에도 장학영, 조진수, 김태영 등 K리그 선수들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소집 해제 후 다시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할 계획이다. 만약 챌린저스리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젊은 축구선수들은 지금쯤 병역 문제로 검은 유혹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서울유나이티드나 부천FC1995 같은 팀은 K리그 구단에 버금가는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팀 외에도 시민구단 형태의 팀들은 지역 사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전거나 쌀 등 실용적인 경품을 내걸며 시민들과 축제 한마당을 펼치는 팀도 많다. K리그처럼 승용차 등 으리으리한 경품을 내걸지는 못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은 우리 아들의 코치님이 뛰는 모습을, 옆집 아들이 뛰는 모습을 응원하며 즐거워한다. 규모에서 차이만 있을 뿐 열기에서는 유럽 축구와 다르지 않다.

이제 올 시즌 챌린저스리그는 막을 내렸다. 비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올해도 챌린저스리그는 한국 축구를 지탱하는 역할을 훌륭히 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팀들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빅클럽은 처음부터 빅클럽이었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철도 회사 실업팀이었고 아스널은 노동자들이 만든 팀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한 사람이 신문에 축구 클럽을 만들고 싶다는 광고를 내 처음 결성됐다. 한국 축구의 정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챌린저스리그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