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21일 포항스틸야드는 평일 야간 경기가 치러졌지만 이례적으로 꽉 들어찼다. 훗날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될 포항과 울산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포항의 안방에서 열린 1차전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최고의 경기였다. 아직도 사람들은 이날 경기를 잊지 못한다. 아마 100년의 시간이 흘러도 K리그가 계속된다면 이 경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만큼 짜릿했다.

추가시간에만 세 골, 최고의 명승부
울산은 골키퍼 김병지를 비롯해 국가대표 출신 박정배와 장형석, 김상훈이 수비에 버티고 있었다. 중원에는 ‘도움왕’ 정정수를 비롯해 김현석, 황승주 등이 포진했고 최전방에는 공격수로 변신해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던 유상철과 그의 파트너 송주석이 있었다. 가뜩이나 막강한 선수진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결장하며 체력까지 비축해 무시무시했다. 이에 맞서는 포항은 ‘꾀돌이’ 안익수와 이영상을 수비에, 전경준과 고병운, 서효원 등을 중원에 배치했다. 최전방에는 백승철과 최문식이 있었다. 박태하와 고정운이 경고누적으로 빠져 전력을 100% 가동할 수 없었다.

홈 팀 포항을 응원하던 일방적인 분위기는 전반 16분 만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정정수가 포항의 페널티 지역 왼쪽을 치고 들어가다가 얻은 프리킥을 직접 골문에 꽂아 넣은 것이다. 울산은 적지에서 포항에 1-0으로 앞선 채 전반을 마쳤다. 하지만 경기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교체 투입된 포항 김명곤은 후반 13분 서효원의 코너킥을 오명관이 머리로 떨구자 왼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1-1이 되자 다시 스틸야드는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 ‘조커’ 김명곤의 시즌 첫 골이었다.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듯했다. 후반 45분까지 치열한 중원 싸움이 펼쳐지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이때 포항의 극적인 역전골이 터졌다. 단독 돌파로 울산 중원을 뚫은 김명곤의 패스를 이어받은 백승철이 골키퍼 김병지를 지치고 슈팅을 하려다 이 공이 울산 수비수 몸에 맞고 흘렀다. 그러자 최문식이 달려들면서 침착하게 울산 골문으로 공을 차 넣었다. 2-1이었다. 포항 팬들은 경기를 5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전력상 열세일 것이라던 경기의 승리가 사실상 굳어지자 열광했다. 이미 시간은 후반 4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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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최문식과 백승철이 울산과의 1998 K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골을 기록한 뒤 기뻐하고 있다. 이 경기는 추가시간에만 세 골이 터진 최고의 명승부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사진=포항스틸러스)>

백승철을 위한 드라마
하지만 경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추가 시간이 적용되던 후반 48분 울산은 포항 왼쪽 측면을 돌파한 천정희가 문전으로 크로스를 연결했고 김종건이 이를 그대로 머리로 받아 넣었다. 2-2였다. 울산은 적지에서 거둔 극적인 동점에 환호했고 스틸야드는 최문식의 득점 후 3분 만에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말 이대로 경기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주심은 시계를 쳐다보면서 종료 휘슬을 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한 명승부의 조건은 갖춰졌다.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기심이 선언한 5분의 추가시간도 다 흘렀다. 포항은 마지막으로 울산 진영 중앙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최문식은 공을 살짝 뒤로 밀어줬고 백승철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울산 수비수들은 백승철이 슈팅을 날리려고 하자 몸을 던져 이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백승철은 가볍게 태클을 피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이 공은 김병지가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골이었다. 스틸야드는 글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3-2. 포항의 극적인 승리였다. 백승철의 현역 시절은 짧았지만 이 골로 아직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날 포항의 승리는 1998년 울산전 4전 전패의 사슬을 끊는 중요한 경기였다. 정규리그 전에 열렸던 리그컵에서 두 번 연속으로 울산에 패했던 포항은 정규리그에서도 두 번 맞붙어 모두 졌었다. 이 때문에 이 경기에서의 승리가 어느 때보다도 값졌다. 관중들은 신이 나 덩실덩실 춤을 췄고 선수들은 당시까지는 프로축구에서 볼 수 없던 ‘다이빙 세레모니’로 관중들의 환호에 보답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만 세 골이 터진 최고의 명승부였다.

김병지의 헤딩골, 기적을 연출하다
울산은 안방에서 열리는 2차전을 벼르고 있었다. 울산종합운동장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너무나 많은 관중이 몰려와 관중석은 물론 트랙에까지 사람들이 빼곡했다. 안전을 이유로 더 이상 관중을 받아들일 수 없게 돼 집으로 돌아간 이들도 상당수였다. 경기 내내 몸싸움을 벌이는 등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그러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울산이었다. 울산은 후반 26분 ‘울산맨’ 김현석의 직접 프리킥으로 앞서갔다. 김현석이 날린 슈팅을 포항 골키퍼 김이섭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1로 뒤지고 있던 포항은 후반 40분 천금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오명관이 왼쪽에서 올려준 공을 동료 공격수가 논스톱으로 골문 앞으로 연결하자 박태하가 이를 그대로 차 넣은 것이었다. 1-1이 되는 순간이었다. 1차전을 승리로 이끈 포항은 챔피언결정전에 나가기 위해서 딱 5분만 버티면 됐다. 사실상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박태하의 동점골은 울산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울산 선수들은 박태하에게 실점한 후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진짜였다.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이 나온 건 후반 45분이었다. 울산은 포항 진영 오른쪽에서 마지막 프리킥 찬스를 잡았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1,2차전 합계 1무 1패로 포항에 밀리고 마는 순간에서 모든 선수들이 포항 골문 앞으로 향했다. 골키퍼 김병지까지 울산 골문을 비워두고 포항 골문으로 뛰어갔다. 전문 프리키거 김현석은 급한 마음에 공을 골문 앞으로 우겨 넣었다. 이때 한 울산 선수가 포항 수비 사이에서 솟구쳐 헤딩 슈팅을 날렸고 이 공은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 김병지였다.

믿기지 않는 김병지의 득점에 울산종합운동장은 터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고 김병지는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다. 극적인 2-1 승리였다.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멋진 장면이었다. 결국 울산은 승부차기에서 포항을 4-1로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경기는 13년이 흐른 지금도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된다. 포항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울산에 패한 뒤 망연자실해 했다. 이 경기는 해외토픽으로 전세계에 소개될 정도였다.

‘김병지의 저주’와 두 팀의 악연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명승부의 주인공 김병지가 2001년 울산을 떠나 이적한 팀이 포항이라는 점이다. 포항 팬들을 눈물 흘리게 했던 주인공 김병지가 이제는 포항 골문을 지키는 장면이 펼쳐졌다. 울산은 김병지 이적 후에도 승승장구하면서 2005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역사를 써 내려 갔지만 유독 ‘김병지의 포항’만 만나면 작아졌다. 울산이 우승을 거두던 2005년에도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팀이 포항이었다. 김병지 이적 후 울산은 포항에 2승 2무 8패로 절대적인 열세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이를 ‘김병지의 저주’라고 불렀다.

두 팀은 이후에도 중요한 길목에서 묘한 인연을 맺었다. 2002년에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울산이 이기고 포항이 성남에 무승부만 거둬도 울산이 우승을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항은 성남에 패했고 결국 우승컵은 성남의 품으로 돌아갔다. 울산 팬들이 유례없이 포항을 응원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결국 포항은 울산의 뜻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 아직도 울산 팬들은 당시 포항을 원망한다. 포항이 조금만 도와줬더라면 2002년 우승은 울산의 차지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포항은 성남의 우승에 제물이 됐다.

2004년에도 두 팀은 챔피언결정전 길목에서 만나 명승부를 펼쳤다. 울산은 통합 승점 1위로 4강에 진출했고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포항은 후기리그 내내 부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울산은 플레이오프서 따바레즈에게 통한의 골을 허용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 티켓을 포항에 내주고 말았다. 2007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포항은 황재원의 선취골로 앞서 나가다 후반 25분 우성용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6분 뒤 이광재가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울산을 제압하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따라베즈는 2004년 맞대결에서도 결승골을 뽑더니 2007년에는 천금같은 도움으로 또 다시 울산을 울렸다. 양 팀은 중요한 순간에서 맞대결을 펼칠 때마다 명승부를 연출했다.

논란의 주인공, 오범석
경기 외적으로 이 라이벌 구도에 불을 지핀 건 바로 오범석이었다. 포항의 유소년 시스템에 의해 키워진 오범석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포항 소속으로 K리그를 누볐었다. 그는 이후 유럽 진출을 놓고 국제축구연맹(FIFA) 제소 직전까지 가는 구단과의 마찰 끝에 결국 러시아로 진출해 1년 6개월 동안 활약했다. 그리고 2009년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범석이 선택한 곳은 포항이 아닌 울산이었다. 당연히 포항 팬들은 오범석을 ‘배신자’라고 욕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오범석의 울산 데뷔전이 2009 K리그 18라운드 포항전이었다는 점이다. 포항 팬들은 경기장에 ‘오범석 간신배’라는 걸개를 내걸었다. 경기 전부터 양 팀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포항 파리아스 감독은 “우리에게는 오범석보다 뛰어난 최효진이라는 선수가 있다”면서 오범석의 자존심을 긁었고 오범석은 “울산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나의 목표”라고 응수했다.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오범석을 소개하자 울산 팬들은 환호했고 포항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팬들은 포항에서 키워낸 선수의 배신이 불쾌했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에서 포항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리그 최다 연승 기록을 깨지는 상처까지 입었다. 양 팀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없이 응원가를 불렀다. 먼저 관중석에서 빠져 나가는 팀이 지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2009년 ‘클래식 풋볼(Classic Football)-라이벌’ 코너를 통해 ‘한국의 남동쪽에 위치한 팀들 간의 다툼’으로 포항과 울산의 라이벌 대결을 전하면서 1998년 플레이오프 명승부와 ‘김병지의 저주’, 그리고 오범석의 이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설기현의 배신과 계속되는 앙숙의 관계
오범석 이후 두 팀의 앙숙 역사에 정점을 찍은 건 누가 뭐래도 설기현이다. 설기현의 이적은 포항과 울산의 라이벌 구도가 더 치열해 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을 앞두고 잉글랜드에서 고국 무대로 돌아온 설기현은 포항을 선택했다. 2009년 아시아 무대를 정복한 포항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준비했다. 포항 팬들 역시 설기현의 영입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설기현은 시즌 내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펼쳤다. 부상으로 재활에 매달린 시간도 상당했고 특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바한전에서는 결정적인 기회까지 날려 원성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포항 팬들은 그럼에도 설기현을 응원했고 그의 생일에는 축하 파티를 열어 주기도 했다.

설기현도 1년 계약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포항에서 계속 뛰겠다”고 했다. 시즌을 앞둔 상태에서 전지훈련도 함께했다. 황선홍 감독은 포항에 새로 부임한 뒤 설기현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경기력을 끌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기현은 시즌 개막을 2주 남겨 놓은 시점에서 돌연 포항을 떠났다. 그가 선택한 곳은 놀랍게도 울산이었다. “스트라이커로 뛰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포항이 이적시장에서 슈바를 영입하고 설기현은 주로 연습경기에서 측면에 서는 상황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연히 포항 팬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두 달 뒤 설기현은 울산 소속으로 K리그 경기를 위해 포항을 찾았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경기장에는 ‘설, 떠나줘서 고맙다’는 자극적인 걸개가 내걸렸고 연봉과 전지훈련비, 재활비용, 유니폼 재고, 조바한전 정신적 피해와 생일 케이크에 대한 청구서도 나부꼈다. 경기 내내 포항 팬들은 설기현이 공을 잡을 때마다 끊임없이 야유를 보냈다. 설기현과 지난 시즌 함께 뛰었던 김형일은 설기현과 몸싸움을 벌인 후 홈팬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더 큰 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설기현은 야유가 극에 달하자 포항 팬들 앞에서 박수를 치며 ‘나는 이런 야유에 개의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제 포항과 울산의 앙숙 역사에서 설기현은 오랜 시간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K리그에는 서울과 수원의 경기가 유독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이 신흥 라이벌전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더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울산과 포항의 경기 역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1973년 창단한 포항과 1983년 만들어진 울산은 K리그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시에 앙숙의 역사로 얽매여 있다. 두 팀은 선수 이적 문제로 으르렁대고 그러면서 숱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의 역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16일 울산에서 두 팀은 올 시즌 마지막 맞대결을 펼친다. 이 경기에서 또 어떤 역사가 쓰여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