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유홍준 교수가 출연했다. 평소 나에게는 친근한 인물이다. 대학교 선배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유홍준 교수를 알지만 유홍준 교수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몇 번 선배의 집에 갔었지만 한 번도 유홍준 교수를 뵌 적은 없다. 어찌됐건 <무릎팍도사>에 유홍준 교수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흥미로웠다. 선배는 매사에 진지한데 선배의 아버지는 참 위트가 넘치는 분이었다. 선배는 몇 년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선배의 아버지는 방송 2주 동안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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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장을 역임하기도 한 유홍준 교수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우리 문화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진=MBC)

나는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국사시간에는 만날, 아니 맨날 졸았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도 특별히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가끔 지나는 경복궁을 보면 ‘여기 땅값은 얼마나 비쌀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무릎팍 도사>를 보니 내가 지금까지 자부심을 갖지 못했던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아름다고 위대한 것들인지 느낄 수 있었다. 경복궁이 자금성 뒷간 만하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논리도 완벽했다. 이제부터는 경복궁 앞을 지날 때면 내가 이런 멋진 문화재를 가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척 기쁠 것 같다.

그러면서 유홍준 교수는 말했다. “왜 사람들이 우리 문화재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외국 것들에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어요.”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열의, 지식 등을 완벽히 갖춘 유홍준 교수는 사람들이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석굴암의 위대한 건축 기술을 소개할 때는 수학여행에 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직접 보는 게 뭐 그리 대수냐”며 밖에서 친구들과 짤짤이나 하던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석굴암은 지금 건축 기술로도 불가능한 완벽한 가까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유홍준 교수는 경복궁의 위대함을 설명하면서 자금성보다 경복궁이 25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자금성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지만 경복궁에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맞닿아 있다면서 경복궁이 이 산들의 정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비오는 날의 경복궁 근정전의 아름다운 풍경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재는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경복궁을 자금성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한다고 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일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K리그 추종자.’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항상 국내 리그가 발전해야 한국 축구 전체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견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K리그 출신 선수가 해외로 이적하면 마치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든다. “K리그 추종자 김현회는 언제나 K리그 위주로 바라본다”고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내가 유홍준 교수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유홍준 교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공감했다. “왜 사람들이 우리 것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외국 것들에만 관심을 가질까.”

유홍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왜 그리 문화재의 규모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자금성에 비하면 경복궁의 규모는 한 없이 작지만 그 위대함은 자금성에 비할 게 아니다. 축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유럽 최고의 시장에 비해 K리그의 규모는 작다. 질적으로도 K리그는 밀린다. 하지만 자금성에 비하면 뒷간 수준인 경복궁도 충분히 자금성 이상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자금성에는 없는 나무도 있고 산도 있다. K리그에는 유럽 축구에 없는 우리 동네, 내 친구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 나와 건너 건너 아는 내 친구들이 뛰는 매력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K리그를 유럽축구의 뒷간 수준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의 말을 빌린다면 K리그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우리의 리그다. K리그 출신 박주영(아스널)과 지동원(선덜랜드), 구자철(볼프스부르크) 등은 이제 유럽에서도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특히 박주영은 K리그 출신으로는 최초로 빅클럽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미 아시아 무대에서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K리그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K리그는 지난 해 동아시아 4강 티켓을 모두 싹쓸이 했고 올해에도 8강에 세 팀이 올랐다. 두 시즌 동안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 것도 K리그다.

나를 여전히 ‘K리그 추종자’라고 불러도 좋다. 한국 사람이 한국인이 만드는 리그에 자부심을 갖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이다. 이게 추종자라면 나는 기꺼이 추종자가 되겠다. 유홍준 교수는 나에 비하면 한 없이 훌륭한 업적을 세우신 분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답사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쓴다고 해 그를 ‘우리 문화재 추종자’라고 하는 이는 없다. 한국인이 한국의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애정을 갖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오히려 이 반대쪽을 좋아하는 사람이 추종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K리그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승부조작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고 승강제도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단적인 문제점만 놓고 우리 것을 폄하하는 게 정상일까. K리그도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 리그에 대한 자부심을 잃는 건 다른 문제다. 숭례문이 불탔다고 해서 문화재 관리가 지적받을 수는 있어도 그 문화재 자체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고쳐 나갈 건 고쳐나가되 자부심은 잃으면 안 된다. 경복궁은 자금성에 비해 뒷간 만하지만 그 규모만 놓고 피해의식을 갖느니 그 시간에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더 위대한 이유를 찾아내는 게 바로 우리가 할 일 아닐까.

우리의 것을 소중히 생각하지 못하고 아끼지 못하면서 유럽으로 폼 나는 배낭여행만 떠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은 양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다를 수 없다. 경복궁과 석굴암의 위대함을 잊은 채 피사탑을 본들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유홍준 교수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우리 문화재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이 말 한마디는 K리그에 자부심을 갖는 게 ‘K리그 추종자’가 되는 이 현실에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 “우리는 이렇게 멋진 걸 가지고 있는데 왜 모멸감을 가지고 남의 것을 추종하는지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