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7일) 포항 황선홍 감독과 서울 최용수 감독 대행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라운드를 누비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이들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라운드 안 선수들의 맞대결만큼 이 두 감독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젊은 스타 감독들의 등장은 분명 K리그로서는 긍정적인 요소다. 그리고 이제 이 반열에 유상철 감독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대전시티즌은 신임 사령탑으로 유상철 감독을 선임했다.

어색하다. 유상철 선수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유상철 감독이라고 표현하려 하니 마치 군대 시절 상병이던 선임이 병장으로 진급해 호칭을 바꿔야 할 때처럼 어색하다. 당장에라도 그라운드로 달려 나가 찢어진 유니폼을 펄럭이며 시원하게 한 방 쏴줄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보다. 앞으로 K리그 경기장에서 유상철 감독을 만나면 “형”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이제 그를 <세바퀴>에서 볼 수 없다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대전은 유상철 감독 선임으로 분위기 개선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승부조작 파문과 최근 두 경기 연속 7실점이라는 치욕을 경험한 대전으로서는 새로운 감독 부임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패배 의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스타 감독은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될 것이다. 최근 두 경기 연속 7실점으로 항명 논란까지 일고 있는 대전은 카리스마라면 김현석 울산 코치 다음인 유상철 감독의 부임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에게 반항하는 선수가 있다면 유상철 감독이 선수 시절 부상 이후 복귀전에서 깊은 태클을 가한 상대 선수에게 불같이 주먹을 휘두른 동영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대전은 스타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관우-김은중 시대에 이어 고종수가 그 바통을 넘겨 받았지만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했고 올 시즌 초반 반짝했던 박은호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잠하다. 한 번 관중몰이를 시작하면 제대로 빵빵 터져주는 ‘축구특별시’ 대전으로서는 반드시 스타가 필요했다. 유상철 감독의 부임은 대전의 흥행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황선홍 감독이나 최용수 감독 등과의 맞대결이라도 펼쳐지는 날에는 대전 소식이 언론을 장식할 수도 있다. 언론의 관심에도 살짝 먼 대전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유상철 감독의 대전 부임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유상철 감독은 골키퍼 최은성과 동갑내기 친구다. 한 명은 감독으로, 또 한 명은 선수로 같은 팀에서 만났다. 공식석상에서는 최은성이 “유 감독님”이라고 하다가도 단 둘이 있으면 “상철아, 운동 살살 좀 하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둘의 미묘한 관계는 팬들에게 충분히 흥미를 선사할 수 있다. 젊은 감독의 신선한 에너지는 시름에 빠진 선수들에게도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시민구단 입장에서는 묵직한 감독이 와야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유상철 감독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지도력에는 의문이 남는다. 춘천기계공고 창단 감독이었던 그는 신생팀을 올해 현재 전국 고등 축구리그 강원 지역 3위까지 끌어 올렸다. 강원 지역 축구 명가인 강릉중앙고와 강릉제일고도 춘천기계공고보다 순위가 낮다. 춘천기계공고는 4위까지 주어지는 왕중왕전 출전 티켓까지 거머쥐는 등 신생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창단한지 2년밖에 안 된 팀치고는 제법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어 유상철 감독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올해 강원지역 고등부 리그 단독 1위인 문성고(9승 1패)를 꺾은 유일한 팀이 바로 춘천기계공고였다.

하지만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유상철 감독은 팀 창단 후 수도권에서 유망한 중학생 선수들을 대거 데려왔다. 춘천기계공고는 유상철이라는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을 믿고 파격적으로 신생팀 진학을 선택한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스카우트 능력 역시 감독의 몫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프로 무대에서, 그것도 열악한 환경의 대전에서도 이 같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아직 없다. 대전으로서는 유상철 감독 선임이 모험이다. K리그에서는 감독 인지도로 선수를 스카우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소 걱정인 건 유상철 감독이 아직 성인 무대 지도자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황선홍 감독은 전남 코치를 지낸 뒤 부산을 거쳐 포항 감독을 맡고 있다. 최용수 감독도 귀네슈 감독과 빙가다 감독 밑에서 꽤 오랜 시간 코치 생활을 했다. 신태용 감독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호주 퀸즐랜드 로어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성남 지휘봉을 잡았고 안익수 감독도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한 뒤 올해 부산 감독이 됐다. 비록 나이는 젊다고 하지만 이들은 프로 무대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착실히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유상철 감독은 FC슛돌이와 춘천기계공고 감독이 지도자 생활의 전부다. 더군다나 이번에 맡게 될 팀은 승부조작으로 뒤숭숭한 대전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그가 대전 코치로 부임하고 감독은 경험이 많은 이가 맡는 것이었다. 2~3년 뒤 대전에서 감독을 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승부조작과 최근의 졸전, 구단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 등으로 여기 저기에서 자꾸 비난을 일자 유상철 감독을 선임하고 이 사태를 무마하려는 ‘액션’은 아닌지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팀 감독으로서 보여준 유상철 감독의 능력은 분명히 긍정적이었다. 우수한 중학교 선수 스카우트와 제자들의 대학 진학으로 고민해야 하는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팀 감독과 K리그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유상철 감독 역시 현역으로 프로 생활을 오래 하기는 했지만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감독의 위치에서 위기의 대전을 구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대전의 유상철 감독 선임은 기대감도 있지만 그만큼 우려감도 감출 수 없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대전과 유상철 감독 모두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점이다. 유상철 감독이 잠시 대전을 감독 경력 쌓기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전 역시 최근 비난을 덮기 위한 감독 선임이 아니라면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어찌됐건 K리그 팬들은 이제 흥밋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과연 유상철 감독이 위기에 빠진 대전을 구할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